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는 없어도 뇌에는 남는 환상지

몸에는 없어도 뇌에는 남는 환상지

브레인 토크

브레인 27호
2011년 04월 20일 (수)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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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받지 마 - 너는 쓸모없는 존재야 - 커피에 독이 있어. 마시지 마! - 그 사람들은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 저 뉴스 들었어? 다 너 때문이야 - 벨이 울렸지? 열지 마! 이 바보! - 외계인이 너를 감시하고 있어 - 누군가 네가 없을 때 네 방을 뒤지고 있어…….”

정신분열증 환자의 머릿속에서 들리는 음성이다. 존재할 리가 없는 감각과 터무니없는 사고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뇌질환에서만 발생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상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꿈이다. 대부분의 꿈은 터무니없지만 꿈을 꾸는 도중에는 현실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꿈을 꿀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뇌과학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우리는 우리 뇌가 경험하도록 허용하는 가상의 현실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환상지’다.

존재하지 않는 손이 가렵다?
환상지는 몸의 일부가 절단되어 사라지고 없음에도 그 부위의 감각이 생생하게 존재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환상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유명한 라마찬드란 박사에 의하면 환상지 현상은 손발뿐 아니라 귀, 성기,  젖가슴 등 사라진 신체의 어디에서든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환상지 현상은 감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환상 손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환상의 손을 이용하여 전화를 받고 악수를 하며 대화를 나눌 때에는 실제 손과 마찬가지로 활발히 제스처를 취한다고 한다. 이 사람들의 정신은 환상 신체를 경험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정상이다.


그렇다면 환상지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중세시대에는 영혼, 특히 악령의 존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손발이 그대로 있기를 원하는 열망에 의한 환각이라고도 했다.

과학적 사고가 발달한 현대에 와서는 절단된 말초신경에서 일어난 자극이나 염증이 뇌로 하여금 실제 수족으로 착각하게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그러나 라마찬드란 박사는 뇌의 놀라운 가소성이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뇌 가소성에서 비롯된 환상지
우리의 뇌는 평생 가소성을 가진다. 우리의 뇌는 경험에 따라 계속 변화한다. 뇌 가소성의 원리는 ‘사용하면 강화되고, 사용하지 않으면 약화된다’는 말로 요약된다. 더 나아가 강화된 것은 생존하고 약화된 것은 소멸하기 쉽다.

뇌 가소성의 원리가 어떻게 환상지를 설명한다는 것일까? 우리의 신체는 감각정보를 계속 대뇌의 감각피질로 보낸다. 감각피질 위에 그 감각정보가 공급되는 신체 부위를 표시하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신체가 그려진다.



이를 ‘감각피질의 신체지도’라고 한다. 감각피질의 신체지도는 유전과 어린시절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지만 성인기에도 계속 변한다.

왼손을 잃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왼손에서 감각정보가 더 이상 오지 않으면 감각피질의 왼손 부위는 신체지도상 주변부인 얼굴이나 팔에서 오는 감각에 반응하게 된다. 세수할 때나 바람이 불어올 때 얼굴이나 팔이 자극되면 사라진 손에서도 동시에 경험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감각피질의 왼손 부위가 주변부에 주어지는 감각에 반응하게 되는 것일까? 주변 감각피질로부터 새로운 연결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졌으나 사용되지 않았던 잉여 연결이 다시 활성화되는 것일까?

환상지 현상이 빠르게는 절단 후 하루 이내에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어린시절 훈련에 의하여 만들어진 신경회로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으면 흔적으로 존재하다가 성인기에 동일한 훈련에 의해 재활성화된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

건강한 뇌를 위한 교훈
성인기에도 계속 나타나는 이 놀라운 가소성은 감각피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뇌의 대부분이 이러한 가소성을 보유한다. 따라서 테니스나 바둑 같이 적절한 정신적 도전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활동은 뇌가 건강하게 조직되도록 도와 치매 같은 퇴행성 변화에 저항하도록 해준다.

우리의 마음은 뇌가 경험하도록 허용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건강한 몸을 위해 적절한 음식을 섭취하고 운동을 하듯이, 뇌 건강을 위해서도 적절한 식이와 정신활동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정수영 박사 KIST 신경과학센터 선임연구원

그림 출처·《신경과학, 뇌의 탐구》 Bear 등 공저,
강봉균 등 공역, 바이오메디북,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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