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병, 안면인식장애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병, 안면인식장애

[오늘의 두뇌상식 - 81] 안면인식장애가 생기는 이유

어느 날 조 씨(29살)는 같이 사는 사람들과 함께 말을 고치던 의사가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 배우는 보이지 않고 잘 모르는 얼굴의 배우가 혼자 대사를 한참이나 읊고 있었다.

궁금해진 조 씨는 같이 TV를 보던 사람들에게 “도대체 주인공은 언제 나오느냐?”고 물었다가 무안만 당했다. 혼자서 대사를 읊던 모르는 그 사람이 바로 주인공 배우였던 것.

조 씨처럼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안면인식장애’가 있다고 한다. 안면인식장애는 ‘안면인식불능증(Prosopagnosia)', 혹은 안면실인증 등으로도 부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조 씨는 일반인보다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이 조금 떨어질 뿐 실생활에는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실제 안면인식불능증을 앓는 사람들은 친숙한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안면인식불능증 환자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뮤지션 P 박사다. 임상 신경학자인 올리버 삭스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에서 뇌 손상을 입은 P 박사를 소개했다. 그는 아내의 머리를 모자로 착각해 머리에 쓰려고 할 만큼 심각한 안면인식불능증을 앓고 있다.

하지만 친숙한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구분하지 못할 뿐, 다른 기억들은 완벽하게 정상이다. 기본적인 감각이나 지능, 주의력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장소나 사물에 대한 인식 장애가 동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얼굴’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병

안면인식불능증은 실인증(Agnosia)의 여러 유형 중 하나이다. 실인증은 기본적인 감각이나 지능 등에 문제가 전혀 없는데도 자극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처리 과정의 장애’ 혹은 ‘범주화의 장애’라고 불리기도 한다.

소리실인증(Acustic Agnosia)을 앓는 사람은 소리를 들어도 그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손가락실인증(Finger Agnosoa)을 앓는 사람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손가락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실인증이 있다.

그가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

실인증이 생기는 이유는 감각자극 영역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뇌의 능력에 손상을 입어서다. 보통 차 사고나 총상 등 뇌에 손상을 입었을 때 나타난다. 안면인식불능은 모양과 촉감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뇌세포가 손상되어 나타난다. 우뇌 뒤쪽 부분으로 측두엽과 후두엽의 중앙 정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한 번 생긴 장애는 영구적으로 지속한다.

안면인식불능증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대표적으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여분의 인식능력이 섬처럼 따로 분리되어 있다는 의견이다. 안면인식불능증 환자들이 친숙한 인물을 대했을 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피부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는 유의미하게 변화한다. 즉, 능력은 존재하지만 발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론은 사건과 관련된 ‘두뇌 잠재력’이 일반인보다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한다. 안면인식불능증 환자들은 정상인보다 두뇌 처리 과정이 좀 더 길고 느리다고 한다.

얼굴을 못 알아보는 대신

안면인식불능증이 있는 환자들이 사람을 구분하는 방식은 주로 머리 모양이나 목소리, 걸음걸이 등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볼 때, 주인공의 머리 모양이 바뀌면 알아보기 힘들어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최초로 보고된 안면인식불능증 환자는 1956년에 보고된 32세의 남자 환자다. 자동차사고를 당해 3주간 의식불명상태에 있다 깨어난 뒤로 얼굴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능력은 모두 멀쩡했다.

부인이나 자녀의 얼굴마저 알아보지 못했던 그이지만 함께 일하던 세 명의 동료는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세 명은 하나같이 독특한 점이 있었다. 한 명은 눈을 깜빡이는 틱 증상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뺨에 사마귀가, 나머지 한 명은 아주 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은 목소리로 구분했다고 한다.

글.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
도움. 《뇌의 기막힌 발견》, 스티븐 후안 지음, 네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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