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천재를 상상할 때 괴팍한 면을 떠올리지만 천재들은 보통 사람들과 뭔가 다른 선험적 창조력이 있다. 천재라는 존재 자체에 믿음과 신뢰성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포용하는 시대와 문화적 배경이 있다. 지난 1백 년은 누가 뭐라 해도 물리학의 르네상스였고, 천재 물리학자의 창조적 예언은 시대를 분명 앞당기고 새로운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그들 천재성의 특징 중 하나는 건강한 조직을 통하여 천재성이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실험실에서 혼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도 독단에 의해 새로운 이론을 세운 것도 아닌 전통 있는 조직을 통해 훌륭한 스승과 동료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과 우정 속에서 천재성이 검증되고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노벨물리학상은 천재들이 받을 수 있는 상이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조직은 공통적으로 전통과 과학적 문화를 가진 집단이었다. 우연에 노벨상이 주어진 적은 없다. 천재는 우연이 아닌 문화적 전통에 의해 탄생되는 것이다.
얼마 전 자신의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봐달라는 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천재가 아닌데 어찌 천재를 알아볼 수 있겠냐는 나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속을 강요했다. 연구실로 걸어 들어온 부모와 꼬마의 눈은 남달리 똘망똘망했다.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지나가는 말로 “학교생활 재미있니?”하고 물어보았다. 즉각 되돌아온 말은 “학교는 재미없어요”였다. “학교가 재미없다면 뭐가 재미있니?” 하고 물으니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부편력을 이야기 했다. 수학, 물리, 영어….
그 학생은 그 또래 학생들보다는 분명 월등히 뛰어났고 의욕까지도 남달랐다. 하지만 그날 내가 해준 말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열심히 놀고, 친구들 많이 사귀고, 취미활동도 하고, 악기도 하나 정도는 익히고, 태권도도 배워보고, 축구 같은 단체 운동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앞길에 대한 전도 양양한 발전 방향에 대하여 상의하고 듣고자 했던 부모와 꼬마천재는 분명 실망한 모습으로 내 연구실을 나갔을 것이다.
요즘 천재론이 고개를 든다. ‘나라를 위한 천재 키우기’를 생각하는 대기업회장과, 한 두 명의 천재보다는 유능한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힘을 합칠 수 있는 범재가 더 필요하다는 대기업회장들 사이에 논의가 뜨겁다. 하지만 너무 이기적인 틀 속에서 천재와 범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분명 우리시대는 천재를 필요로 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범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키워지는 천재, 기다리는 천
재 이전에 건강한 교육을 통해 자아실현이 가능한 교육적 환경이 우선 아닐까. 건강한 교육틀 속에 천재도 있고 범재도 있고 회사도 있고 나라도 있지 않을까.
글.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마이크로파 연구에 몰두하는 틈틈이 그림 그리고 사진 찍으며 "창의성 발현"에도 힘쓰고 있다. 두 딸을 위해 그린 첫 그림책이 곧 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