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생각을 멈추고 느낌을 따라가라

선택! 생각을 멈추고 느낌을 따라가라

브레인 신호등

브레인 26호
2011년 02월 24일 (목)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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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뭐 먹을까?”
“아무거나” 혹은 “네가 먹고 싶은 거. 난 뭘 먹어도 괜찮아!”
당신도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단순히 생각하기가 귀찮아서일 거다. 하루 중 우리가 선택해야 할 내용들이 1천여 가지가 넘는다는데, 선택과부화에 걸린 뇌를 생각하면 그럴만하다. 귀찮다는 마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도 보인다. 선택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상대에게 비난받을 까 두려워하는 마음.

아!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단순한 선택의 순간에도 이런 복잡한 감정과 대면해야 하다니. 그래서일까? ‘선택’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은 무겁고 진지하다. 나는 올해부터 내가 갖고 있는 ‘선택’이란 단어의 이미지를 새롭게 수정하려 한다. 경쾌하면서도 명확한 느낌. 그런 선택을 습관화하면 인생이 좀더 발랄해지지 않을까?

지난 학기의 ‘벽화사건’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최근 내 경험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현재 작은 규모의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나를 비롯해서 선생님들의 주된 고민은 아이들의 자발적인 선택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 지난 학기 이런 관점에서 난 재미난 시도를 한 가지 했다. 내 수업(UCC, 자기표현과 창작작업)을 커리큘럼에서 없앴다. 그러니까 지난 학기 단 한 시간도 수업하지 않았던 게다. 물론 선생님들의 동의 아래.

대신 잘 사용하지 않는 교실 하나를 비워달라고 부탁했다. 책상과 의자만 있는 그 방의 한 쪽 벽면을 나와 아이들의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몇 가지 표현도구들을 비치해 두었다. 그리고 틈이 나면 그림도 그리고 만들기도 하면서 개인작업을 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정리하고 나서 걱정도 되긴 했다.

수업이 아닌데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이 공간을 얼마나 활용할까? 독수공방하면 어쩌지? 웬걸! 아이들은 이 공간을 좋아했다. ‘아뜰리에’라는 문패도 스스로들 만들어 걸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수업 후에도 남아서 그리고 만들고 수다 떨며 작업에 몰두했다.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서로 전이되어 자발적인 선택이 이루어졌다.

어떤 친구들은 집에서 천과 재봉틀을 가져오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는 목공 도구들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렇게 표현도구들도 다양해졌다. ‘가르침이 없는 교육’, ‘교사가 있지만 동시에 없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체험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더욱 유쾌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뜰리에의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빈 벽면에 코끼리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게다. 누군가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래, 망쳐도 좋으니까, 해봐!”

이어서 다른 친구가 코끼리 옆에 나무를 그렸고, 릴레이 하듯 아이들이 벽면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볼 때 콘셉트가 있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공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역할만 했던 벽이 이야기를 가진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얻었다. 나는 그 일을 지난 학기의 ‘벽화사건’이라 부른다.

선택당하기 위한 선택 vs 자발적인 선택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이런 체험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2011년을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디 아이들뿐인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1천여 가지 이상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 선택 가운데 정말 자발적인 선택은 몇 가지라고 생각하는가?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조차도 우리는 다양한 광고 이미지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또 사람은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보다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하루의 목표액을 채워야 하는 택시 운전사들 대부분이 차가 막히는 날, 목표액을 못 채웠다는 생각에 오래 일하고, 길이 잘 뚫리는 날은 목표액을 일찍 채우고 일찍 퇴근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길이 잘 뚫리는 날 많이 일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것.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는 또 하나의 실험결과가 있다. 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따뜻한 컵을 들고 있던 면접관은 면접 대상자를 따뜻한 사람으로 느꼈다.

또 차가운 컵을 들고 있던 면접관은 똑같은 면접 대상자를 차가운 사람으로 느꼈다. 주변 환경에 따라 내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예이다. 이런 원리를 활용한다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음료를 건네는 것도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겠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선택받기 위한 선택을 악순환처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택받는다는 것은 시장사회에서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것. 상품성 높은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과 같다.

이걸 먹고 이걸 바르고 이걸 입고 이걸 타면 너의 상품성이 달라져, 라고 유혹하지 않는가. 그러나 선택당하는 인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외 인간들은 뭐랄까, 인생이 우울해지고 외로워진달까. 내 인생도 그렇게 느껴진 어느 날, 나는 ‘선택’에 대한 관점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탈출구를 찾게 되었다.

직관을 따른 선택, 내가 원하는 미래로 이끈다
최근 <완벽한 삶을 위한 선택>이라는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상황예측 능력과 관련한 실험을 보여준 적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서반응을 이끌어낼 때 심리검사에서 자주 사용하는 사진을 피실험자에게 보여준다. 정서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피부의 전도성을 체크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보고 있는 사진이 아닌, 보여지기 직전(사진이 제시되기 3~4초 전)의 정서반응을 피부의 전도성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기도 전에 우리 피부는 미리 직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은 미래를 점치는 게 아니라 직감적으로 아는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다큐를 보면서, 나는 스티브 잡스의 미래를 잇는 ‘점點’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공부를 그만두고 서체에 매료되어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다 알고 있을 터다.

그는 “내가 살면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대신 호기심과 자신의 직관을 따라갔다고 고백한다.


“그 무렵 제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볼 때 그것은 분명 모두 이어진 점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정규과목 공부를 그만두고, 당시로서는 전혀 쓸데없다고 판단되었을지도 모를 서체과목에 매료된 그 순간의 점, 그 점은 이미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를 품은 점은 아닐까.

어쩌면 최상의 선택은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계산할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고 직관에 따라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직관에 따른 선택은 잠재된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현시키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지난 학기의 벽화사건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맨 처음 벽에 코끼리를 그린 아이는 꼴리는 대로 한번 저질러보았을 터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야말로 매우 가치 있는 선택이 아닐까. 그 선택은 ‘내가 선택받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이 벽을 뚫고서라도 나를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을 창조적인 에너지로 풀어냈다.

그런 선택의 순간순간이 쌓일 때라야 ‘직관이 이끄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키워지지 않을까.  

글·곽문주 yaongstar@naver.com
닉네임 콩샘. 소규모 중고등대안학교에서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놀고 먹기 심심해서 소규모 출판을 통해 아이들의 삶을 세상에 소문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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