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상태가 정서와 인지에 미치는 영향
최근에 몸 상태가 가장 나빴을 때와 가장 좋았을 때를 각각 떠올려보자. 몸이 가장 안 좋았던 시기는 감기에 걸린 때일 수도 있고 두통이 있던 날이었을 수도 있다. 숙면하고 일어나 상쾌한 아침 산책을 한 날은 몸 상태가 아주 좋았던 날일 것이다. 몸 상태가 좋거나 좋지 않을 때 감정 상태는 어땠나? 어떤 생각을 주로 했나?
몸이 아플 때는 기분도 우울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반면 몸이 가뿐하면 기분이 좋고 긍정적인 마음 상태가 되며 하늘도 특별히 더 아름다워 보인다. 신체 상태는 이렇게 우리 정서와 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신체를 좋은 상태로 만드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 자신의 정서와 인지를 더 긍정적인 상태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신체활동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뇌파진동’은 복부를 가볍게 드럼처럼 두드리면서 명상 상태에 들어가는 동적 명상으로(그림), 이를 수행한 사람들은 정서조절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이 연구에서 긍정적인 정서는 향상되고 우울감과 스트레스는 감소되었다. 왜 이런 정서 조절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몸 관리가 곧 정신 건강 관리
여러 경로가 있겠지만 복부를 집중적으로 두드리는 행동이 복부에 위치한 미주신경을 활성화하는 것일 수 있다. 미주신경은 뇌간에서 나오는 10번째 뇌신경으로 대표적인 부교감신경이다.
미주신경이 활성화하면 이 정보가 뇌의 여러 영역에 전달되어 도미노 효과가 일어난다. 정서 조절과 관련해서는 활성화된 미주신경이 뇌의 청반(locus coeruleus, LC) 영역에 있는 노르아드레날린성 신경세포에 작용하고, 순차적으로 배측 솔기핵의 세로토닌 시스템에 작용하여 우울감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동적·정적 명상의 요소를 모두 가진 뇌파진동 명상은 명상 자체가 가지는 정신 건강 향상 효과에 더해, 신체적 움직임에서 비롯하는 미주신경 활성화 효과도 있다. 한 시간가량의 프로그램에서 20분의 뇌파진동 명상을 정적 명상으로 대체하면 효과가 감소하는 것도 확인했다. 이는 동적·정적 명상을 혼합한 뇌파진동 명상이 단일한 정적 명상에 비해 짧은 시간 안에 더 높은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신체활동에 따라 정서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몸을 관리하는 것은 곧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은 신체 활동을 많이 한 사람에 비해 치매 발병률이 2.07배 높아
신체활동은 정서뿐 아니라 뇌의 인지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지기능 중 작업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정신작용을 할 때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청소년에게 있어서 이러한 작업기억은 학업 성취도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작업기억을 인지적 접근방법을 사용해 직접적으로 훈련하는 것은 반드시 학업능력을 향상시키지는 않는다. 청소년들에게는 인지적 접근방법보다 신체활동을 포함한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배정 실험에서 매일 18분씩 3주간 동적 명상을 수행한 그룹과, 같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그룹의 작업기억을 측정했다. 결과는 동적 명상을 수행한 그룹에 속한 학생들의 작업기억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왔다. 즉 신체 활동이 인지기능을 향상시킨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활동이 인지기능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한 연구는 성인을 대상으로 더 많이 진행되었다. 성인남녀 6,359명을 대상으로 2년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앉아 있는 시간(TV 시청 시간)이 길수록 즉각적 단어회상, 지연된 단어회상, 언어 유창도 항목에서 인지기능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에서 79세 성인 1,449명을 21년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서는 업무시간 이외의 자유 시간에 주로 앉아 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신체활동을 한 사람들에 비해 치매 발병률이 2.07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볼 때 신체활동이 장기간에 걸쳐 인간의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다.
치매 환자도 신체활동이 증가할수록 인지기능 향상돼
그렇다면 이미 인지능력에 손상이 생긴 경우에도 신체 활동이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될까? 802명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18개의 무작위 배정 실험을 메타 분석한 연구를 보면, 신체활동이 증가할수록 인지기능이 향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신체활동에서도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같이 수행하면 다양한 종류의 인지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보인다. 109명의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각각 주 2회 근력운동+주 2회 걷기 운동 그룹, 주 4회 걷기 운동 그룹, 주 4회 사회적 만남 그룹에 배정되었고, 매회 30분씩 9주간 수행되었다.
그 결과, 근력 운동과 걷기 운동을 병행한 그룹에서는 인지기능과 운동능력 모두 향상되었고, 걷기 운동만 한 그룹에서는 인지기능만 향상되었다. 사회적 만남을 한 그룹에서는 개선이 발견되지 않았다.
특히 걷기 운동만 한 그룹에서 향상된 인지기능은 집행기능에 불과했는데, 근력 운동과 걷기 운동을 병행한 그룹에서는 전반적 인지, 시각기억, 언어기억, 집행기능 등 더 많은 영역에서 인지기능이 향상되어 있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근력이 인지기능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자신의 근력을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는 손의 힘, 즉 악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악력은 상반신 근육의 힘을 대표하는 지표이다. 악력이 크면 인지기능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어 있다.
65세 이상 성인 708명을 대상으로 20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악력이 높은 사람이 언어능력, 공간능력, 처리속도, 기억에 해당하는 인지기능이 높았다. 60세 이상 남성 29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악력이 높은 사람이 주의, 작업기억, 시각학습에 해당하는 인지기능이 증가되어 있었다.
상상 훈련도 근력과 뇌의 변화를 유도한다
신체가 정서와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정서와 인지 역시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흥분해서 논쟁할 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감정적으로 불안하면 손발이 차가워진다. 실제로 연구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참가자들의 신체 국부 온도를 측정했을 때, 뺨과 목의 온도는 상승하고 손과 장의 온도는 내려갔다. 정서 상태가 신체의 온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정서 상태뿐 아니라 생각 역시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팔의 근력 운동을 상상으로 하는 이미지 훈련을 매일 15분씩, 1주일에 5번, 6주간 진행한 그룹이 훈련을 수행하지 않은 비교 그룹에 비해 실제 팔의 근력이 향상되어 있었고, 일차운동피질과 보조운동피질에서의 뇌운동 관련 전위도 향상되어 있었다.
이 연구는 근력에 대한 심상 훈련이 뇌와 근육 간의 신호전달을 강화해 실제 근력의 변화와 뇌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심상 훈련은 실제 스포츠 선수와 재활치료에서도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이렇듯 신체, 정서, 인지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서로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한 부분의 변화가 다른 부분의 변화를 유도한다.
어떠한 일을 뇌가 스트레스라고 인지하면 스트레스 축이 활성화되어 부신피질에서 코티솔이 분비되고, 교감신경이 활성화 되어 투쟁·도피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면역계, 내분비계, 대사, 소화작용, 장내세균, 뇌 등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변화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신체-정서-인지의 도미노 효과
반면 명상이나 운동은 스트레스를 완화해 스트레스 축의 활성화를 예방하고,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휴식소화반응을 일으킨다. 이로써 만성스트레스가 유도할 수 있는 악순환을 예방하고 이완 상태로 유도한다.
인체 시스템을 이루고 있는 신경계-면역계-내분비계는 이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신체-정서인지의 상호작용을 매개한다. 신체-정서-인지 중 어느 한 곳의 긍정적 변화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선순환을 만들어낸다는 점을 알면, 작은 도전도 더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글. 양현정
재단법인 한국뇌과학연구원 부원장. 일본 도쿄공업대학 생명공학과 박사.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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