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새벽, 조용한 주택가에서 도와달라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당신이라면 이 때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침묵한 38인의 살인 사건 목격자들,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 사건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15분, 미국 뉴욕 어느 주택가에서 노상강도로 보이는 남자가 지나가던 여자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30여 분이 넘도록 여자는 격렬히 저항을 하며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외쳤고, 주변의 집에 불이 켜졌지만 그 뿐이었다. 나와 보는 사람도,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경찰이 신고를 받은 것은 여자가 죽은 지 20분이 지나서였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고, 사건에는 공격 받은 여자의 이름을 따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미국은 사건의 목격자 38명이 어째서 키티 제노비스가 죽도록 내버려 뒀는지에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했다.
대부분 도덕적 의식 결여와 인간 소외의식이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한 이유라 보았지만, 심리학자였던 달리(J.Dorley)와 라타인(B.Latane)는 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보았다.
다수의 목격자는 침묵한다
뉴욕대학의 달리와 칼럼비아대학의 라타인은 38명의 목격자가 침묵한 이유는 목격자가 많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계획한다. 1968년, 실제 실험 목적을 숨긴 채 대학생들을 모아 집단 토론 실험이라 설명한 채 한 명씩 다른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 토론 진행은 마이크로폰과 헤드폰을 이용해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고, 토론 인원은 2명, 4명, 7명 등 여러 가지 변수를 뒀다. 그리고 토론자로 위장한 조교가 “도와달라”는 말과 함께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연극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명이 1:1 토론하던 학생은 85%가 밖으로 즉시 달려가 실험 조교에게 사고가 났음을 알렸다. 하지만 4명이 토론하던 경우는 62%, 7명이 있던 경우는 31%만이 외부에 사고 보고를 했다. 상황 종료 후, 사고 보고를 하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왜 보고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자, “알려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몰랐지만 남들이 알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이 연구 결과는 “책임감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효과 용어로 표현되며,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의 책임감이 적어지기 때문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도 불린다. 달리와 라타인은 “비극을 목격한 사람들의 숫자가 도움 주기를 방해했을 것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도움을 적게 주며 늦다”고 설명했다.
대중은 본인의 위험 앞에서도 무관심하다
1969년, 달리와 라타인은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다. 실험을 위해 대학생들을 모집한 뒤, 여러 개의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했다. 각 대기실에는 인원수를 달리해 혼자, 혹은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있는 대기실마다 문틈으로 연기를 새어 들어가게 했다. 학생들은 연기가 단순한 수증기인지, 불로 인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혼자서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75%가 2분 이내에 연기가 난다는 사실을 연구 조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여러 명이 함께 있던 대기실에서는 6분 이내에 13%가 보고했을 뿐이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보고 비율은 더 낮아졌다.
실험 종료 후, 참가 대학생들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자, “불안하긴 했는데, 남들이 가만히 있기에 저도 별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중적 무관심”이라는 용어로 설명되는 이 실험 결과는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여러 가지 사건을 설명하는데 등장한다.
나의 위험을 한 사람에게 알려라
제노비스 사건 이전에는 한 개인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을 돕느냐 마느냐는 시간, 능력, 행동 등 개인적인 요인만으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는 환경적 요인이 도움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주변의 불특정 다수에게 그저 “도와달라”고 한다면 대중은 다른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진다.
만약 당신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특정한 사람을 짚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 사람은 책임감을 분산할 곳이 없을 뿐 아니라 당신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글. 김효정 manacula@brainworld.com
도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에코의 서재|『심리학이 잡은 범인』 와타나베 쇼이치 외 지음, 박병식 옮김, 오픈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