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한글, 미국에서는 알파벳, 일본에서는 히라가나와 카타카나, 중국은 한자를 쓴다. 제각각 다른 언어를 쓰다보니 어디 외국으로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의사소통이 문제다.
그런데 이때 그 나라 말을 몰라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만국공통어가 있다. 손짓 발짓으로 하는 '바디랭귀지(Body Language)'? 아니다. 바로 '숫자'가 그 주인공이다.
1 2 3 4 5 6 7 8 9 10 '아라비아 숫자'라 불리는 이 숫자들은 명실공히 만국공통어라 할 수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일 이 삼 사'라 하고 일본에서는 '이찌 니 산 시', 영어로는 '원 투 쓰리 포'라 할 지언정, 그 말이 표현하는 바는 모두 '1 2 3 4'로 같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 2 3 4'를 '일 이 삼 사'라 하기도 하지만, '하나 둘 셋 넷'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라비아 숫자를 읽는 두 가지 방법을 가진 언어는 유래가 없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4'와 '7'을 '시(し)'와 '욘(よん)', '시치(しち)'와 '나나(なな)'로 예외적으로 부를 뿐이다.
그렇다면 수를 세는 우리 숫자말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우리말 속에 어떤 비밀이 있기에 우리 민족은 하나 둘 셋 넷을 여전히 쓰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행복의 열쇠가 숨어있는 우리말의 비밀》(일지 이승헌 저, 한문화)에서 찾아보았다.
▲ 《행복의 열쇠가 숨어있는 우리말의 비밀》중에서
해답은 한민족의 고대 경전 천부경(天符經)'에서 찾는다. 여든한 자의 한자로 이루어진 '천부경'에는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길지 않은 경전에서 반복되는 숫자의 숨은 뜻을 아는 것이 관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에 담긴 우리 고유의 숫자말의 뜻을 해석해내니 놀라운 보물이 드러났다.
한민족의 숫자말은 나무 한 그루의 삶에서 온전한 우주의 질서와 생명의 이치를 풀어내어 만들어졌다. 언어학적인 분석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따르면서 말의 원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총장은 이를 두고 우리 숫자말의 우수성이 발현된 것이라 했다.
"숫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이치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이해되고 약속된 말이다. 숫자 속에 이치가 담기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홀씨 하나가 땅에 떨어져 움을 틔우고 땅에서 자라올라 열매를 맺고 세상을 아우른 뒤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우리 숫자말에 담겨있다.
자연의 이치를 살피고 그 이치에 따라 스스로 돌보면서 다른 생명과 세상도 귀하게 돌보는 마음으로 사는 것. 이 이상의 도(道)가 없다."
민족의 말은 정신이며 글은 생명이라고 한다. '글'이라는 생명에 깃든 '말'이라는 정신이야말로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요소라는 것이다.
10월 9일 한글날이 올해로 568주년을 맞이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더욱 빛내는 우리말의 가치에 대해서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사진제공. 한문화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