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듯 어쩌면 진실한 사랑은 사회의 밑바닥을 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만이 교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 (2002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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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교통사고로 형을 살다가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종두 (설경구 역). 사실 차 사고를 낸 것은 종두가 아니라 잘난척하는 형이다. 다만 그들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종두를 이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좀 모자란 데가 있는 종두는 여기에 대해 화를 낼 줄도 모른다.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간 종두는 초라한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공주(문소리 역)를 만나게 된다. 공주는 중증 장애인으로 혼자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
오빠 부부는 장애인인 동생을 이용해 새 아파트를 싸게 구입하고는 공주 자신은 낡은 아파트에 버려둔다. 즉 공주 역시 종두와 똑 같은 방법으로 가족들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슷한 점이 서로에게 통한 것일까? 아니면 더 내려갈 수 없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눈길일까? 종두는 또다시 그녀를 찾아가고, 욕정을 느낀 그는 공주를 강간하기 위해 덤빈다. 그녀는 혼비백산 기절해 버리고 종두는 도망친다.
죄의식에 어쩔 줄 모르던 종두에게 어느 날 밤 더듬는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온다. 공주다. 그들은 다시 만나게 되고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종두의 형이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데이트를 하고,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하며, 휠체어를 밀면서 복잡한 서울의 거리를 산책하기도 한다. 모자란 남자와 장애인 여자, 이런 그들을 바깥세상은 물론 반기지 않는다. 식당에서도, 가족끼리의 피로연에서도 그들은 전혀 달갑지 않은 존재다. 얼마 후 공주의 외딴 방에서 서로 섹스를 나눌 무렵, 때마침 들어온 오빠네 가족 때문에 종두는 강간의 누명을 쓰게 된다.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 한가지는 종두는 공주를 두 번째 보았을 때 강간을 하려 했고 공주는 놀라 기절해 버렸다. 그런데도 공주는 종두에게 전화를 걸어 관계를 맺으려 한다. 워낙 멍청한 종두인지라 사랑의 표현을 강간의 형태로 한 것인가? 아무도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기에, 강간 대상이라도 되었다는 사실에 공주가 감격한 것일까? 감독의 의도가 이러한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 부분은 비약이 심한 것 같다.
근긴장이상증, 기저핵 기능 장애
약간의 비약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신경과 의사인 나를 감탄시킨 것은 문소리의 환자 연기다. 문소리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공주가 걸린 병은 무엇인가? 온 몸의 근육은 모두 다른 정도로 긴장이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손가락은 약간씩 구부러져 있는 것이 정상이다. 즉 구부리는 근육이 펴는 근육보다 더 많이 긴장되어있다. 하지만 공주의 경우 몇 손가락은 펴는 근육이 구부리는 근육보다 더욱 긴장되어 있다. 즉 근육의 긴장도는 손가락마다 다르다. 따라서 공주의 손가락 몇 개는 아래를 향하고 있지만 다른 것들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팔 역시 정상인의 자세 즉 팔꿈치를 약간 안쪽으로 굽은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괴상하게 비틀어져 있으며, 목과 허리도 마찬가지다.
근육의 긴장이 잘못되어 몸이 비틀리는 이러한 증세를 의학용어로 ‘근긴장이상증 (dystonia)’이라고 부른다. 우리 뇌의 깊은 곳 좌우에 위치한 회백질 덩어리 ‘기저핵’은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한다. 물론 기저핵이 운동중추는 아니므로 이곳이 손상되어도 팔, 다리에 마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움직이는 근육의 조절이 안 된다. 기저핵에도 여러 종류의 세포가 있어 손상되는 세포에 따라 그 증세는 달라진다. 기저핵 기능 저하의 대표적인 병으로 ‘파킨슨 병’이라는 것이 있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의 힘은 정상이지만 속도가 둔해져 움직임이 어눌해진다. 걷는 것도 느려지고 말도 어둔해지며 게다가 양손을 덜덜 떨게 된다. 파킨슨 병의 경우와는 반대로 기저핵의 기능이 잘못된 후 오히려 지나치게 근육이 많이 움직이게 되는 증세도 있다. 이때 환자들은 마치 춤을 추듯 손, 발을 마구 움직이게 되므로 이런 증세를 ‘무도병’이라 한다. 공주가 보이는 근긴장이상은 기저핵 기능 이상의 또 다른 형태로서 근육의 긴장 조절이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공주의 경우 얼굴 근육, 눈동자 움직이는 근육을 포함한 온 몸의 근육이 모두 잘못된 근육긴장의 정보를 받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눈동자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손, 발 그리고 허리조차 뒤틀리게 된 것이다. 그녀의 발음이 어둔한 이유는 얼굴, 혀, 그리고 목구멍 근육에도 긴장 이상 증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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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산소증, 기저핵 뇌졸중, 종양 등이 원인
그런데 영화에서 우리는 공주의 몸 비틀림 증세가 그녀의 감정적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종두가 강간을 하러 덤벼들 때 (공포), 섹스하는 도중 (쾌락), 그리고 종두가 강간범의 누명을 쓰고 조사를 받을 때 (당황, 분노) 공주의 팔, 다리는 더욱 꼬이고, 목은 옆으로 돌아가고, 끙끙거리기만 할 뿐 목소리 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반면 종두와 조용히 대화를 나눌 때, 혹은 그를 생각하며 혼자 걸레질 할 때는 그녀의 증세가 비교적 심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문소리의 연기는 근긴장이상 환자의 완벽한 재현이다. 근긴장이상 증세는 감정적으로 흥분할 때 더욱 악화되며 마음이 안정되었을 때 감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벤조다이아제핀 계통의 신경안정제는 이런 환자의 증세를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공주가 앓고 있는 기저핵의 기능 저하는 왜 생기는 것일까?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 어릴 적 조산이나 난산으로 태아 시절 뇌가 저산소증에 빠져 기저핵 기능이 손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흔히 뇌성마비라 부른다). 물론 기저핵의 기능장애로 근긴장이상증이 생기는 원인은 이외에도 많다. 기저핵에 뇌졸중이나 종양이 생기는 경우, 일산화탄소 중독, 그리고 유전병인 윌슨 병, 할레보르덴-스파츠 병, 근긴장 부전증 등 다양한 원인이 있다. 근긴장이상 증세가 심하지 않거나 증세가 일부 근육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경우, 항콜린성 약제를 사용하거나 보톡스를 주사하면 증세가 많이 호전된다. 요즘은 기저핵의 일부를 일부러 손상시키는 수술을 해서 효과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공주처럼 증세가 심한 경우 완전히 치료되기는 어렵다.무의식에 배어있는 차별의 폭력
그럼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배려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괴로운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얼마 전 외국인 학자들과 함께 남대문 시장을 구경하고 롯데 호텔로 걸어오던 상황이 떠올랐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지하철 계단을 몇 번 오르내렸는데 한 프랑스 여성 학자가 내게 물었다. “아니 왜 서울 지하철에는 장애인을 위한 계단이 없는 거죠?” 그 질문에 당황한 나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주워섬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 나라는 단일민족 국가라 장애인이 별로 없거든요.”
겉으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냉대를 그리고 있는 이 영화를 자세히 들여보면 실은 우리 한국인들의 ‘정상적인’ 행위 속에 숨겨져 있는 갖지 못한 자에 대한 폭력을 폭 넓게 고발하고 있다. 사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종두나 공주의 가족들을 ‘나쁜 사람’이라 몰아세우기는 힘들다. 어차피 전과도 있는데다가 직업을 가지고 있는 형이 온 집안을 꾸려가고 있으니 네가 대신 감옥에 잠시 들어가라는 종두 가족의 논리가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가족의 일원이 장애인인 점을 이용해 아파트 하나 싸게 구입한 공주 가족 역시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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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쇼핑한 물건을 들고 규칙적으로 공주에게 들리는 등 공주를 사랑하는 면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소외계층에 대한 보이지 않는 무관심, 그리고 폭력은 우리 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다. 예컨대 돈이 있으면 부동산을 사는 것,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 돈을 버는 것도 결코 죄를 짓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은 돈 없고 자기 집 없는 사람을 더욱 깊은 절망에 빠뜨린다. 자식들에게 고액 과외 시키는 것, 재벌이 그 자식을 회사 중역으로 앉히는 것도 큰 죄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력과 부가 구조적으로 세습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에게 언제나 불공정한 패배와 절망을 안긴다는 점에서 역시 소리 없는 폭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국가로부터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그린 이창동 감독의 지난 영화 박하사탕과 맥을 같이한다.
공주는 근긴장이상증 보다도 더욱 괴로운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방안에 걸린 오아시스 그림에 밤마다 어른거리는 그림자. 공주로서는 창 밖 커다란 나무가 가로수 불빛을 받아 생기는 그 그림자를 없앨 수 있는 아무런 방도가 없다. 여기서 오아시스는 고된 인생을 종지시킬 수 있는 희망을 의미하며, 그림자는 그 희망을 위협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파출소에서 탈출한 종두는 추격하는 순경들을 따돌리고 가로수 나무 가지를 잘라냄으로써 결국 오아시스에 비치는 그림자를 없애는데 성공한다. 사회의 밑바닥에 살던 쓸모없는 사나이가 한 중증 장애인 여성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순간이다. 격투 끝에 악당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출하는 흔히 보는 서양 영화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결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글│김종성
jongskim@amc.seoul.kr 울산대의대, 서울 아산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