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수를 길었던 곳, 그 물맛은 으뜸이라 - 용정(龍井), 망경사(望鏡寺)

정화수를 길었던 곳, 그 물맛은 으뜸이라 - 용정(龍井), 망경사(望鏡寺)

<2> 가슴 뛰는 혼의 여정, 천손문화연구회 선도문화 탐방기 - 태백

한국선도 연구의 본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천손문화연구회는 지난 6월 21일~22일, 2014년 상반기 정기답사의 일환으로 강원국학원과 함께 태백·강릉지역의 선도문화를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겼다.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기를 7회에 걸쳐 싣는다.

※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 탐방 기획기사
[1편] 태백산을 오르며 - 태백산 당골광장 천부경 비석(클릭)
[2편] 정화수를 길었던 곳, 그 물맛은 으뜸이라 - 용정(龍井), 망경사(望鏡寺)

 

# 정화수를 길었던 곳, 그 물 맛이 으뜸이라 – 용정

단군성전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등반이 시작되었다. 답사팀 중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은 발에 날개라도 달린 양 저만치 앞서나가 보이지 않았고 선두그룹을 이룬 몇몇 사람들도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하늘과 더 가까이 닿을 수 있고 하늘의 기운을 바로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산으로 올라간 우리의 조상들의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은 아주 잘 이해되지만, 매번 답사 때마다 선도 유적지를 찾아 산을 오르려니 마음의 준비가 이만저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 함께 등반을 하고 있는 답사팀의 일원들. 그들의 미소가 맑다.

   
▲ "우리가 더 빨라요." 엄마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태백산을 찾았다는 아이들은 유유히 앞서나갔다.
▲ "자고로 산행은 맨발로 해야지." 맨발 등산이 건강에 좋다면서 등산화를 벗어 들고 산을 오른다.

당골광장에서 천제단까지는 4.4km. 약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갈수록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은 이내 등줄기, 뺨 할 것 없이 온몸에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땀을 흘릴수록 몸과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마치 흐르는 땀이 그동안 내 몸에 붙어있었던 무겁고 정체된 기운 덩어리들을 가지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뿐이던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노래하듯 지저귀는 산새 소리, 족히 백 년 이상 됨직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에 저절로 깊은숨이 쉬어졌다. 숨다운 숨을 쉬어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도시의 탁한 공기와 온갖 스트레스 속에 쪼그라들었던 폐와 마음이 탁 트이는 듯하다. 참 좋다. 참 좋아.

▲ 마음을 담아 쌓은 작은 돌탑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예로부터 태백산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신령스런 산이었기 때문이리라.


천제단 가는 길은 완만한 평지와 가파른 언덕, 계단을 반복하며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언젠가는 끝이 보이겠지’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주변에서 한 가지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등산로 곳곳에 마치 성황당에서 치성을 드리며 쌓은 돌탑 마냥, 작은 돌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는 것이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천제단으로 올라가는 내내 계속되었다. 다른 산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겠지만, 마음을 담아 쌓은 작은 돌탑도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예로부터 태백산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는 신령스런 산이었기 때문이리라.

▲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 닿으리니, 끝없이 이어지던 등산로의 끝에 망경사가 보인다.
▲ 벽을 따라 빼곡하게 쌓인 장작(좌)과 아궁이(우).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끝이 없을 것 같이 계속되던 등산로의 끝에 드디어 망경사(望景寺)가 보이기 시작했다. 천제단을 가려면 망경사를 가로질러 가야 했기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망경사 경내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건물의 벽을 따라 빼곡하게 쌓아 놓은 장작과 큰 솥이 걸린 아궁이. 순간 지금이 2014년이 맞나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망경사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둘러보니 불교사찰인데도 당집과 같은 묘한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도 무속인들이 즐겨 찾아 기도를 드리는 기도처이기도 하다니 완전히 틀린 느낌은 아니었다.

망경사를 가로질러 천제단을 올라가는 길 한쪽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해발 1,470m) '하늘 아래 첫 샘물'이라는 별명을 가진 '용정(龍井)'이 있다. 용정은 천제(天祭)를 지낼 때 정화수를 길어 올린 곳으로 우리나라 100대 명수(名水) 중 으뜸으로 꼽힌다고 하니 과연 그 물맛이 어떨지 궁금하였다. 콸콸 흐르는 물에 한 바가지 듬뿍 받아 꿀꺽꿀꺽 마셔보니 여름이지만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우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혀끝에 감돌고 목 넘김이 아주 부드러웠다. 머리끝 정수리부터 온몸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을 마신 것만으로도 이런 느낌이니, 천제에 올리는 정화수는 아무것이나 올리는 것이 아니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물을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니 위쪽으로 용정각이라는 작은 전각이 보였다. 원래 용정은 용정각 안의 우물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물길을 조금 바꾸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 천제 때 정화수를 길어 올렸던 용정(龍井). 원래 용정의 위치는 뒤쪽으로 보이는 용정각이다.

물을 마시면서 가만 보니 '용정'이라는 이름을 누가 붙였는지는 몰라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이름을 붙였구나 싶었다. 건국신화는 그 나라와 민족의 사상, 역사 등이 상징적으로 압축되어 들어 있는데, 특히 우리 민족의 건국신화 속에는 선도 문화와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주로 '용', '우물', '알에서 태어남'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건국 신화는 (북부여의 시조인 해모수가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다녔다거나,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그의 왕비의 탄생신화, 고구려 시조 주몽의 탄생신화 등)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세계가 보이는 물질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선도문화를 나타내고 있다.

‘용’은 기(氣) 에너지를 상징하는데 이 에너지는 천부(天符)라 불리는 가장 맑고 신성한 에너지를 중심으로 물질세계를 이루는 4가지 원소인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각각 한 쌍씩 짝을 이루고 있다. 우물을 뜻하는 ‘정’의 한자어인 ‘井’은 이러한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가운데 공간이 ‘천부’를 말하며 주변의 8개의 공간은 물질세계의 4가지 원소가 쌍을 이룬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심의 신성한 에너지(천부, 天符)가 기(氣), 화(火), 수(水), 토(土)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를 만들고, 물질세계를 움직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세상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같이 적용될 수 있다. 몸은 물질이지만 내면에는 중심을 이루는 신성(神性)이 있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을 이루어 내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 에너지가 물질세계를 움직여 실제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년 전 우리나라를 강타하였던 자기계발서인 ‘시크릿(secret)’이라는 책에서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설명하며 엄청난 자기계발의 붐을 일으켰던 것을 이미 수 천 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를 개인과 국가 경영의 원리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런 깊은 의미가 있으니, 천제단에 올리는 정화수를 길었던 우물의 이름이 ‘용정(龍井)’인 것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게다가 물맛도 일품이니, 이게 바로 보약이 아니던가.

 

# 외래종교에 의한 수난, 태백신사가 있던 자리 – 망경사(望鏡寺)

용정에서 물을 마시고 망경사를 둘러보면서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진 답사팀이 정경희 교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망경사의 유래를 들어 볼 시간이다.

▲ 망경사의 유래에 대해 설명을 하는 정경희 교수

“망경사는 제천에 앞서 제물을 준비하고 정화수를 길었던 태백신사(太白神祠)가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태백산에 천제단이 있고, 4월 8일부터 5월 5일까지 대단한 규모의 제천행사를 하면 삼도가 들썩들썩 거렸어요. 그 정도로 규모가 큰 제천행사였는데, 이게 유교 국가인 조선의 측면에서 보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왜? 중국 눈치를 봐야 하니까.

유교의 제사제도는 통치를 위한 제사제도로 전통이나 고대로부터의 의미, 이런 거 안 따집니다. 실제로 통치에 유리한지, 중요한 목(牧)이나 도호부(都護府)가 있는지를 따져 국가사전제도(國家祀典制度,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행하는 각종 제사에 관한 규범이나 규정)에 넣었습니다. 태백산은 삼척 도호부에 속했는데, 옛날에는 큰 의미가 있었지만 유교 국가인 조선의 입장에서는 강원도 촌구석인 거죠. 그래서 조선 초 국가사전제도를 정비할 때 태백산은 국가제례에서도 제외해 버립니다. 제일 중요한 장소였는데, 유교국가가 세워지면서 제사에서도 제외됩니다."

▲ 듣고, 적고, 다시 한 번 읽어보는 천손문화연구회 회원들. 늦깎이 대학원생이지만 선도문화 부활을 위하여 끊임없이 공부하리라.

태백산에서 제천의례가 이루어진 시기는 B.C 2천 년, 5대 단군인 ‘구을’ 단군 때이다. 단군이 직접 제천을 하였고, 신라 초기까지만 하여도 왕들이 경주에서 태백산까지 와서 제천의례를 올렸다. 이후 선도가 본래의 의미가 잊히고 점차 퇴락함에 따라 태백산 제천의례도 그 상징성과 중요성이 떨어졌지만, 고려 시대 까지만 해도 국가에서 제관을 파견하여 직접 하늘에 제(祭)를 올렸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정한 유교례에 따라야 했었다. 중국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천제는 중국의 황제만이 할 수 있었고, 조선과 같은 제후국은 땅 제사(地祭)와 사람에게 드리는 제사(人祭)만 지내도록 못 박았다. 이에 따라 조선은 천제와 관련된 모든 제사를 폐지한다. 그럼에도 태백산 제천은 워낙 오래되고도 중요한 풍습이라 이 지역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고을의 향리들과 백성들이 나서서 천제를 지냈고, 수령들도 이 전통을 무시 못 할 정도로 엄청난 권위와 규모를 자랑하였다. 제물이 소 한 마리였다고 하니, 농경 국가에서 얼마나 큰 행사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태백산에서 이루어지는 천제가 눈엣가시 같았던 조선의 지도층은 결국 세조 때, 음사(淫祠)를 금지한다는 명목으로 태백신사를 허물어 버린다. 하지만 수 천 년을 내려온 전통이 태백신사를 허문다고 해서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러자 광해군 시절 영동관찰사로 부임한 ‘김치’는 또 한 번 태백신사를 부수었다. 그래도 민간에서 태백산 제천의례를 지내자, 이번에는 조선 효종 때 ‘충학’이라는 승려가 나서서 태백신사에 불을 지르고 그 자리에 세운 절이 지금의 망경사이다. 심지어 2008년에는 기독교 목사가 태백산 천제단의 석축을 빼내어 훼손하는 일까지 발생하였으니 선도의 수난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망경사 전경. 사진 맨 왼쪽은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삼성각, 맨 오른쪽은 부처를 모신 대웅전이다.

“18세기 ‘이인상’이라는 사람이 쓴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에서 망경사의 모습을 묘사 한 것이 있는데, 서쪽 편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동쪽에는 나무로 된 천왕상을 모셨다고 하였습니다. 천왕이 누구예요? 학자 중에는 천왕을 환웅이라 보는 사람이 많고, 해모수라 보는 사람도 있고, 선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국의 천자나 민간의 산신 등 모호하게 말하기도 합니다만, 선도적인 의미로 보자면 천왕은 환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도적 교화가 최초로 이루어진 시대가 배달국 시기이기 때문이죠. 이렇듯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를 보아도 18세기까지도 망경사는 절은 절이지만, 계속 환웅을 모시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야기를 듣고 다시 보니 지금도 왼쪽에는 삼성각이, 오른쪽에는 대웅전이 있었다. 절 마당에 불상은 최근에 세운 듯, 때가 타지 않은 하얀색의 새 돌이었다. 내친김에 삼성각에 들어가 보니 환인, 환웅, 단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18세기의 목조 천왕상이 남아있었더라면 우리 선도를 이해하는데 더 좋은 자료가 되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천제단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했다. 망경사에서 천제단까지는 불과 400m. 얼마 남지 않았다.

 

✔ 강원국학원 · 천손문화연구회 태백·강릉 선도문화탐방 세번째 기획기사 ::  
[3편] 하늘·땅·사람이 하나가 되는 곳 – 태백산 천제단

 

글/사진. 조채영 기자. hanuid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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