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은 자기 마음속에 있다

마음이 뇌에 말을 걸다

브레인 33호
2012년 04월 10일 (화)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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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멘토와 롤모델이 성행하는 시대입니다. 남들의 성공 모델을 따라가기 전에, 시대가 제시하는 행복의 기준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한 번쯤은 멈추어 서서 자신에게 물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언제 행복한가?”

어렸을 때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트리나 폴러스가 쓰고 그린 《꽃들에게 희망을》입니다. 동네 서점에서 선 채로 다 읽고 나올 만큼 얇은 책이었으나 그 여운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대목은 호랑 애벌레가 기둥의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에 일어난 일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꼭대기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애벌레는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자 또 다른 목소리가 대꾸합니다.
“조용히 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호랑 애벌레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밑바닥에서 볼 때 대단해 보였던 그 자리가 실은 전혀 고귀한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이어 이런 소리도 들려옵니다.

“저기 좀 봐. 기둥이 또 있어. 그리고 저기도…. 사방이 온통 기둥이야!”

애벌레가 죽기 살기로 올랐던 기둥은 세상에 유일한 기둥이 아니었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지요.

“그토록 고생해서 올라온 기둥이 수천 개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니!”
수백만 애벌레가 아무것도 없는 꼭대기까지 올라오느라 평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벌레는 그제야 깨닫습니다.

놀라운 것은 트리나 폴러스가 1972년에 은유한 현상들이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뻗은 수천 개의 기둥 중에서 이 시대에 가장 높은 기둥을 꼽으라면 아마도 돈과 부동산, 그리고 사회적 성공의 기둥일 테지요. 하지만 이 기둥들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행복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우선 돈과 부동산의 기둥입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할 거라고 믿고 열심히 돈의 기둥을 오르지요. 그러나 데이비드 브룩스는 《소셜 애니멀》에서 돈과 행복의 상관성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물론 부유한 사람일수록 행복할 확률이 높고, 부자 나라일수록 행복할 경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상관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습니다.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의 수천억 원대 갑부들의 행복도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은 갑부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미국인의 평균보다 약간 더 높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행복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삶에서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그들은 답했습니다. 말하자면 돈은 행복의 결정적인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공의 기둥은 어떨까요?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면, 승진을 하면, 사장이 되면 행복할 거라고 믿고 끝도 없이 솟아 있는 기둥을 밟고 밟히며 치열하게 오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행복학 강의를 하고 있는 반 샤르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거의 30년 동안 성공했으면서도 불행했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고, 공부도 잘했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행복은 사회적 지위나 통장 잔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호랑 애벌레가 올랐던 기둥은 돈의 기둥이나 성공의 기둥이었을 겁니다. 열심히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막상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하며 무턱대고 오르기만 하는 욕망의 기둥들. 

관계가 가져다주는 내밀한 행복감
최근의 행복학에서 주목하는 것은 관계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입니다.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밟고 밟히는 경쟁의 기둥에서 내려와 둘만의 사랑을 나눌 때 느끼는 행복감. 관계는 확실히 앞의 두 기둥보다 내밀한 행복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성인 남녀 814명의 일생을 70여 년간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 조지 베일런트 교수팀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연구 결과, 65세까지 충만한 삶을 산 사람 중 93%는 어린 시절 형제자매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뛰어난 지적 능력이나 계급이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단언했습니다. 

다른 연구들도 비슷한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 심리학자 데이비드 슈케이드는 행복과 가장 연관이 깊은 것은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친구들과 식사하기, 성관계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혼자 출퇴근하고 사회성이 결여된 일을 하는 것은 건강에도 해롭고 행복지수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과 돈, 부동산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친밀한 유대감이나 힘들게 노력하는 과정 같은, 정작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조건들은 지나치게 낮게 평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돈이나 부동산 보유 능력, 사회적인 성공이 행복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밝히기는 어렵지만, 사회적인 유대와 행복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셜 애니멀》은 다양한 연구 보고서를 근거로 인간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 행복하게 산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합니다. 1년 동안 한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사람은 같은 기간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람보다 행복합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낮고 더 오래 삽니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 해에 10만 달러를 버는 것과 같은 심리적인 이득을 준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모임의 회원이 되는 것은 연봉이 두 배로 오르는 것과 맞먹는 행복감을 주고 말이지요.

우리는 언제 행복한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지 판단하는 데 무척 서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고 있을까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남들이 언젠가부터 오르기 시작한 기둥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작정 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실제로 우리는 꿈조차도 온전한 자기 자신의 꿈이기보다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이식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1970~1980년대에는 대통령과 장관이 높은 순위를 차지했는데, 요즘은 교사, 공무원이 일순위라고 합니다. 고용 환경이 불안한 시대에 출세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게 된 탓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나라마다 직업에 대한 선호도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어린이들이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을 선망하거나 제2의 김연아, 박지성을 꿈꿀 때, 프랑스 어린이들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꿈꾼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주입식 교육 방식 속에서 꿈이나 행복마저도 전략적으로 주입받으면서 살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설가 은희경은 최근 부쩍 강연 요청이 많아졌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 그 이유가 우리 시대의 멘토, 롤모델의 성공 패턴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탓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검색부터 하고, 스스로 모색하기도 전에 충고부터 얻으려는 건 아닌지” 우려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몇몇은 호랑 애벌레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보다 출세지향적인 행복을 찾아 나서겠지요. 몇몇은 노랑 애벌레가 그러했던 것처럼 행복의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고 자기 안에서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행복을 추구하든 행복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공부도 필요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에서 “행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행복은 돈이나 성공, 관계에 있다고 말할지라도 스스로에게 한번쯤은 반문해야 합니다.

“정말 그럴까?”
자신이 어느 때 행복한지 진지하게 탐색하지 않고 행복을 얻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고 행복해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느 때보다 멘토와 롤모델이 성행하는 시대에 그들의 강연이 한편으론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노파심이 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한 강연들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들여다보게 하기보다 또 다른 수천 수만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를 오르는 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천재들로 가득하다’는 광고를 만든 박웅현은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만의 ‘뇌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유기체는 살아온 족적이 다르기 때문에 뇌관도 다릅니다. 자기만의 뇌관을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몫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사람마다 각자 다른 뇌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뇌관을 한군데로 몹니다. 바로 공부 잘하는 것이지요.”

박웅현의 말을 빌리면, 모든 사람은 ‘아직 뇌관을 찾지 못한 폭탄’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바란다면 먼저, 자기 자신의 존재를 폭발시킬 뇌관을 찾아야 합니다. 한 번쯤은 고치 속에 들어가 나비가 되는 변화의 시간을 감내해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결국 자기 안에 있으니까요.

글·전채연 ccyy74@naver.com
일러스트레이션·류주영 ruy.jo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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