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사람을 모으는 기술이 있다. 특히 와인의 경우 그 역사는 짧지 않다. 기원전 400년경에 그리스 희곡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신속히 와인을 가져오라. 내 그것으로 마음을 적시고 현명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리라”라고 했다. 그 시대에도 와인은 철학자들의 심포지엄에 함께하는 음료였다. 와인을 마시면서 특별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던 그 시대의 철학자들은 “와인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와인은 여전히 작은 모임에서부터 정상회담에까지 그 모습을 드러낸다.
.jpg) |
술이 해롭다는 고정관념을 깨다
와인, 특히 레드 와인이 건강과 관련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된 계기는 1991년 11월 미국 CBS에서 방영된 ‘프렌치 패러독스’(프랑스인은 높은 동물성지방의 섭취량과 흡연율에도 불구하고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낮으며, 그 원인이 레드 와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때문이었다. 이러한 프렌치 패러독스를 통해 레드 와인과 관련된 연구들은 더욱 활발해졌고, 연구결과들은 대부분 그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와인이 일반적인 알코올 음료와 구별되는 점 중 하나는 포도가 땅 속에서 영양가 높은 미네랄을 지하수를 통해 흡수한다는 데에 있다. 15년 이상 지난 포도나무는 땅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지하수를 끌어올린다. 값비싼 와인들은 이처럼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포도를 주원료로 쓴다. 와인이 포도만을 사용해서 만들어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와인에는 물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다른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오염된 물을 음용하는 일이 빈번했던 시절, 와인이 ‘성스러운 물’로 불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뇌혈관에 활력을 주는 레드 와인
1997년 프랑스 보르도 대학병원에서 레드 와인이 치매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 이후 뇌를 젊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와인을 택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뇌를 젊게 하기 위해서는 뇌혈관에 활력을 주어 항상 혈류가 원활해야 하는데, 레드 와인에는 이에 필요한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함유되어 있다. 폴리페놀의 강한 항산화 작용은 기미 발생을 억제해주고 피부를 생생하게 유지해준다. 물론 동맥경화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왜 레드 와인인가?’라고 묻는다면 이는 제조방법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폴리페놀은 포도의 껍질과 씨에 많이 들어 있는데 화이트 와인은 껍질과 씨를 빼고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전혀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양이 레드 와인의 10분의 1 정도이다. ‘포도를 그냥 먹거나 포도주스를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효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흡수량이 적게 된다. 폴리페놀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려주어 프랑스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레드 와인을 마시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 폴리페놀 중에서도 껍질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과 레스버레트롤은 암 예방 효과로도 유명하다.
환상의 짝꿍, 치즈
레드 와인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국내에 수입된 레드 와인은 중저가조차 주머니 사정을 돌아보게 한다. 이럴 때 치즈는 값싼 와인조차 풍부한 맛을 끌어내주는 역할을 한다. 와인은 치즈와 함께할 때 더욱 맛있어진다. 치즈가 레드 와인과 궁합을 이루는 이유는 맛에 국한되지 않는다. 양질의 단백질이 뇌혈관에 좋을 뿐 아니라 치즈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 또한 간장의 활동을 돕고 알코올 분해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되고 숙성되어 단단한 치즈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술안주로 단백질을 섭취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이 알고 보면 이런 이치에서 나온 식습관이랄 수 있다. 치즈에 많이 함유된 칼슘은 뇌 활동과 호르몬 분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즈에는 스테로이드계 호르몬과 성호르몬 생성을 촉진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폐경 후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져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이 높아지므로 칼슘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 특히 흡연하는 여성의 경우 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으므로 치즈의 섭취가 중요하다.
2003년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한 실험에서는 와인 테이스팅을 하는 소믈리에가 사고를 할 때 반응하는 전두골 피질 부분에서 일반인과 다른 폭발적인 활동이 발견되었다. 와인을 테이스팅할 때 지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에도 의존한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와인의 효능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얼마 전에는 레드 와인이 헬리코박터균에 대해 방어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국내 수입된 와인에서 발암물질인 에틸 카바메이트의 수치가 위험 수위에 이른다는 보고도 나왔다. 이는 수입 유통 과정에서 와인을 장기간 고온에 방치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적정한 온도 유지가 와인의 맛을 보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효능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알려진 셈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와인이라도 실온에서 계속 방치하면 그 가치를 잃는다. 비싼 와인이라고 진열장 속에 넣어두지만 말고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면서 한 잔씩 주고받으며 한 해를 마감해보는 건 어떨까.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