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당신의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습니까?

디지털 치매, 당신의 기억은 어디에 저장되어 있습니까?

김길원의 뇌건강 이야기

브레인 2호
2010년 12월 08일 (수)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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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안에 어떻게 기억이 등록되어 있고, 저장되는가는 1949년 캐나다 심리학자인 헵(Hebb)에 처음으로 설명됐다. 기억이란 뇌세포끼리의 연결부위인 `시냅스"가 강화돼 여러 개의 뇌세포가 활성화되는 것이라는 게 헵의 주장이다. 이후 다른 학자들이 전기자극을 연속적으로 가할 때 시냅스의 연결이 강화되는 현상을 동물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특히 뇌의 여 러부위 중 기억과 가장 밀접하다고 여겨지는 해마부위에서 일어난다.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 어떤 자극을 반복해서 받아들이면 이 자극이 뇌의 여러 부위, 특히 해마에 뇌세포간 연결고리를 강화시킴으로써 기억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서 뇌세포가 새로 탄생되는 것은 아니며, 뇌세포와 뇌세포의 연결이 강화되면서 회로가 형성됨을 의미한다.


단기기억, 작업기억, 장기기억

 예를 들어 보자. 무엇을 알아보기 위하여 전화를 걸려고 한다.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를 찾아서 또는 전화번호를 들어서 전화를 건 다음 우리는 보통 그 전화번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한번 사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전화번호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는 경우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그 전화번호를 외우게 된다. 우리가 어떤 전화번호를 1회 목적으로 사용하였을 때 전화번호를 누르는 동안 약 수초간 그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을 단기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기억으로 `작업기억"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7자리 전화번호를 불러주고 그것을 거꾸로 말하게 시켰을 때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7자리 전화번호를 머리 속에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이 정보를 가지로 조작해야 거꾸로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정보를 잠시동안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조작하는 기억을 작업기억이라고 부른다. 단기기억과 작업기억은 전문가에게는 약간 다른 용어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서로 비슷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관하다고 한다.

 단기기억을 반복하면, 다시 말해서 7자리 새 전화번호를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장기기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어떤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기 위해서는 단기기억 또는 작업기억 상태로 있다가 이것이 반복되는 학습에 의해서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단기기억이나 작업기억은 이마의 바로 뒤쪽에 있는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며, 장기기억은 주로 이미 언급한 해마에 저장된다. 하지만 뇌의 `해마"라는 영역에서 주로 담당하는 기억력은 사용하지 않으면 해마가 위축되면서 기억의 용량이 줄어든다.


기억의 확장 VS 기억의 퇴화

 사회가 발전할수록 기억해야할 내용이 증가함에 따라 `기억의 용량"의 문제가 대두되고 사람들은 "컴퓨터"를 고안해 기억의 용량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다. 이제는 자신의 뇌속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내용은 컴퓨터의 저장소를 검색해서 끄집어내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습관은 `기억"보다 "검색"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역기능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기억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검색의 편리성이 더해짐에 따라 기억할 수 있는 내용조차도 기억을 회피하고 디지털 기기에 저장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신조어인 소위 `디지털 치매"는 이런 점에서 걱정스럽다. 디지털 치매란 각종 디지털 기계에 의존한 나머지 정작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크게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검색에 필요한 뇌기능은 발달하지만 필수적인 뇌의 기능은 점차 감소하는 것이다. 전화번호 저장을 휴대폰에만 의존해서 자기 집 전화번호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숫자 3개만 계산하려고 해도 계산기를 찾게 되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손 보다는 자판입력이 더 편하고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이야기할 때는 괜찮은데 실제로 대화를 할 때는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두 번씩 물어보게 되는 경우, 또한 아는 한자도 컴퓨터가 아니라 손으로 쓰려면 자신이 없어지고 자동차 네비게이터가 고장나면 알던 길도 헤맨다거나 노래방이 아니면 노래도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기계를 사용할 수 없을 때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 기본적인 기억력 자체가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병 아닌 병, 디지털 치매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치매"가 아직 병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많고, 다르게 본다면 디지털 시대에 맞게 진화된 형태로 나아간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기억력의 쇠퇴가 오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디지털 치매를 어떻게 예방하고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기억력은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전화번호, 사람과 물건, 책 구절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가능한 많이 암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독서, 영화감상 등에 시간을 투자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한번 읽고 넘어가는 것 보다는 그 내용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한번이라도 말해 주는 것이 뇌세포들의 시냅스 연결을 더 강화하고 기억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읽는 것보다 듣는 것이 잘 기억된다. 대화를 늘리는 것은 제한된 시간에 기억력을 향상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기억 능력 이외에도 가능하면 손으로 쓰고, 직접 계산하는 등 무조건적인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좋다.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것을 디지털 기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있다.

글. 김길원 (연합뉴스 의학,바이오 전문기자)
도움말. 삼성서울병원 윤세창(정신과), 나덕렬(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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