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몸으로 뱉어내는 ‘나’의 언어다. 나의 감정과 상태가 걸음 속에 미묘하게 묻어난다.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는 것은 나를 상대에게 드러내 보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낭만주의적인 철학자들은 산책을 하면서 깊은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종교인들은 도보 순례를 하면서 신과의 만남을 추구했다. 1789년 파리의 군중들은 혁명을 위해 함께 걸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사람들은 힘의 상징으로 행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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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인 걷기
걷기에 대한 언어적 표현은 풍부하다. ‘거닐다’, ‘활보하다’, ‘산책하다’, ‘배회하다’, ‘어슬렁거리다’, ‘방랑하다’, ‘소요하다’, ‘비틀거리다’, ‘뒤뚱거리다’, ‘절룩거리다’ 등등 한참 적어도 끝이 없다. 언어는 삶을 모방한다. 약 600만 년의 직립보행 역사를 지난 인간에게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우리는 언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걷기가 선택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년 동안 걷는 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의자가 생기고, 가마와 마차가 생기고, 자전거와 자동차, 기차, 비행기가 만들어지면서 인류에게 걷기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가는 중이다. 선택은 의지의 표현이다. 강요되지 않은 자유일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 반드시 걸어야 하는 사람들은 지위가 낮고 권력이 없는 계층이었다. 짐을 운반하며 걷는 것은 노예들이었고, 맨발로 걷는 것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무엇을, 왜, 어떻게, 걷는지는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계급과 지위가 걷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흔했다. 특권을 지닌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다녔으며, 이는 군대도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걷기를 재발견하게 된 것은 17세기 무렵부터이다. 산책과 여행이 자기 발견과 교육의 목적 등으로 상류계급에 향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속의 걷기는 이제 자아발견뿐 아니라 건강의 수단으로 행해지고 있다.
걷기 위한 걷기
요즘 사람들은 걷기 위해 걷는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특수한 목적을 위해 걷기를 즐긴다. 농구화, 축구화, 등산화, 골프화 등등 특별한 활동을 위한 신발들이 만들어진 것도 20세기만의 독특한 특징이었다. 사람들은 걷기 위해 만들어진 길인 인도 위를 걷고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
발 하나에는 20개의 뼈가 있다. 인체의 뼈 206개 중 4분의 1이 몰려 있는 셈이다. 누군가 많이 아프다고 하면 “걸을 수는 있어?”라고 묻게 된다. 걷기는 현대의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의사들은 건강을 위해 하루 30여 분씩 적당한 속도로 걷기를 권한다. 비만이나 심장병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걷기는 치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치유를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건강을 위해 현대인은 걷는다. 걷기는 발이 머리와 가슴을 이끌게 해주는 방법이다.
보폭의 고정된 리듬과 그 리듬감을 따르는 호흡을 따라 발바닥에 힘을 실으면 새로운 힘이 느껴지면서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속도의 시대에 천천히 걷기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물론, 속도 속에 잊혀진 장소와도 조우하게 한다. 공원 옆 아파트를 구해 이사를 가도 1년 내내 공원 한번 나가보지 않는 것이 요즘 우리의 모습이다. 회사와 집 사이에 공원이 낄 틈이 없는 것이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공원을 가로지르며 걷기를 위한 걷기를 해보자. 작은 변화로 내가 속해 있던 공간이 넓어짐을 경험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경험이 뇌에 자극을 주는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걷기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 -<장생보법>
걷기와 관련된 <장생보법 훈련이 신체증상 지각 및 뇌 영역별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심준영 외, Journal of Korea Sport Research. 2007, Vol.18, No.4)이라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용천지압’을 특징으로 하는 장생보법의 효과를 뇌파 측정을 통해 연구한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장생보법은 용천을 지압하는 동작의 특성으로 인해, 발뒤꿈치에 무게중심을 두는 일반 보행 동작보다 하지 근육활동량을 높여 하지정맥의 혈액 흐름을 촉진한다. 장생보법으로 의도적인 의식 집중과 자세 조절을 하며 걷기를 할 경우 알파파와 감마파의 상대적인 강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며, 뇌의 전두엽 부분에 있는 운동중추와 위치감각, 운동감각 등 말초에서 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지각중추의 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무게중심을 용천과 발가락 쪽으로 두는 동작의 특성으로 인해 일반 보행 동작보다 심장 및 뇌로 가는 산소와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