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쁨은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칼럼] 기쁨은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 기쁨은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_게티이미지 코리아


일요일 저녁, 끼니 해결을 위해 동네 김밥천국에 들어선다. 혼밥에 최적인 모퉁이 자리에 채 닿기도 전에 주인장이 능숙하게 주문을 받는다. 늘 봐도 무표정한 얼굴의 주인장이 오늘도 무심한 몸짓으로 나의 돌솥비빔밥을 식탁에 내려놓는다. 

달걀, 당근, 시금치, 채썬 김치, 김 부스러기, 심지어 우엉까지 비빔밥 위에 얹힌 재료가 김밥 속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며 합리적인 가격에 5대 영양소를 섭취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의 퇴장 신호를 놓치지 않은 주인장이 나보다 먼저 계산대에 도착해 있다. 

신용카드를 주고받은 후 문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이제 곧 일요일 저녁의 김밥천국 씬이 무사히 끝날 예정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애드리브가 치고 싶어진다. 아직 계산대에 있는 주인장을 향해 몸을 튼다. 약속되지 않은 신호에 주인장이 조금 당황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 몸을 튼 이상 뭐가 됐든 이 행위를 완성해야 한다. 결국 대사를 내뱉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네? 아, 네에” 주인장이 웃는다.

0.1초의 찰나였다. 능숙하게 연기해 온 방식을 깨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서로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건. 더 이상 나는 ‘손님1’이 아니고, 그녀는 ‘사장’이 아니었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스럽지 않은 새해 인사가 새해의 첫 주말인 ‘지금’을 환기시키고, 그 시간 속에 함께 존재하는 ‘여기’를 인식하게 해주었다. 

드러나지 않던 당신과 나의 생명이 숨을 토해내며 생생하게 등장하는 그 찰나의 기적. 기적은 이렇게나 작은 인사를 통해서도 나의 일상에 찾아온다. 

생명이 요동치는 이러한 찰나의 감각이 나를 기쁘게 한다. 기쁨이라는 것은 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리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본래 그 생명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으니, 생명이란 본래 기쁜 것. 혹시 지금 내가 통과하고 있는 생의 찰나들이 기쁘지 않다면, 내 생명 에너지와의 연결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일상이 더 활기차게 살아 숨 쉬게 하는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데는 아주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용기를 내 본다. 

각자의 역량을 드러내야 하는 회의 시간, 긴장감이 감도는 그 공간에서 나의 생명이 내게 이야기한다. “조금 용기 내 보지 않겠어?” “그래 오늘은 애드리브를 좀 치자.”

나는 ‘전문가1’의 역할을 잠시 내려놓는다. 상대의 말을 받아치지 않고 웃는다. 들추지 않고 덮어준다. 따지지 않고 감사를 전한다. 오늘은 조금 덜 세련되고, 덜 똑똑해지기로 한다. 

숨이 쉬어진다. 당신과 나의 생명이 살아난다. 애드리브는 용기다. 조금 당황스럽더라도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순간의 선택. 그럴 때 우리는 내 인생의 연기자에서 연출자의 자리에 서게 되는 것 아닐까? 
 

글_권나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브레인트레이너로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운영하며, 명상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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