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생각의 출현> 출간 이후 5년 간 학생, 교사, 주부, 회사원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뇌과학 강의를 펼쳐온 그는 지난 4월 <그림으로 읽는 뇌과학의 모든 것>을 펴냈다. 전작이 우주의 탄생과 지구과학, 생물학 등을 거쳐 거시적 관점에서 뇌와 인간을 바라본 것이라면, 이번 저서에서는 뇌에 더 충실했다.
800여 쪽에 달하는 책에는 진화, 발생 등을 거친 뇌의 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기억, 꿈, 의식, 신경신학 등 기능적 구현을 설명하는 600여 장의 그림을 실었다. 사단법인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www.mhpak.co.kr)’을 통해 지식문화운동을 펼치는 박문호 박사가 최근 참여한 명사 지식 기부 ‘스마트브레인 코리아’ 강연과 인터뷰를 간추려 싣는다.
#1 lecture강연
“축구선수 박지성처럼 보통 운동한 사람의 허벅지는 굵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 출전한 케냐 육상선수들의 다리를 보면 굉장히 얇아요. 그런 다리에서 어떻게 그런 힘과 속도가 나오는 걸까요? 그건 바로 세포당 ATP 분자 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학문은 언어학, 공부의 시작은 언어에서부터
지난 6월 19일 늦은 저녁, 강남의 문화공연장 일지아트홀에 울리는 목소리가 심상찮다. 두뇌포털 브레인월드와 한국뇌과학연구원(원장 이승헌)이 주최하고 브레인트레이너협회가 후원한 명사 지식 기부 특강 <2013 스마트브레인코리아> 첫 번째 강연이 열린 이날, 박문호 박사가 150명의 청중 앞에 섰다. 그가 무대 전후좌우를 오가는 사이, ‘뇌과학과 창의성’이라는 주제의 강의는 27억 년 전 지구의 암석 성분과 현대 인간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 활동 등을 넘나들었다.
“학문은 철저히 언어학이에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이죠. 여러분이 말하고 미소 짓고 끄덕이는 모든 현상에 ATP 분자가 쓰입니다. 인산기(PO4) 3개면 ATP(adenosine triphosphate, 아데노신 삼인산기), 두 개면 ADP(adenosine diphosphate), 한 개면 AMP(adenosine monophosphate)예요. 사람이 활동할 때마다 인산기가 떨어져나가는 거고, 그게 없으면 아데노신이죠. 신경세포에 아데노신이 농축되면 잠을 자야 합니다. 그게 수면압이죠. 이렇게 여러분이 생활하는 모든 활동에 ATP 분자가 쓰이는데, 그걸 몰라서야….”
박 박사는 ‘모든 학문은 언어학’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언어의 본질은 어휘이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할 때 그 분야의 용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의성의 본질은 암기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암기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은 ‘가비지 인·가비지 아웃Garbage in·Garbage out’입니다.”
창의성에 대한 인식 바꾸어야
그에 따르면 창의성은 상상이 아니라 전문가용이다.
“자신이 느낀 바를 얘기하라고 하면 밤새도록 토해내면서, 별과 별 사이의 성간물질에 대하여 논해보라고 하면 왜 한마디도 못합니까? 신생대 지질에 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왜 말을 못해요?”
‘뇌’와 ‘창의성’에 관심을 두고 찾아온 청중들은 다소 생소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박사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매일 만나는 지식 정보의 질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인터넷에 들어갈 때 그 첫 화면이 어떤지 보세요.
대부분 사람의 메인 화면이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입니다. 그 정보들이 얼마나 꺼칠꺼칠하고 불그죽죽합니까? 굳이 자극적 단어를 나열해 놓아서 메일 확인하러 갔다가 괜히 거기에 걸려 들어가죠. 그런데 구글은 딱 입력창밖에 없어요. 구글은 신에 가깝습니다. 매일 노출되는 정보의 질을 평가해봐야 합니다. 당장 프런트 페이지를 바꿔보세요.”
많은 이들이 창의적인 사람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와이스버그의 <창의성> 책의 한 구절을 예로 들며 ‘창의적 사고는 비범한 결과를 산출한 평범한 사고이다’고 설명했다. 물론 결과는 비범해야 주목받겠지만, 그 과정도 비범하리라는 것은 착각이다.
창의적 결과물에 도달할 때까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특별한 사고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고가 적재적소에 사용되었을 때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물 온도가 39℃에서 40℃로 오를 때는 큰 변화 없지만, -1℃에서 0℃로 바뀔 때는 물의 상태가 얼음에서 물로 바뀐다. 창의성은 그와 같다.
창의성 계발을 위한 세 가지 요소
첫째, 자신이 매일 만나는 정보가 어떤 정보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식의 생태계가 매우 중요하다. 정보의 퀄리티(quality, 질)를 체크하라. 매일 만나는 정보의 차이는 1년 후에 엄청나다.
둘째, 지식의 플랫폼을 높여라. 정보의 베이스캠프가 중학생 수준인지, 석사 수준인지 보라. 지식의 플랫폼을 높여야 목표에 빨리 도달한다.
셋째,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 계획된 사고를 하라. 보통 상상력을 마구잡이로 생각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 양질의 검증받은 정보를 쌓아 계획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살면서 그냥 상상해서 문제를 풀어본 게 뭐가 있나? 연속극, 수필, 소설만 보던 사람이 그것을 DNA, 지질학, 대륙이동에 적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원점에서 양질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해야 한다.
그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40세까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자연과학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지식을 쌓되 기본 지식이 상쇄되지 않도록 자신의 플랫폼을 세워야 한다. 언젠가 지구를 이해하겠다는 플랫폼이 있으면, 그것이 항구가 되어 지식이 배처럼 정박하게 된다. 양질의 화물이 오는가 체크하기 위해서는 매일 보는 포털, 카카오톡에서 주로 무엇을 보는가를 점검해야 한다.(많은 청중이 뜨끔해 하는 것이 보였다.)
박문호 박사는 “창의성이란 생물학적으로 기존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기억을 새롭고 독특한 방법으로 조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 자신도 감정과 느낌에 대한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저서 <스피노자의 뇌>를 새롭게 정리해 소개했다.
“인간의 삶을 편안하고 편리하게 만든 모든 이기利器는 공학과 자연과학입니다. 그런 문명의 이기를 만드는 것을 창의성이라 하지요.” 박 박사의 단어는 단호했다. 그것이 또한 청중을 사로잡는 매력이었다.
그는 양질의 엄선된 지식과 개념으로 자신의 사고를 톱다운(하향)식으로 지휘할 것을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하였다. 열정적인 강의에 감명을 받은 청중들은 강의를 마친 후에도 약 20분간 줄을 서서 박문호 박사의 사인을 받았다. 한 아름 지식을 안고 간다는 설렘이 가득해보였다.
‘스마트브레인코리아’는 두뇌포털 브레인월드와 한국뇌과학연구원이 공동 진행하는 대한민국 명사 지식 기부 릴레이다. 한국에 벤처 생태계를 꽃피운 이민화 KAIST 교수, 지식생태학자로 유명한 한양대 유영만 교수, IT 전문가이자 미래학자인 정지훈 박사 등이 열정적인 강의를 꽃피운 바 있다. 지난 강의는 브레인월드(www.brainworld.com)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글·조해리 기자 hsaver@naver.com | 사진·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