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문화운동하는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

가슴에 품은 질문을 해소하기 위한 공부

브레인 14호
2010년 12월 29일 (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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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스트 브레인 북에 선정된 《뇌, 생각의 출현》의 저자이자 학습 독서 공동체로 잘 알려진 ‘100북스클럽(100 Books Club)’을 이끌고 있는 박문호 박사를 만났다. 박문호 박사의 전공 분야는 전자 공학이다. 그러나 그는 미국 유학 시절부터 전공 외에도 천문우주학과 뇌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전문 서적만 3천여 권 이상 독파했을 정도로 지적 탐구를 실천하는 대표적 과학자인 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Q. 전공이 전자공학인데, 뇌를 탐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A. 중학교 시절부터 밤하늘에 떠 있는 별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학교에 천문대가 있었고, 천문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뇌과학으로 연결되었다.

뇌를 이해하려면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세포 단위까지 관심을 가져야  생명 현상을 이해할 수 있으니, 우주의 탄생과 소멸, 변화를 탐구하는 천문학과 뇌과학과의 연결은 자연스럽다(저자가 2008년 말에 펴낸 《뇌, 생각의 출현》은 우주 탄생부터 시작해 세포의 생명 활동, 의식 현상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1997년에 귀국한 이후 뇌 관련 서적을 1백여 권 읽었는데, 그것이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이었다. 사실 모든 갈등 구조는 뇌에서 비롯되지 않나.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로 인식하지 못한다.

지금은 정치적·종교적 문화가 우리 삶에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과학을 통해서 들여다보아야 합리적 사유가 가능하다. 뇌를 이해하면 많은 것들이 해소된다. 사회적·문화적으로 형성돼 있는 지적 탐구의 방향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크다.


Q.《뇌, 생각의 출현》을 보면, 특히 루돌프 이나스, 안토니오 다마지오, 제럴드 에델만, 이 세 석학의 책을 많이 인용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A. 이 세 사람은 신경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이다. 뇌를 이해하고 알려면 세 사람의 저서들을 탐독해야 한다. 문제는 그동안 우리의 지식 풍토가 이러한 세계적 석학들의 지식을 향유하고 토론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내용은 이미 10년 전에 들어왔지만 사회적 풍토가 그러한 지적 탐구에 너무나 인색했고, 학습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마지오는《데카르트의 오류》, 《스피노자의 뇌》를 통해 국내에 얼마쯤 알려졌지만, 상대적으로 이나스는 너무 모른다. 이번에 다행히《뇌, 생각의 출현》에서 이나스의 명저인  《꿈꾸는 기계의 진화》가 많이 알려져 출판사에서 재판 인쇄를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큰 일이다. 《꿈꾸는 기계의 진화》는 1쇄 2천 부가 나온 이후 절판 되었던 책이다. 이 책은 한 과학자의 놀라운 지식의 보고다.  


에델만은 이나스 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뇌에 관한 그의 지식은 매우 방대하고 폭넓다. 어떤 분야에서든 뇌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나스, 다마지오, 에델만 이 세 지성이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서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다섯 번은 읽어야 한다. 어떤 때는 하나의 문장을 갖고 한 달 넘게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인간의 뇌는 그만큼 중요하고도 많은 지적 탐구를 필요로 한다.

Q. 100북스클럽은 ‘쉽지 않은 책을 탐구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어려운 책을 골라 읽는 이유는?

A. 불교 TV에서 28강에 걸쳐 뇌과학 강의를 할 때 내가 세운 기준은 ‘내가 하는 강의에서 청중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방송사 측에서는 중학생 수준으로 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이 쉬운 책만 찾고, 출판사도 쉬운 책 출간으로 몰리고 있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뇌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인데, 많은 부분이 종교적인 접근이고, 또 정치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즉, 엄밀함이 떨어진다. 그러니 의견 층이 형성되질 않는다.


청중의 질문은 천편일률적일 때가 많고, 종교적 또는 정치적 문화 풍토에 영향을 받다 보니 항상 ‘마음이 어떻고’하는 식이다. 나는 100북스클럽을 통해 정치, 종교에 의해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편향된 사유체계를 바꾸어보고 싶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너무 과잉 학습돼 있다. 그로 인해 합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너무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교실을 떠나면 학습을 외면하는 현상이 우리 사회의 지적 풍토를 척박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100북스운동은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을 찾는다.


Q. 전자공학이 아닌, 뇌에 대한 명강의로 유명하다

A. 내게는 강의도 뇌 공부의 일환이다. 매번 똑같은 강의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오늘 당장 강의 요청이 들어와도 새롭게 자료를 찾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한다. 강의를 하다 보면 청중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데, 좋은 질문이 나오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의 뇌가 작동하고, 그런 도중에 뜻하지 않는 뇌 속 정보가 떠오른다.

평소에는 생각나지 않았던 정보들이 불현듯 나오는 것이다. 청중과 깊은 대화가 이루어질 때면 어떤 새로운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서로 깊이 공감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 공감이 계속 확장되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소통하고 공감하는 느낌이 중요하다. 


뇌 공부는 세상 속에서 해야 한다. 산 속에 들어가서 인간의 뇌를 연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 맥도날드에 가곤 하는데, 거기에 가면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관찰한다. 일종의 패턴을 보는 것이다. 움직이고 반응하는 모든 것이 뇌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니 사실상 맥도날드에서도 뇌 공부를 하는 셈이다.


Q. 우리가 뇌를 탐구하는 목적을 어디에 둬야 한다고 보는가?

A. 운전자는 자동차의 구조와 원리를 잘 몰라도 운전을 할 수 있다. 그냥 운전하는 법만 배우면 된다. 하지만 뇌는 다르다. 뇌는 운전자이면서 동시에 자동차이기도 하다. 무언가 학습하고 자극을 주면 자동차 자체가 변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뇌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를 뇌에 넣을 것인가를 잘 따져야 한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 요소는 결국 뇌에서 비롯되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나는 그것을 ‘텍스트’라고 본다. 미술에도, 음악에도, 모든 분야마다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결국 지식 체계에서 인간은 무언가 공통의 요소를 갖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제각각의 느낌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어느 분야에서도 전문가란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검증을 거친 책을 읽고, 사유하고, 그것을 하나의 사회문화운동으로 발전시킨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정치와 종교에 의해서 우리 사회에 형성돼 있는 잘못된 문화적 요소들을 고발하고자 한다.


Q. 뇌를 잘 쓴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사실 뇌를 잘 쓰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다면 왜 드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기억력을 증진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 같은 것들은 단기 처방은 될지언정 뇌의 입장에서 보면 종합적인 접근 방식은 아니다.

내게 만약 10시간이 주어진다면 5시간은 뇌의 기능과 구조를 탐구하는 데 할애할 것이다. 뇌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뇌를 알면 많은 현상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를 잘 쓰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과학적인 것에 비춰 얘기한다면, 첫째는 감정을 풍부하게 가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마지오 박사가 오랜 시간 연구를 통해 이미 얘기한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에게 부정적인 정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뇌에 긍정적인 정보를 주고, 풍부한 감성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둘째는 목표 지향적이어야 한다.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세상에는 복잡계가 있고 복합계가 있다. 뇌는 복합계 구조를 지닌 대표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무언가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뇌를 효율적으로 쓰고, 다양한 요소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세 번째는 종합적인 탐구 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열린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고정된 의식은 뇌를 잘 쓰는 방법이 아니다.


Q. 뇌를 잘 쓰기 위해서는 철학이 중요한 것 같다. 국내외로 확산되고 있는 뇌교육에서도 뇌철학을 가장 중시하는데, 이는 뇌를 쓰는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지, 뇌를 잘 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사유하는 것은 결국 삶의 철학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뇌교육에서는 뇌의 근본 가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 먼저라고 보고,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이기도 한 ‘홍익철학’을 강조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중요한 지적이다. 어느 신문 칼럼에 이런 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오랜만에 겨울 산행을 하는데, 어떤 젊은이가 꽁꽁 언 땅을 막대기로 계속 두드리고 있어 지나가며 봤더니 바닥에 ‘위험’이라는 글씨를 쓰고 있더란다. 자신이 산행을 하다 미끄러졌는지 다음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땀을 흘리면서 글씨를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 문제가 아닌데도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는 마음, 뇌를 잘 쓴다는 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젊은이는 커뮤니케이션의 파장을 계속해서 일으켰다. 그 사람의 행동이 산행을 하던 한 필자의 눈에 띄었고, 그 필자가 쓴 칼럼을 읽은 내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전달하고 있으니까.


Q. 브레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뇌를 공부할 때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독서 클럽 회원들에게도 항상 하는 말이다.

첫째, 시공을 사유하라. 둘째, 기원을 추적하라. 셋째, 패턴을 발견하라. 보통 질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소되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해결하는 것에 매달리는데, 공부하는 사람은 해소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고 품을 수 있는 질문이면 좋다. 그것이 언젠가 해소될 때 커다란 지적 향상이 이루어진다. 쉬운 길을 택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정리·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사진·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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