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디지털 치매’라는 새로운 용어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데, 이는 치매와 어떻게 다를까. 일반적으로 치매는 사람의 정신(지적) 능력과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실을 말하며, 어떤 사람의 일상생활 장애를 초래할 정도로 충분히 심할 때 이를 치매라고 얘기한다. 즉, 치매는 특정 증상이 나타나 어떤 기준을 만족시키는 경우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증후군(증상복합체)이다.
정신지체와 마찬가지로 지능의 장애인데, 정신지체는 주로 지능의 발육이 늦거나 정지된 것인 데 비해, 치매는 발병하기 전에는 정상적이던 지능이 대뇌의 질환 때문에 저하된 것을 말한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으면 피할 수 없이 필연적으로 오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치매가 단지 나이가 들어 발생하는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디지털 치매는 시대 흐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우리나라에는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처음 등록되었다. 문명 기기의 발달로 휴대전화,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 결국 두뇌의 기억 용량을 감소시키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중풍이나 노화 현상으로 인한 치매와는 다른 것으로, 갈수록 연령층이 낮아진다는 특징을 보인다. 일본 고노 임상의학연구소에서 제시한 다음 항목에 당신이 해당한다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회사 관련 번호와 집 전화뿐이다.
? 주변 사람과의 대화 중 80%는 이메일로 한다.
? 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
? 신용카드 계산서에 서명할 때 외에는 거의 손으로 글씨를 쓰지 않는다.
? 처음 만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전에 만났던 사람인 적이 있다.
? ‘왜 같은 얘기 자꾸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 자동차 내비게이션 장치를 장착한 뒤 지도를 보지 않는다.
디지털 치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는 현대인이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져 예전에 알고 있던 정보들을 불러오지 못하는 것으로, 실제로 기억력이나 지능이 나빠지는 의학적 치매와는 다른 것이다. 뇌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고 최신 정보는 계속 쏟아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기억하기를 ‘기피’하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치매의 원인을 담음과 어혈로 보고 있으며 보통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병 위주로 치료를 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젊은 사람들이 건망증을 호소하며 내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른 중추신경계나 몸의 다른 부위에 문제가 없으면서 위에서 언급한 증상 중 4개 이상 해당 사항이 있다면 디지털 치매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동의보감》에는 ‘건망증이란 사색을 지나치게 하여 심을 상하면 혈이 줄어들고 흩어져 신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고 비가 상하면 위기가 쇠약해지고 피곤해져 생각이 더 깊어진다’고 적혀 있다. 치료는 심혈을 보하고 비위 기능을 튼튼하게 해주며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제를 쓰게 된다.
또 조용한 거처와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리고, 기분을 좋게 하고 근심과 염려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면 좋은 경과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모든 병은 예방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선별해 기억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렇게 선별한 정보를 자신만의 암기법을 쓴다든지, 메모를 한다든지, 최대한 오감을 이용하며 기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전자 기기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뇌를 계속 사용하여 녹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은 숨 가쁘게 최신 정보를 쏟아내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심호흡 한번 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보자. 건강은 편안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글·박상동 의료법인 동서의료원 의료원장 02-320-7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