[Body-Brain-Mind] 우울과 무기력은 장에서 시작된다

[Body-Brain-Mind] 우울과 무기력은 장에서 시작된다

마음의 문제를 치료할 때 장 건강부터 확인한다

브레인 115호
2026년 04월 17일 (금)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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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무기력은 장에서 시작된다 [사진=게티이미지]


“선생님, 어떻게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질까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불안, 불면, 우울, 무기력, 폭식, 공황, 집중력 장애. 이른바 마음의 병으로 분류되는 문제들이 사람들을 정신과로 이끈다. 그들이 밝히는 원인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 오래된 트라우마나 상처. 둘째, 고치기 어려운 성격적 결함. 셋째,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이나 이별. 넷째, 경제적 압박. 다섯째, 의지력 부족. 이 다섯 가지는 얼핏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방향을 살짝 틀어본다. “환자분, 장腸은 괜찮으세요?” 이렇게 묻는 순간, 많은 이들이 멈칫한다. 마음이 힘들어 찾아왔는데 장 상태를 묻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진료 경험상 마음의 문제로 병원을 찾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장 기능에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방금 말씀하신 원인은 사실 예전부터 계속 있었던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 버티기 어려워진 걸까요?” 트라우마는 수년 전 일이었고, 성격은 수십 년간 그대로였으며, 경제 문제도 갑자기 악화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동안은 잘 버텨냈다. 그렇다면 지금 고통을 폭발시킨 방아쇠는 따로 있을 수 있다. 마음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적 관점에서 먼저 찾아야 할 것은 지금 당장 개입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게 바로 장이다.


무너진 장이 감정을 흔든다

전체 우울증 환자의 절반 이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증상을 동반하며, 항우울제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 비율도 30퍼센트를 넘는다. 마음은 뇌의 부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몸이라는 콘텍스트 안에서만 성립한다. 살아 있는 몸, 온전한 관계, 생리적 안정성, 이 모든 조건이 어우러져야 마음은 현상으로 떠오를 수 있다. 

인간의 몸은 수천 년 동안 일정한 체온, 일정한 혈당, 일정한 호르몬 상태를 유지하는 생물학적 항상성을 기반으로 진화해 왔다. 이를 위해 뇌는 배고픔을 유도하는 그렐린을 분비하고 포만감을 조절하는 펩타이드를 작동시킨다. 먹는 행위는 칼로리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생존을 위한 정교한 감정·기억·동기·판단이 엮인 총체적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발맞춰야 한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병들면 섭식은 통제력을 잃는다. 

문제는 현대인이 더 이상 본능의 리듬대로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과 뇌가 수천 년에 걸쳐 세운 협력 구조는 산업화한 식품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패스트푸드와 정제당, 자극적인 향미와 과도한 염도는 위장을 혹사하고 장내 유해균을 키운다. 이로 인해 장 점막이 손상되고, 그 틈으로 들어온 독소들은 자율신경계와 면역계, 호르몬계를 순차적으로 붕괴시킨다. 

무너진 장은 독성물질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되어 감정을 흔든다. 우울, 불안, 불면, 충동조절장애, 무기력, 집중력 저하. 장은 말이 없지만 뇌는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이 고통은 다시 섭식을 왜곡한다. 음식을 고르는 선택 행위가 점점 감정에 예속되고 쾌락 중심의 섭식이 반복된다. 


장과 뇌의 긴밀한 상호작용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루틴이다. 오전엔 햇빛을 3분간 받고, 찬물 샤워로 몸을 깨우고, 아랫배를 3백 회 두드리며 장을 자극한다. 오후엔 고관절 스트레칭으로 하체의 긴장을 풀고, 반신욕으로 교감신경을 가라앉힌다. 이 단순한 루틴이 삶의 리듬을 되찾고 감정의 방향을 되돌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절대 조급하게 체중을 감량하지 말고, 배고플 때만 먹고, 먹는 속도를 늦추며 공복감과 친해져야 한다. 공복이 세포를 깨우고 장을 복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건강을 무시한 다이어트는 100퍼센트 요요로 이어지고 무리한 칼로리 제한은 뇌를 지치게 한다. 

최근 신경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장-뇌축’이다. 뇌와 장은 신경계, 면역계, 호르몬계를 통해 정교하게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상태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장 내 미생물은 그 부산물을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퍼뜨리고, 자율신경계와 면역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뇌 기능에 영향을 끼친다. 장의 상태가 감정과 기억, 사고와 기분까지 좌우하는 실질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장의 연동운동을 관장하는 근육층 안에는 1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가 분포되어 있어, 과학자들은 장을 ‘제2의 뇌’라 부르기도 한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선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장부터 정리해야 한다. 마음은 몸 전체로 느끼는 것이다.


글ㅣ강도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청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저서《감정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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