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과학자 신희섭

행복한 과학자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학습기억현상연구단 단장

뇌2003년7월호
2013년 01월 09일 (수) 16:50
조회수17981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자명종이 발명되기 이전에도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잠을 깨는 데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명종 발명 이후 세대이고, 덕분에 잠자리에 들면서 머리맡에 소위 ‘알람시계’를 모셔놓아야만 안심하고 잠드는 습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다 알람을 켜두지 않고 잠든 경우에도 대개는 다음날 늘 깨던 시각에 눈을 뜨게 된다. 심지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할 일이 있어 알람 시각을 맞추고 잤는데 시계가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선연히 깨어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때 시계를 딱 보면 일어나기로 마음먹었던 바로 그 시각!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우리 뇌 속에 ‘생체시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최근 이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를 밝혀내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저널로 꼽히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몸 안에 있는 생체시계의 시간 정보를 신경에 알려 생체리듬이 생기도록 하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신희섭 박사의 연구실을 찾았다.

신희섭 박사는 노벨상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불교 서적을 즐겨 읽는다는 신 박사는 파인만이 자신의 명상 체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파인만은 명상상태에서 유체이탈을 체험했던 것 같다. 그는 마음이 옆으로 가더라, 아래로 가더라 라고 표현하다가, 밖으로 나가더니 자기 자신을 바라보더라 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머릿속에서 느낀 것일 뿐이라고 해버렸다. 나는 이 결론이 맘에 안 든다. 의미를 디스카운트 한 것인데, 그렇다고 그런 현상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서울대 의대를 나와 미국 코넬 의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MIT와 포항공대 교수를 거친 50대의 이 유전학자는 곧이어 불교 이야기로 넘어간다. 재미있는 과제라도 찾아낸 양 생기에 찬 표정이다.

“불경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뇌과학하고 맞나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불교에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이란 것이 있다. 안이비설신의 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은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을 말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다 마지막의 의는 인식하고 사고하는 감각인데 이것이 바로 뇌의 기능을 말하는 것 아니겠나.”

육경六境은 육근과 함께 짝을 이루는 원리이다. 육근이 감각기관이라면 육경은 감각대상이다. 육경의 색성향미촉법 色聲香味觸法에서 육근의 의에 대응하는 것이 법이다. 법은 추상적 관념을 뜻한다.

“의와 법은 곧 뇌에서 관념이 일어나는 작용을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육근, 외육경이라고도 표현되는데, 이런 것을 보면 고대인들도 뇌 기능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어 내육근과 외육경의 원리를 보여주는 쥐가 한 마리 있다며 그 실험쥐의 상태를 설명하다가 푸하하 웃는다.

“세상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거야.”







포항공대 교수로 정부의 대규모 연구지원금을 받아 학습기억현상연구단을 이끌던 그가 200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기자 한동안 이는 과학계 화제가 되었다. 직장을 바꾼 이유는 ‘연구에 전념하고 싶어서’였고, 지방보다는 서울이 연구 환경이 더 좋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연구하는 게 정말 좋다”고 했다.

“의대 마치고 임상을 했는데 의사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느꼈다. 연구가 재미있었다. 사이언스는 임상에 비해 먹고사는 데 더 나은 일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었으니 럭키한 경우 아닌가.”

재능 있는 과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할까? 또는, 훌륭한 연구성과를 얻으려면 어떤 발상이 필요할까?

“빅 퀘스천이 뭘까를 늘 생각한다. 뉴로사이언스 분야의 빅 퀘스천이 뭘까. 중요한 답을 얻으려면 그만큼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분야는 아직 알려진 것이 적어서 뭐든 새롭다. 그래서 무엇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가 하는 연구는 대부분 쥐를 이용한 생체실험이다. 쥐는 인간 유전자의 95.5%를 가지고 있어 현재로서는 가장 적합한 실험대상이다. 실험은 특정 유전자를 변형시킨 쥐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연변이 쥐를 통해 인간의 정신 기능을 규명하고 질환을 치료할 단서를 찾아낸다.

“쥐도 정신병이 있다. 한 예로 우울한 쥐를 찾아내 관찰하면서 사람에게 쓸 우울증 약을 실험하는데, 그 쥐를 물통에 빠뜨리면 얼마간 헤엄치다가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계속해서 헤엄친다. 쉽게 흥분하고 주의력이 부족한 조증 증세를 보이는 쥐에게 치료약을 써도 효과가 있다.”

그런데 쥐가 우울증에 걸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케이지에 든 두 마리 쥐 중에 한 녀석은 입가의 털이 깨끗이 정돈되어 있고 다른 한 녀석은 다듬지 않아 무성한 상태라면 입가가 깨끗한 쥐가 우울한 쥐다. 쥐들은 서로 이발사 역할을 해 주는데 이 녀석은 우울증 때문에 동료의 털을 다듬어 주지 않는 것이다.”

신 박사가 최근 진행한 연구도 돌연변이 쥐를 이용해 학습능력의 변화를 관찰한 실험이다. 현재 연구를 마치고 해외 저널에 논문 심사 요청을 해 놓은 상태인데, 자세한 언급은 논문이 통과된 다음에 가능하니 요지만 이야기하면, 쥐의 어떤 유전자를 억제했더니 학습능력이 향상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결과에 따라 특정 유전자를 억제하는 약이 개발된다면 학습부진아나 치매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로 봐서는 멀쩡한 중고등학생들이 이런 약을 더 많이 찾을 수도 있겠다.







그의 아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대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교육의 현실까지 굳이 꺼내면서 아이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지 않은 이유를 물으니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이기적이어서 안 보냈다. 보내 놓으면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는 우리나라에서 뇌과학자로 사는 것에 불리함이나 조바심을 느끼지 않는다.

“신경과학은 어마어마하게 넓은 분야다. 과학 선진국을 따라가겠다고 그 많은 볼륨을 우리가 다 할 수는 없다. 논문 수를 예로 들면, 미국이 1년에 1천 개를 낸다면 일본은 2-3백 개, 한국은 20-30개인데 이 정도면 잘 하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가 미국이나 일본 과학자들의 논문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질적 수준을 갖춘 것이면 된다.”

그가 책상 앞에 붙여놓은 여러 쪽지들 중 작년 〈네이처〉 지에 실린 뉴스 하나를 뽑아 보여준다. 인도, 브라질, 한국, 중국의 과학 논문 수가 1980년과 2000년 사이에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한 기사인데, 한국은 1980년에 바닥에 납작 붙어 있던 막대그래프가 2000년에는 1만2천 개 선까지 쑥 자라 있다. 가장 앞서 있던 인도는 오히려 감소하고. 신희섭 박사는 그래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국 참 멋있는 나라 아니냐” 한다.    

그는 행복해 보인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음악을 즐겨 듣는 그는 얼마 전, 옆 차선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가까스로 피하고는 너무 화가 치밀었단다. 그러다가 그냥 없던 일로 치자 하고는 다시 음악에 귀를 기울였는데 금방 기분이 괜찮아지더라고. 운전 외에 그가 스트레스를 겪는 상황은 연구실 책상 위에 읽지 못한 자료가 날마다 쌓여가는 것이었다. 며칠간 외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다녀오기라도 하면 더더욱 부쩍 느는데, ‘저걸 다 보고 버려야지’ 하는 마음에 계속 쌓아두었다고. 그러던 어느 날, 연구실로 찾아온 한 친구에게 자료더미를 가리키며 한탄했더니 친구가 “이미 버린 것 아니냐” 하더란다. 그 말에 ‘아, 그렇구나’ 했고 이후로는 아무리 자료가 쌓여도 맘이 편하다고.

행복의 조건은 객관화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는 감각은 아주 주관적이다. 행복감의 메커니즘도 쥐를 통해 규명할 수 있을까. 신희섭 박사처럼 행복한 과학자가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갖느냐 마느냐가 관건이겠다. 행복은 그에게 빅 퀘스천?

글│방은진 jeena@powerbrain.co.kr   사진│김경아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