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기억, 시간의 순서 속에서

나를 찾는 기억, 시간의 순서 속에서

생활 속 뇌

브레인 7호
2010년 12월 07일 (화)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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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하늘 위로 해가 뜨고 지며 달이 차고 기울었던 자연의 흐름, 인간은 그 흐름을 시간 안에 담고 모든 것에 순서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시간의 순서는 과거의 일들을 나란히 세워 오늘로 다다른다. 우리의 일상 또한 순서의 연속이다. 라면 하나를 끓이더라도 시간에 따른 조리 순서가 있고, 단순한 수학 문제에도 빠른 시간 내에 정답이 나올 수 있는 공식의 순서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우리 뇌 또한 시간과 순서를 기억하기 위해 분주하다.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고 정돈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뇌의 기억 저장소 문을 두드려본다. 



일상의 정리정돈은 시간과 순서의 인식에서부터

남편은 오늘도 원고 마감이라며 한아름의 책과 종이 뭉치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밤을 새워서라도 다 끝내겠노라고 큰소리쳤지만 일은 몇 시간째 제자리다. 홍수에 젖은 책 말리듯 온 집 안에 책을 펼쳐놓고 어느 것부터 해야 할지 허둥지둥, 옆에서 보는 내가 다 불안하다. 한때는 잘나가는 자유기고가였던 남편은 마감 일정을 잘 지키지 못해 지금은 고정된 코너가 거의 없다. 쉬는 날이면 집 안일을 곧잘 도와주는 남편은 이상하게도 순서대로 해야 할 일 앞에서는 어느 것부터 해야 할지 몰라 뒤죽박죽이다. 다른 부분에서는 나무랄 것 없는 사람인데 왜 유독 시간이나 순서가 정해진 일들에는 난감해할까? 

우리는 매순간 정보와 만난다. 새로운 정보를 만나기도 하고, 과거의 정보를 꺼내서 만나기도 한다. 다양한 정보만큼 많은 방식으로 우리는 그 정보들을 인식한다. 영화를 볼 때는 줄거리를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고,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은 여러 부분을 한꺼번에 인식하기도 한다. 또한 일정한 순서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들도 있다. ‘전화번호 외우기’, ‘하루 일과표 수행하기’등이 그것이다. 한편 ‘10년 전 중학교 졸업식’과 같이 과거의 정보에 시간이란 더듬이를 세워야 재생되는 것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정보 중에서 시간이나 순서와 관련된 정보는 생활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모든 것에 주어진 시간이 존재하는 우리의 일상, 이런 흐름이 혼란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순서를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억의 흐름으로 따라가보는 시간의 흐름

이해력, 적응력, 판단력과 같은 인간의 지적 활동의 기본이 되는 기억, 우리는 기억을 통해 뇌에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한다. 정보는 시간이 지났다 해도 계속 유지되고 필요로 할 때 다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억이 외부의 세상을 담는 과정을 먼저 살펴보자. 정보는 먼저 오감을 통해 들어온다. 그 정보는 측두엽(후내피질)으로 보내지는데, 바로 이 과정으로 인해 우리는 사물을 인지할 수 있다. 인지된 정보는 계속해서 해마로 보내진다. 해마로 들어온 정보는 해마지각 일주를 하는 동안 적절한 형태로 통합되거나 소거된다. 이 같은 정리 과정을 거친 정보는 다시 대뇌피질의 측두엽으로 돌아간다.

기억은 보존되는 기간에 따라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시간 및 순서를 관여하는 기억을 살펴볼 수 있다. 단기기억은 일시적으로 정보를 저장하여 다음의 일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기억의 용도로, 그 용량은 숫자 7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게 적은 용량의 단기기억에도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 등 순서를 따라야 하는 정보들이 들어온다. 이때 특정 순서의 정보를 제대로 기억 못하거나, 순서를 따라야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이 헝클어져버리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단기기억의 용량을 초과하는 정보를 그 용량에 맞게 재구성하지 못해 일어나기도 한다.

먼 과거의 나도 잊지 않는 기억의 순정

비교적 길게 기억하는 장기기억 중에서 시간이나 순서와 관련된 기억으로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과 일화적 기억episodic memory이 있다. 절차적 기억은  ‘자전거 타는 방법’, ‘신발 끈 매기’와 같이 순서를 가진 정보를 기억하는 것으로, 피각이나 소뇌에 그 정보들이 보존된다. 이곳에서는 여러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기억했다가 나중에 회상할 수 있게 하는데, 주로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순서에 맞게 기억된다. 서술기억의 하나인 일화적 기억은 과거의 특정 사건이나 개인적인 경험의 기억이다. ‘지난달 소개팅에서 누구를 만나서 몇 시에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와 같은 기억이 그것이다. 해마가 기호화하여 피질에 축적하는 일화적 기억은 전두엽의 피질 활동에 의해 살아난다. 일화적 기억에서 해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해마를 드러낸 수술을 받은 사람은 전날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며, 과거의 일화적 기억에도 장애가 발생했다고 한다.

학습의 효율을 높이거나 또는 업무를 체계적으로 진행해나가기 위해서는, 뇌에 순차적인 기억을 담당하는 곳의 시냅스를 연결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마감 계획표를 세워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자신에게 맞는 감각의 도구를 사용하여 기억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정보가 적당히 들어올 수 있도록 정보의 속도를 조절하며, 욕심을 버리고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히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것만큼 슬픈 건 없다. 하지만 뇌는 오늘도 뇌 안에 있는 시간 속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변함없이 순정을 바치고 있으니 뇌를 가진 그대여, 슬퍼하지도 외로워하지도 말지어다.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일러스트·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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