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나보다 먼저 결정한다?

뇌가 나보다 먼저 결정한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의식과 자유의지

브레인 112호
2025년 09월 08일 (월)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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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나보다 먼저 결정한다?

-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 의식과 자유의지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에 뭘 먹을지, 친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를 생각하며 셀 수 없이 많은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을 ‘내 마음대로’ 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뇌과학은 이 견고한 믿음에 강력한 한 방을 날린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결정했다’고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 뇌는 이미 그 행동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내 마음에 따라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의지’란 게 과연 실존하는 걸까? 이는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뒤흔들지도 모를 심각한 질문이다.

뇌의 결정이 내 의지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밝혀낸 실험들

1980년대 미국의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은 특별한 실험을 했다.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손목을 움직이고 싶은 느낌이 들 때의 시간을 기록해달라고 요청했다. 동시에 참가자들의 뇌파(EEG, 뇌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기 신호)를 측정해 뇌의 활동 변화를 관찰했다. 연구결과, 참가자들이 손목을 움직이기로 ‘결정했어’라고 생각한 순간보다 최대 0.5초 전에 뇌에서는 이미 움직임을 준비하는 전기신호(Readiness Potential, 준비 전위)가 나타났다. 이는 마치 뇌가 우리에게 ‘지금 움직일 준비를 하라’고 미리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다. 우리 의식이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기 전에 뇌가 그 행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1]

이후 독일의 신경과학자 존-딜런 헤인즈(John-Dylan Haynes) 교수는 2008년에 뇌 활동 부위를 보여주는 영상장치인 fMRI를 활용하여 이 실험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두 개의 버튼 중 하나를 자유롭게 누르도록 하고, 언제 그 결정을 내렸는지 기억하게 했다. 동시에 fMRI로 뇌 활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놀랍게도 뇌는 참가자가 어느 버튼을 누를지 최대 10초 전에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리벳의 실험보다 훨씬 긴 시간 차이를 보여주며, 우리의 의식적 선택은 그저 뇌가 내린 무의식적 결정에 대한 ‘사후 보고’, 즉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에 불과하다는 강력한 증거처럼 보였다. [2]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많은 뇌과학자에게 ‘자유의지 환상론’이라는 관점을 심어주었다.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와 화학물질, 그리고 외부 자극에 의해 작동하는 거대한 생물학적 기계이며,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이러한 물리적, 화학적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주장이다. 만약 모든 것이 뇌 속에서 이미 결정된다면, 우리가 노력하거나 반성하는 행위도 결국 뇌의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는 것일까?


자유의지는 환상일까, 복잡한 뇌 작용의 결과일까?

하지만 모든 뇌과학자가 자유의지를 환상으로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학자가 자유의지의 개념을 좀 더 정교하게 세우려고 노력한다. 리벳 자신도 자신의 실험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시작된 행동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의식은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무의식적으로 시작한 행동에 대해 ‘마지막 확인 도장’을 찍거나, 문제가 있다면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의식적인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도덕적, 합리적 판단에 따라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마치 자동차가 자동으로 출발해도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아 멈출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의사결정은 단지 한두 개의 뇌 영역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뇌의 가장 앞쪽에 위치한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감정을 조절하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등 아주 복잡한 생각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이 전전두피질은 뇌의 다른 부분들(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등)과 복잡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합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복잡한 네트워크의 상호작용이 우리가 느끼는 ‘자유로운 선택’의 바탕일 수 있다. 마치 여러 부서가 힘을 합쳐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듯이, 뇌의 다양한 부분이 협력하여 우리가 ‘선택’이라고 느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뇌의 복잡한 연결성과 기능적 통합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뇌과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다.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 같은 유명한 신경과학자들은 우리 뇌가 거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다고 강조한다. 그는《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에서 우리의 행동이 기억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예측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조금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는 것이 뇌가 미래를 다르게 예측하도록 ‘씨를 뿌리는’ 행위가 된다고 주장한다.[3] 이는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뇌의 작동방식 속에서도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보여주며, 자유의지를 단순히 환상으로만 보지 않고 뇌가 스스로 변하는 가소성을 통해 능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고 볼 수 있다.

뇌과학 실험들은 특정 뇌 활동과 ‘의식적으로 깨닫는 순간’ 사이의 시간 차이를 측정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의지라는 복잡한 개념이 단순히 특정 뇌파로만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자유의지가 단지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 전체에서 발휘되는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해 헤인즈 교수는 “자유의지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생각할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자유의지 논쟁은 단순히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넘어,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기계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존재라면, 나쁜 짓을 했을 때 ‘네 잘못이야’라고 비난하거나 좋은 일을 했을 때 ‘잘했어’라고 칭찬하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후회나 반성 같은 감정은 또 어떤가?

최근에는 뇌과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모여 이 문제를 탐구하는 국제 공동 연구도 활발하다. 뇌과학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뇌 속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강력한 실마리를 제공하지만, 자유의지라는 개념 자체가 가진 철학적·사회적 의미는 여전히 우리의 깊은 고민을 요구한다.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 같은 세 계적인 신경과학자는 ‘의식의 신경 상관물(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 NCC)’ 연구를 통해 의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파헤치고 있으며, 《생명 그 자체의 감각》에서는 의식이 생명체에 널리 퍼져 있으나 컴퓨터처럼 계산될 수 없는 이유를 ‘내재적이고 인과적인 힘’으로 설명한다. [4] 이는 인공지능이 인공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와도 연결되며, 자유의지 문제를 포함한 의식 전반에 대한 최신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IIT)은 2023년 9월 관련 학계에서 유사 과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의식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로 여전히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의 비밀을 풀 열쇠인가, 논란의 불씨인가

통합정보이론(IIT)은 우리가 의식을 경험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는 의식이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하거나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 정보가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가에 집중한다. 즉 뇌라는 물리 시스템이 얼마나 의식적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의식을 느끼는지를 밝히려 한다.

IIT는 의식적 경험의 다섯 가지 공리(Axiom)를 제시한다. 첫째, 내재성은 의식적 경험이 외부 관찰자 없이도 스스로 존재한다는 주관적인 느낌을 뜻한다. 둘째, 정보는 모든 경험이 특정한 내용을 가진다는 것이다. 셋째, 통합은 눈·귀·몸으로 느낀 정보가 각각이 아닌, 오케스트라처럼 하나의 통일된 경험으로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넷째, 제외는 우리가 한 번에 하나의 명확한 경험만을 가진다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구성은 시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들이 모여 복잡한 경험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공리를 바탕으로 IIT는 시스템이 얼마나 ‘통합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이(Φ)라는 수학적 값으로 측정한다. IIT는 이 파이 값이 클수록 해당 시스템의 의식 수준이 높다고 본다. 즉 뇌 속에서 정보들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고 통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의식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설명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IIT는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의식 이론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여러 도전과 비판을 받고 있다. 2019년 템플턴재단은 의식을 설명하는 두 가지 주요 이론인 줄리오 토노니의 IIT와 스타니슬라스 드앤(Stanislas Dehaene)의 전역 신경작업 공간이론(Global Neuronal Workspace Theory, GNWT) 중에서 어느 이론이 더 정확하게 의식을 예측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코지테이트 프로젝트Cogitate Project’라는 큰 연구를 진행했다. 2023년에 그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IIT가 GNWT보다 더 좋은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이론이 의식을 설명하는 데 타당성이 있다는 힘을 얻는 듯했다. [5]

하지만 이 결과에도 불구하고 IIT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2023년 9월, 일부 학자들은 IIT를 유사 과학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6] 그 이유는 IIT가 의식의 정도를 나타내는 파이 값을 계산하는 방식이 매우 복잡하고, 실제로 뇌에서 완벽하게 실험으로 확인하고 증명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또 다른 비판은 이 이론이 너무 극단적인 범심론적(panpsychism)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범심론은 세상의 모든 물질, 심지어 돌멩이나 작은 부품에도 어떤 식으로든 의식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줄리오 토노니 박사는 이 이론에 따르면 아주 작은 발광 다이오드(LED)조차도 원시적인 수준의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해 논란을 더했다. 마치 아주 작은 부품 하나하나에도 어떤 종류의 ‘느낌’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시각과 비슷하다. 

게다가 IIT는 의식처럼 ‘나만이 느끼는 주관적인 경험’을 다루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가진다. 파이 값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실제 살아있는 뇌에서 그것을 직접 측정하고 증명하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그리고 의식에 뇌의 앞부분인 전전두피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GNWT와는 달리, IIT는 뇌의 뒷부분인 후방피질의 역할을 더 강조한다. 그런데 뇌 앞부분이 손상되어도 의식적인 경험을 계속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은 IIT에 대한 중요한 반론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토프 코흐의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은 IIT를 통해 의식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IIT는 의식이라는 가장 어려운 과학적 질문에 도전하는 대담한 시도이며, 여전히 많은 가능성과 함께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다. 뇌과학자들은 이 이론으로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의식의 신비를 계속해서 파헤치고 있다. 


‘내 마음대로’의 진짜 의미를 찾아서

의식의 실체를 밝히고자 하는 뇌과학적 연구와 뜨거운 논쟁은 ‘내마음대로’라는 개념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층적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자유의지는 단순히 켜고 끄는 전등 스위치처럼 작동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뇌가 복잡한 세상 속에서 생존하고 관계를 맺으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쌓아온, 굉장히 고차원적인 능력일 가능성이 높다. 뇌과학은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며, 이 능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탐구하는 새로운 길을 활짝 열어주고 있다.

뇌과학이 밝혀내는 ‘내 마음대로’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비롭고 깊다. 뇌가 먼저 움직임을 준비하고 무의식이 결정을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도 거부할 자유를 행사하고, 복잡한 사고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뇌의 가소성 덕분에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하며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유의지 논쟁은 단순히 뇌의 작동방식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책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기계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이 여정은 어쩌면 ‘내 마음대로’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탐험이 될 것이다.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은 정말 ‘내 마음대로’였을까, 아니면 뇌가 선사한 절묘한 마법이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글. 조용환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재미있는 뇌 이야기와 마음건강 트레이닝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조와여의 뇌 마음건강’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1] Libet, B., Gleason, C. A., Wright, E. W., & Pearl, D. K. (1983). “Time of conscious intention to act in relation to onset of cerebral activity (readiness-potential)”, The unconscious initiation of a freely voluntary act. Brain, 106(3), 623-642.

[2] Soon, C. S., Brass, M., Heinze, H.-J., & Haynes, J.-D. (2008).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in the human brain”, Nature Neuroscience, 11(5), 543–545.

[3] 리사 펠드먼 배럿, 변지영 옮김, 《이토록 뜻밖의 과학 》, 서울: 더퀘스트, 2021. (원제: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2020).

[4] 크리스토프 코흐, 박제윤 옮김, 《생명 그 자체의 감각》, 서울: 아르테, 2023. (원제: The Feeling of Life Itself: Why Consciousness Is Widespread but Can't Be Computed, 2019).

[5] Cogitate Consortiumet al. (2023), “An adversarial collaboration to critically evaluate theories of consciousness”, bioRxiv.

[6] Cogitate Consortium., Ferrante, O., Gorska-Klimowska, U. et al. (2025), “Adversarial testing of global neuronal workspace and integrated information theories of consciousness”, Nature 642, 13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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