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사당한 뇌를 위한 회복 루틴

혹사당한 뇌를 위한 회복 루틴

우리 존재의 뇌과학


자기계발서에서 느끼는 피로감

얼마 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자기계발서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은 이렇게 말했다. 원하는 만큼 돈을 벌고 싶고 원하는 자리에 오르고 싶다면 몸을 움직이라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한 계단이라도 오르고, 꿈이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한 가지라도 실행하라고. 삶의 동력이 되는 버튼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그리고 그 버튼은 더 많은 지식을 쌓거나 더 많이 배우는 데 있지 않고, 원시인들처럼 단순하게 몸을 움직이는 데 있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자 역시 그 버튼을 꾸준히 눌러가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 것이고, 스스로 원하는 성취를 이뤘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남들의 성공담을 인터뷰하고 그런 류의 책들을 엮어온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그 말이 또 다른 피로감으로 다가왔다. 


한 자기계발 중독자의 고백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자기계발서를 탐독해온 독자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엇을 하든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게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고,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고 싶다는 향상심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나를 독려하는 방식으로 곁에 두었다. 어떤 책은 구호처럼 강렬했고, 어떤 책은 멘토처럼 다정했지만 메시지는 대개 비슷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더 부지런해져라, 더 많이 시도해라, 더 밀어붙여라.

나는 그 조언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삶에 적용했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담을 듣고 글로 엮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20~30대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 쏟아부었다.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촉박한 마감에 맞추기 위해 밥 먹는 시간을 아끼며 일했고, 일 외의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했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오십에 이른 나는 가끔 30대의 어느 밤을 떠올린다. 당시 나는 출판사 외주 작가로 일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 직장 생활보다 유동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프리랜서 생활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그게 독이 되었다. 꿈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고, 열심히 일해도 현상 유지가 빠듯했다.

당시 홍대는 잠들지 않는 젊은이들의 거리였다. 나는 노트북 하나를 둘러메고 불나방처럼 클럽을 전전하는 젊은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24시간 카페를 떠돌았다. 빠듯한 마감에 맞추려면 밤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을 새워도 꿈은 오히려 더 멀어지는 것 같았고, 어디서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고 카페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했다. 일에 찌든 한 사람이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 가능한 한 먼 곳,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미래의 한 지점을 응시해보려 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버튼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기계발서 시장에도 트렌드가 있다. 오래전에 나를 독려했던 그 버튼들이 최근에는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더 정교해진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먹고 어떤 순서로 하루를 시작할지까지 섬세하게 설계한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모닝 페이지를 쓰고, 하루를 기록하는 일들…. 그 과정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편한 기시감이 있다. 우리는 이십여 년 전의 ‘더 열심히’ 대신 ‘더 잘 관리된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같은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버튼을 누르면 쾌감 회로가 자극돼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 버튼만 누르던 실험 쥐처럼 말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뭐라도 붙들겠다는 마음으로 방향과 회복을 묻지 않은 채 맹렬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기계발이 아니라 자기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사회학자 바우만은 후기 산업사회에서 개인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모습을 쇼핑에 비교한다. 더 나은 자신을 구매하듯 루틴을 고르고, 습관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주말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고, 카페에 가서 카페인을 주입한 뒤 다시 일을 시작한다. 우리는 그것을 좋은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증거로 여기며 안도한다. 

그런데 뇌과학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보상이 주어지는 환경에 놓인 뇌는 그 자극을 향해 점점 더 집요하게 움직인다.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루함보다 전기 충격을 스스로 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버지니아대학교 티머시 윌슨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실험 참가자들을 아무것도 없는 방에 홀로 있게 했을 때, 상당수가 자극 없는 상태보다 전기 충격이라는 고통을 선택했다. 

심지어 한 참가자는 15분 동안 190번이나 전기 자극 버튼을 눌렀다고 한다. 그 밤 홍대 카페에서 맹렬히 자판을 두드리던 나도, 어쩌면 멈추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자극을 선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가를 치른 후에야 얻은 깨달음

그런 삶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런 삶을 지속했을 때 뇌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붙이기만 하고, 제때 멈추지 못한 뇌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는지를 나는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나는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스스로 다그쳐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고, 마음도 점점 무기력해졌다. 점검의 시간을 갖지 못한 몸과 마음이 고장 난 것 같았다. 혹사당한 뇌와 몸을 회복하기 위해 오래 멈춰야 했다.

그리고 쉰 살이 넘은 지금, 비로소 나는 내가 어떤 흐름 속에 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생산성과 성장의 방향에 맞춰 나 자신을 철저히 밀어 넣고 있었다.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 더 성취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너무 오래 버텼던 것이다.

그 끝에 남은 것은 성취가 아니라 혹사당한 뇌였다. 우리는 물질적인 것에서만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력을, 이 시대의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기꺼이 내어준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 버튼을 맹렬하게 누르고 있다. 그 버튼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지 못한 채.


결국 회복 버튼에 이르기까지 

30대의 내가 막막하게 바라보던 그 나잇대를 훌쩍 지나온 지금, 나는 가끔 홍대의 그 밤을 떠올린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내 선택이 크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혹사당한 뇌를 돌보는 몇 가지 루틴쯤은 마련해두겠다.

집행 모드를 열심히 돌리더라도, 일정 시간은 뇌를 디폴트 모드에 두면서 회복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으로 기분 전환을 하는 대신 몇 분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할 것이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대신, 되도록 정갈한 한 끼를 스스로에게 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끝없는 밤샘 작업으로 스스로 지치게 하지 않고 잠을 충분히 잘 것이며, 아침 햇빛 속을 걷는 찰나의 시간을 내 삶에 더 많이 들일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회복 루틴이 그리 거창한 것도 아니다. BBC와 허트퍼드셔대학교가 공동으로 진행한 대규모 휴식 연구에서, 사람들이 가장 잘 쉬었다고 느낀 활동들은 하나같이 단순했다. 걷거나, 멍하니 음악을 듣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거나.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 활동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에 기억을 정리하고, 감정을 추스르고, 자기 자신을 수리한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한가하게 구름을 올려다보며 앉아 있는 시간이, 사실은 뇌가 가장 바쁘게 자신을 스스로 복구하는 시간인 셈이다.

하여 요즘 나의 주말 아침은 산책으로 시작한다. 책 한 권을 들고 집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몇 페이지를 읽다가,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예전 같으면 일 없는 노인이나 할 것이라 여겼던 일들이다. 그런데 이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쉽게, 그리고 얼마나 깊이 뇌를 회복시키는지를 이제야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홍대의 그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마감을 붙들고 밤샘하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불규칙한 밤샘은 뇌에 좋지 않다고.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가열된 뇌를 멈추고 쉬어주는 시간을 반드시 가지라고.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서 도달한 끝에 마주하는 것이 알츠하이머와 파킨슨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겠느냐고.

수면 중에 뇌는 글림프 시스템을 통해 낮 동안 쌓인 독성 노폐물을 청소한다. 그 밤 홍대 카페에서 내가 아낀 잠이 얼마나 비싼 대가였는지,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마감을 붙들고 그 카페에 새벽까지 앉아 있을 것이다. 잠을 저당 잡힌 그에게, 그리고 오래전의 나에게 다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멈추는 것은 나태가 아니라 뇌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