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의 교육칼럼] 쾌락중추와 세 종류의 행복

문용린 교육칼럼

브레인 2호
2013년 01월 11일 (금)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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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추구가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목표이긴 하지만, 행복한 상태가 과연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그리 확실하지 않다. 흔히들 행복이란 즐거운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대다수 포유류의 두뇌 한 가운데에 쾌락 중추라는 것이 있다. 그 부분에 전극을 장치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그곳이 자극되어 즐거움을 느낀다. 대다수 동물에 그런 인위적인 장치를 하면, 그 동물은 하루 종일 그 스위치만 눌러댄다. 그러다 결국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운동도 부족하여 일찍 죽고 만다. 







사람에게도 쾌락 중추가 물론 있다. 마약이나 섹스 그리고 많은 중독성 약물은 이런 쾌락 중추를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사람 중에는 동물처럼, 쾌락중추의 직접적 자극을 추구하여 몸을 버리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이런 즐거움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을 빼앗은 것으로 간주하여 크게 경계한다.

이런 점에서 행복은 쾌락 중추의 직접적인 자극에서 오는 즐거움 이상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즉, 행복에는 쾌락 중추의 직접적인 자극에서 오는 찰나적 즐거움 뿐 만이 아니라,  기대와 목표의 달성, 희망과 소원의 충족  또는 의미와 가치의 실현이 이루어 질 때 수반되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그 질적 성격에 따라 다음의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쾌락적 행복(pleasure happiness)

첫째는 쾌락적 행복(pleasure happiness)이다. 이 행복은 쾌락중추의 다소간 직접적인 자극을 통해서 느껴지는 행복이다. 식욕, 갈증, 성욕, 알코올, 진통제, 마약 등에 의존하여 느끼는 즐거움이 여기에 해당된다. 쾌락적 행복은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즐거움일 때가 많다. 쾌락적 행복은 짜릿한 감각적 요소와 격렬한 정서적 요소를 지닌 즐거움으로, 철학자들이 말해온 원초적 감정들이다. 황홀경, 전율, 오르가슴, 희열, 환희, 안락함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즐거움이다. 이런 감정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생겨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그 강렬한 쾌락성 때문에 심리적 집착이 강하여 중독성으로 발전할 경우가 많다.

만족적 행복(satisfying happiness)

둘째는 만족적 행복(satisfying happiness)이다. 이 행복은 쾌락중추의 직접적인 자극을 통해서 생기는 원초적 감정으로써의 즐거움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통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을 말한다. 예컨대 기타를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수반되는 행복감 같은 것이다. 가난했던 사람이 오랜 동안의 각고의 노력 끝에 부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 같은 것이다. 이 만족적 행복에는 자기연마와 준비, 인내심 등의 자신의 잠재능력 개발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 주변의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은 결국 만족적 행복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온전한 행복(authentic happiness)

세 번째는 온전한 행복(authentic happiness)이다. 이 행복은 만족적 행복에 머물지 않고, 사회나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미덕과 가치를 자기의 삶 속에 실현하여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 중에서 희생과 봉사 그리고 자선에 유달리 앞장서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더 완전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마더 데레사 같은 수녀는 만족적 행복에 머문 사람이 아니다. 보편적 인류애라는 가치를 자신의 삶 속에 실현코자 한 온전한 행복을 경험한 사람이다.

인류가 추구해온 보편적인 가치와 미덕에는 예컨대, 지혜와 학식, 용기, 사랑과 인간애, 정의감, 절제력, 영성과 초월성 등이 있는데, 이런 미덕과 가치를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고자하는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한 행복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쾌락적 행복 보다는 만족적 행복이 더 길고 깊고 가치있는 긍정적 정서를 유발한다. 찰나적 쾌락과 향락 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한 사회적 성공이 더 길고 깊은 만족의 행복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족적 행복은 개인적 출세나 성공에 기반을 둔 만족감이어서 온전한 행복에 비해서 공동체적이거나 인류애적 만족과 행복감의 깊이가 아직 덜하다.

빌게이츠나 죠지 소로스가 온갖 심혈을 들여 이룩한 부를 자선사업에 아낌없이 던져 넣은 것은 바로 온전한 행복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정서의 깊이와 넓이가 만족적 행복의 경우 보다 그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개인 적으로 충분히 성공한 청년 마하트마 간디가 그런 것을 포기하면서 인도 민중의 보편적인 기대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한 것은 만족적 행복에서 찾지 못한 더 깊고 넓은 온전한 행복감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글. 문용린(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전 교육부장관) / 일러스트.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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