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을 기반으로 학제간 융합 흐름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인간의 마음과 행동 변화를 탐구하는 신경과학과 상담 코칭 영역이 만난 뉴로카운슬링neurocounseling 분야가 주목받고 있다.
《브레인》지가 사단법인 브레인트레이너협회와 함께 기획한 ‘뉴로카운슬링’ 코너. 멘탈헬스케어 전문기업 ㈜옴니씨앤에스 교육연구센터 임은조 센터장이 지난 호부터 4회에 걸쳐 중장년기 뇌의 변화와 뇌 건강 관리에 관한 글을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실제 상담 현장에서 뇌파 데이터가 어떻게 변화하고 회복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돌이킬 수 없는 퇴행인가, 되돌릴 수 있는 저하인가
요즘 상담실에서 50~60대 내담자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저 혹시 치매가 시작된 건 아닐까요?” 어제까지 멀쩡히 강의하고 회의를 하던 분들이 목소리를 한 톤 낮춰 조심스레 물어온다. 우리 사회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지금, 이런 불안은 더 이상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깜빡 잊은 약속 하나, 끝내 떠오르지 않는 사람 이름 하나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회의 중 익숙한 동료의 이름이 한 박자 늦게 떠오를 때, 냉장고 문을 열고도 무엇을 꺼내려 했는지 생각나지 않을 때 어이없다는 듯 웃어넘기면서도 속으로는 덜컥 겁이 난다.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중년은 큰 두려움을 느낀다.
특히 중장년에는 사방에서 눌리는 기분이 든다. 위로는 연로한 부모를 돌보고, 아래로는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녀를 책임지며, 직장에서도 상사와 팀원 가운데서 고충을 겪는 ‘낀 세대’이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는데, 여기에 ‘기억이 흐릿하다’는 신호까지 더해지면 두려움은 곱절이 된다. 두려움은 종종 사람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어떤 이는 지레 포기하고, 어떤 이는 불필요한 걱정에 매달린 나머지 정작 돌봐야 할 자신을 놓친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행스러운 진실이 하나 숨어 있다. 중년 이후 찾아오는 기억력 저하의 상당수는 돌이킬 수 없는 퇴행이 아니라, 충분히 되돌릴 수 있는 원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과로와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우울, 때로는 갑상선 기능 이상이나 영양 불균형 같은 문제가 그 원인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되돌릴 수 있는 저하’와 ‘돌이킬 수 없는 퇴행’이 겉으로는 매우 비슷해 보인다는 데 있다. 이 둘을 가려내는 일, 바로 거기서부터 뉴로카운슬링이 시작된다.
증상이 같아도 뇌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혹시 치매가 아니냐는 내담자의 질문에 나는 곧바로 답하지 않는다. 뇌파를 들여다본 지 어느덧 스무 해 가까이 되었는데, 그동안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을 상담하며 거듭 확인한 사실이 있다. 똑같이 “기억이 흐려졌다”고 호소해도 그 뒤에 숨은 사정은 사람마다, 뇌마다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뇌는 너무 지쳐서, 또 어떤 뇌는 너무 가라앉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다. 같은 증상이 반드시 같은 원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나는 ‘보이는 데이터’를 함께 살핀다. 뇌의 노화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측정할 수 있는 변화이다. 사람의 말은 흐릿하고, 기억은 때때로 자기 자신마저 속인다. 그러나 뇌파와 맥파에 새겨지는 신호는 비교적 정직하다. 이번 호에서는 그 측정값이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내가 만난 두 내담자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보려 한다. 두 사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 내용을 다듬었음을 미리 밝혀 둔다.
[사례1] 불을 끄지 못해 다 소진하고 지친 뇌
50대 중반의 K교수는 상담실 의자에 앉자마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강의는 물론 학생 모집과 온갖 행정 업무, 동료들이 슬그머니 떠넘긴 몫까지 처리하느라 주말도 없이 일해 왔다고 한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렇게 자신을 끝까지 갈아 넣는 경우를 상담실에서 자주 본다.
정작 그가 나에게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30년 가까이 강의를 해왔는데, 수업 중 늘 쓰던 단어가 입안에서만 맴도는 일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줄줄 외던 학생 이름도 가물거리고, 사소한 일에도 욱하고 화가 치밀어 스스로 당황스럽다고 했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슬그머니 피하게 되었다며 그가 조용히 물었다. “저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평생 말을 도구로 써온 사람에게 ‘말이 사라지는 경험’이 얼마나 큰 공포인지, 그의 떨리는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K교수의 표면만 보면 누구라도 초기 인지 저하를 의심할 법하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대신 뇌 상태를 측정해 보기를 권했다. 간단한 장비를 이용해 몇 분간 뇌파와 맥파를 기록했는데, 측정 결과는 그의 짐작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뇌파에서는 대뇌의 기본 박자라 할 수 있는 고유리듬(PF)이 또래보다 느려져 있었다. 고유리듬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기본 회전 속도’와 같은 것인데, 이것이 느려졌다는 것은 엔진의 회전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렇게 활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긴장·각성과 맞물린 고베타파는 오히려 유난히 높았다. 엔진의 힘이 떨어졌는데도 무리하게 공회전을 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정신적 스트레스 지표 역시 높게 나왔다.
맥파에서 읽은 자율신경의 상태는 더욱 분명했다. 심장박동의 미세한 흔들림을 보는 심박변이도(HRV)는 낮았고, 이를 토대로 추정한 자율신경 나이는 실제 나이를 훌쩍 앞질러 있었다. HRV가 낮다는 것은 몸이 위기에 대비하는 ‘긴장 모드’로 고정되어 좀처럼 ‘회복 모드’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조합이 그리는 그림은 분명했다. 오래 이어진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끊임없이 끌어올린다. 적당한 코르티솔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지만, 그것이 만성이 되면 판단과 계획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을 방해하고,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를 위축시킨다. 단어가 사라지고 학생 이름이 흐려지는 등 K교수가 겪은 증상은 노화가 아니라 바로 그 과부하의 결과였다. 높은 고베타파는 뇌가 잠시도 쉬지 못한 채 같은 걱정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신호였고, 낮은 HRV는 지속되는 긴장을 풀어 줄 브레이크가 닳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를 모니터 화면에 띄우고 K교수와 마주 앉았다. 자신의 뇌가 만들어 낸 그래프를 처음 본 그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막연하게 불안했던 상황이 눈앞에 선과 숫자로 분명하게 나타나자 오히려 조금 차분해지는 듯도 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의 뇌는 늙은 게 아닙니다. 지쳐 있을 뿐이에요.” 이 한마디에 그의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돌이킬 수 없는 진단명이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상태’라는 말이 그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뉴로카운슬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나는 그가 자신을 ‘고장 난 사람’이 아니라 ‘과부하에 걸린 사람’으로 다시 바라보도록 도왔다. 우리는 데이터를 함께 들여다보며 그의 상태를 노화가 아닌 과부하로 다시 읽었고, 늘 떠안기만 하던 일의 경계를 다시 긋는 연습을 했다. 거절이 서툰 그에게는 거절하는 연습부터가 훈련이었다. 여기에 호흡을 통한 바이오피드백으로 자율신경을 안정시키고, 수면 회복 과정을 약 10주 동안 병행했다.
처음 몇 주는 변화가 더뎠다. 평생 거절을 못 하고 살아온 사람에게 ‘노’라고 말하는 일은 새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어색했다. 그래도 그는 조금씩 자기 시간을 확보했고, 수면도 깊어졌다.
변화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찾아왔다. 고베타파가 제자리를 찾았고, 느려졌던 고유리듬이 다시 빨라졌으며, HRV도 회복되었다. 이 같은 변화가 관찰되던 시기에 그가 말했다. “요즘에는 단어가 다시 떠올라요. 화도 예전만큼 솟지 않고요.”
체감하는 변화와 데이터가 보여 주는 변화가 같은 곳을 가리키는 것을 확인할 때, 나는 뉴로카운슬러로서 무척 기쁘다. 주관적 호소와 객관적 지표가 만나 회복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사례2] 불씨가 꺼져 잠든 뇌
기억력의 감퇴를 호소하는 모든 경우가 K교수와 같지는 않다. 오래 다닌 직장에서 막 은퇴한 60대 초반의 P씨가 처음 꺼낸 말은 K교수와 거의 같았다. “기억이 흐릿하고, 머릿속이 늘 멍해요.”
수십 년 동안 직장에 출근했던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텅 빈 하루는 자유라기보다 낯선 공백에 가까웠다. 그는 무엇을 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고, 아침이면 자꾸 늦잠을 자게 되며, 종일 의욕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K교수가 ‘쉬고 싶은데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P씨는 ‘멈춰서 다시 켜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측정 결과도 K교수와 거의 정반대였다. 전전두엽에서는 느린 세타파가 지나치게 우세했다. 세타파는 졸음이 오거나 멍한 상태에서 증가하는 느린 파동인데, 또렷이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이 주파수 영역이 과도하다는 것은 뇌의 각성 수준이 낮아져 있다는 뜻이다. 고유리듬은 K교수처럼 느렸지만, 고베타파는 오히려 낮았다. 자율신경도 전반적으로 둔해져 있었다. K교수의 뇌가 과각성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면, P씨의 뇌는 저각성 상태에서 잠들어 가고 있었던 셈이다.
P씨와 함께 결과지를 보며 말했다. “게을러진 것이 아니라 뇌의 각성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내 설명에 그는 눈물을 보였다. 누군가 자신의 무기력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 준 것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종종 가라앉은 사람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다그치지만, 정작 그 사람의 뇌에 필요한 것은 다그침이 아니라 다시 깨어나기까지 시간과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흥미를 잃고 의욕이 꺼진 채 뇌 상태는 노화와 함께 우울과 무기력이 더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노년기의 우울은 슬픔보다 ‘무감각’과 ‘인지 저하’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종 치매로 오인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우울은 적절히 치료하면 상태가 호전되면서 흐려졌던 인지기능까지 함께 회복되는 경우가 많아 ‘가짜 치매’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놓치기 쉬운 회복의 기회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P씨에게는 K교수와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멈춤이 아니라, 가라앉은 뇌를 다시 깨우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갈림길은 연재 마지막 회차에서 ‘노화인가, 우울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더 깊이 다루어 보겠다.
자신의 상태를 나이 탓이라며 덮지 않기를
상담을 마치고 두 내담자의 결과지를 나란히 놓고 다시 살펴보았다. ‘기억이 흐려진다’는 같은 문장에서 출발한 두 사람의 뇌는 이후 전혀 다른 그래프를 그려나갔다. 한쪽은 불을 끄지 못해 자신이 타들어 가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불씨가 너무 약해 꺼져 가고 있었다. 같은 말이 결코 같은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그래프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두 내담자 모두 “예전 같지 않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만약 그 말만 들었다면 나는 그들에게 똑같은 조언을 건넸을지도 모른다. “더 쉬세요. 운동하세요. 사람을 만나세요.”
그러나 한 사람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멈춤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했던 것은 시동이었다. 똑같은 운동 처방도 한 사람에게는 약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다. 그 방향을 잡아 준 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데이터였다.
물론 측정값 하나만으로 사람을 단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뇌파 한 줄, 숫자 하나가 곧 진단은 아니다. ‘느린 고유리듬’이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노화의 일부이고, 누군가에게는 회복 가능한 과부하의 신호다. 그래서 정량뇌파, 인지선별검사, 심박변이도 같은 여러 객관적 지표를 함께 읽고, 무엇보다 이를 그 사람의 삶과 맞대어 보아야 한다. 데이터와 삶이 만나는 지점을 세심히 관찰할 때 비로소 그의 뇌 상태를 읽어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느려짐이 곧 병은 아니다. 뇌도 몸처럼 나이를 먹는다. 스무 살의 속도를 예순 살에도 그대로 기대할 수는 없다. 건강한 노화와 병적인 저하를 가르는 것은 ‘느려졌는가’가 아니라, 일상이 흔들릴 만큼 한쪽으로 치우쳐 무너지고 있는가이다.
K교수의 데이터에서 내가 읽어낸 것은 단순한 느림이 아니라, 고유리듬은 저하되어 있는데 고베타파가 치솟아 있는 그 불균형이었다. 뇌는 늘 이렇게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숫자들의 조합으로 목소리를 낸다.
또 하나, 회복이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한 편의 영상처럼 ‘과정’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의 측정보다 변화의 궤적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 뇌파와 맥파를 한자리에서 부담 없이 반복 측정할 수 있는 옴니핏 같은 도구가 곁에 있으면 그 궤적을 따라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측정 결과를 보면서 몇 주 전보다 고유리듬이 빨라지고 HRV가 회복된 것을 직접 확인할 때, 내담자는 ‘나아지고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으로 바꾸게 된다. 그 확신은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나는 내담자에게 늘 말한다. “데이터는 당신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숫자는 진단서가 아니다. 다만 데이터를 통해 지금 뇌가 어떤 상태인지를 함께 바라보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늠해볼 수 있다. 데이터라는 나침반을 손에 쥔 사람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는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K교수처럼 쉼 없이 달려오다 지쳤거나, P씨처럼 가라앉고 있다면 부디 그것을 ‘나이 탓’이라며 덮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지친 뇌도, 잠든 뇌도 그에 맞춰 보살피면 다시 활력을 얻어 깨어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뇌가 어떤 상태인지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다.
그렇다면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을 우리는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 다음 호에서는 이 변화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방법, 뇌를 늙지 않게 하는 뉴로카운슬링의 실천 전략을 살펴보겠다.
글_임은조
㈜옴니씨앤에스 교육연구센터 센터장.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브레인트레이닝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