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처럼 머리에 충격이 자주 가는 스포츠에서는 일부 선수들이 반복된 외상으로 뇌세포가 손상되는 ‘펀치 드렁크 증후군(punch-drunk syndrome)’을 겪는다.
이 밖에도 축구 선수, 군인 등 반복적인 머리 충격을 받고 인지 및 행동 변화를 보이던 환자들의 뇌 병리 연구가 진행되며 만성 외상성 뇌질환(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CTE)이라 불린다.
CTE의 원인이 반복되는 머리 충격만이 아니라 뉴런 내에서 발생한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mutation)와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 보스턴 아동병원/하버드 의과대학 이은정 교수 [사진제공=서경배과학재단]
2019년 서경배과학재단 신진과학자로 선정된 보스턴 아동병원(Boston Children’s Hospital) 이은정 교수 연구실은 크리스토퍼 월시(Christopher Walsh) 교수 연구팀과 협력하여 CTE 환자의 뉴런을 단일 뉴런 수준으로 전장유전체 분석(single-neuron whole-genome sequencing, snWGS) 했다.
그 결과, CTE 환자의 뉴런에서 비슷한 머리 충격을 받은 비환자군보다 훨씬 많은 체세포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10월 국제학술지 《Science》에 보고했다.
머리에 충격을 입는다고 무조건 CTE가 발병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체세포 돌연변이라는 새로운 원인을 제시한 성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CTE 환자, 반복적인 머리 충격을 받았으나 CTE가 발생하지 않은 사람, 알츠하이머 환자 및 신경전형적 대조군의 전전두엽 뉴런을 비교 분석했다.
종래의 단일세포 전장유전체 분석 외에도, 단일가닥 DNA에만 있는 DNA 손상과, 이중가닥 DNA 모두에 있는 돌연변이를 구분할 수 있는 첨단 duplex sequencing 기법을 도입해 체세포 돌연변이를 정밀하게 검출했다.
그 결과, CTE 환자에서 단일염기변이(SNV)와 짧은 염기 결실(indel)이 대조군에 비해 현저히 많이 일어났으며, CTE환자 뉴런의 체세포 돌연변이 양상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뉴런에서 관찰되는 돌연변이 양상과 유사함을 발견했다.
또한 CTE 환자 뉴런의 체세포 돌연변이가 유전자 전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영역, 특히 시냅스 구조와 뉴런 돌기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를 주도한 이은정 교수 연구실의 관란 동(Guanlan Dong) 박사과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체세포 돌연변이의 관점에서 CTE의 발병 기전을 새롭게 규명한 시도”라며, “두 가지 첨단 단일세포 DNA 분석 기술을 결합하고 연구실만의 자체 계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여 질환의 분자적 특성을 정밀하게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은정 교수는 “CTE와 알츠하이머병 뉴런뿐 아니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두 가지 다른 퇴행성 뇌질환 뉴런에서도 공통적으로 2bp 결실(deletion)을 특징으로 하는 짧은 염기 결실(indel) 패턴이 관찰되었다”며 “이는 최근 유사한 패턴의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된 TOP1과 같은 효소의 관여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전 이해를 바탕으로 indel 발생을 억제하는 전략이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의 치료 접근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본 연구의 중개적 치료 개발 가능성을 밝혔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