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머릿속 화재경보기는 왜 꺼지지 않을까

[칼럼] 내 머릿속 화재경보기는 왜 꺼지지 않을까

만성 스트레스와 회복탄력성의 뇌과학

몇 년 전 한 기업 임원과 상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특별한 질병이 없는데도 늘 피곤하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회의 중에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예전에는 한 번 들으면 기억하던 내용도 자꾸 잊어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기보다 멍하니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건강검진 결과는 정상이었다. 혈압도, 혈당도, 심장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그는 1년 넘게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었다. 출근하면 업무 압박이 시작되고, 퇴근 후에도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주말에도 다음 주 업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몸은 집에 있었지만 뇌는 늘 회사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문제는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뇌의 화재경보기가 너무 오래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대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출근길 교통체증, 업무 마감 압박, 인간관계 갈등, 경제적 걱정, 끊임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까지 우리의 일상은 작은 긴장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단순히 심리적 부담이나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뇌과학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스트레스를 바라본다.

스트레스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을 위해 진화한 가장 정교한 보호 시스템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 반응이 끝난 뒤에도 뇌가 계속 경계 상태에 머무르는 데 있다.

뇌의 경보 시스템은 어떻게 과열되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뇌의 경보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뇌에는 편도체(Amygdala)라는 작은 구조가 있다. 흔히 '뇌의 화재경보기'라고 불리는 곳이다. 편도체는 외부 환경에서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즉시 반응한다. 위험을 감지한 편도체는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내고, 이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HPA Axis)을 활성화한다.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심박수와 혈압이 상승한다.

원시시대 인간이 숲속에서 맹수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자. 생각하고 분석할 시간은 없었다. 먼저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뇌는 즉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동원했고, 그 결과 인간은 생존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자동차가 돌진해 오면 우리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것이 스트레스 시스템의 본래 목적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맹수처럼 짧고 명확하게 끝나지 않는다. 발표를 앞둔 긴장감, 성과 평가에 대한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 인간관계 갈등은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지속되기도 한다. 실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뇌는 이를 위험 신호로 받아들인다. 결국 화재는 이미 끝났는데 경보기는 계속 울리는 상태가 된다.

뇌과학자 브루스 맥이웬(Bruce McEwen)은 이를 '신항상성(Allostatic Load)'라고 설명했다. 반복되는 스트레스가 뇌와 몸에 지속적인 부담을 주면서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는 의미다. 마치 자동차 엔진을 고속으로 계속 가동하면 결국 과열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만성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가장 먼저 변화하는 곳은 편도체다. 편도체는 점점 더 민감해져 예전에는 웃어넘기던 일도 위협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작은 실수에도 과도하게 불안해진다.

반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점차 힘을 잃는다. 전전두엽은 흔히 뇌의 CEO라고 불린다. 계획을 세우고,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통제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전전두엽의 활동이 감소한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말이 거칠어지거나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미루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인들이 자주 경험하는 번아웃(Burnout) 역시 전전두엽 기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도 영향을 받는다. 장기간 높은 수준의 코르티솔에 노출되면 해마의 신경가소성이 감소한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기억을 통합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만성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멍하다",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집중이 안 된다"라고 호소한다. 이는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뇌 회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대학생들도 비슷하다. 시험을 앞두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데도 공부가 잘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많은 학생들은 이를 의지력 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 상태의 뇌가 학습보다 생존에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이 커질수록 편도체는 더욱 활성화되고, 전전두엽의 집중력은 떨어진다.

스트레스에 강한 뇌는 ‘회복’이 빠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들은 무엇이 다를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 이후 빠르게 회복하는 사람들이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 부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편도체가 활성화되더라도 전전두엽이 이를 효과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쉽게 말해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는 뇌가 아니라, 화재가 끝난 뒤 경보를 끌 수 있는 뇌를 가진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같은 발표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실수하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긴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준비한 만큼 해보자"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인지적 차이는 실제 뇌의 반응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행히 뇌과학은 희망적인 사실도 알려준다. 우리의 뇌는 평생 변화할 수 있다. 이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성인의 뇌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연구들은 반복적인 경험과 습관이 뇌 회로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트레스로 인해 변화한 뇌도 회복 경험을 통해 다시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스트레스 예방의 핵심은 편도체가 반응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뇌가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자기 점검 습관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계기판을 확인하듯 하루에 한두 번 자신의 상태를 점검해 보자. 지금 몸이 긴장되어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큰 부담인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반응은 완화될 수 있다.

호흡도 중요한 회복 도구다.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는 복식호흡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한다. 특히 숨을 길게 내쉬는 과정은 편도체에 안전 신호를 보내어 과도한 경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규칙적인 걷기 역시 효과적이다. 걷는 동안 분비되는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는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해마의 기능을 향상시킨다. 하루 20~30분의 걷기만으로도 스트레스 회복 능력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충분한 수면 또한 필수적이다. 수면 중에는 낮 동안 과열된 뇌가 회복되고 감정 회로가 재정비된다. 최근 연구들은 수면 부족이 편도체 반응성을 높이고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는 스트레스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삶의 일부이며 때로는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경보가 울릴 때와 꺼질 때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혹시 오늘도 이유 없이 피곤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면 자기 의지력을 탓하기 전에 먼저 뇌의 화재경보기를 떠올려 보자. 지금 내 뇌는 정말 위험한 상황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끝난 위험을 아직도 경계하고 있는 것일까?

스트레스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보가 울릴 때와 멈출 때를 아는 뇌는 만들 수 있다.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뇌가 보내는 신호를 이해하고 회복할 시간을 허락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회복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뇌 습관에서 시작된다.

글. 신재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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