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천재 서번트, 뇌에 대한 새로운 자각

뇌의 신비

브레인 1호
2010년 12월 07일 (화)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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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지닌 서번트에 관한 연구가 완성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머롤드 A. 트레퍼트 Darold A. Treffert


서번트를 세상에 알린 영화 <레인맨Rain Man>

1988년 개봉한 영화 <레인맨>은 경이로운 기억력을 소유한 한 자폐증을 가진 형(더스틴 호프만)과 이기적인 동생(톰 크루즈)의 형제애를 로드 무비 형식으로 다룬 휴먼 드라마로, 당시 더스틴 호프만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그 해 최고영화상을 포함해 아카데미 4개 부문에서 수상을 영광을 안은 작품.

특히, “<레인맨>은 개봉 101일 만에 지난 101년 동안의 서번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보다 더 많은 주목을 이끌어내었다”고 할 만큼 ‘서번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영화로 남다른 조명을 받았다.

영화 <레인맨>은 땅에 떨어지는 이쑤시개의 숫자를 단숨에 알아맞히는 등의 실로 경이로운 서번트들의 능력과 자폐증과의 상관관계(자폐증 환자 중 약 10%가 서번트 능력이 있다. 하지만 <레인맨>에서 보이는 비범한 서번트는 지난 100년간 약 100명 정도라고 보고된다)를 파헤친 영화이지만, 영화는 이기적인 정상인 찰리와 장애인인 레이몬드 두 사람이 가진 벽은 실은 단지 조금 다른 종류의 벽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보는 이로 하여금 서번트에 대한 인식변화와 특별한 휴머니즘을 선사한다.

당시 서번트인 레이몬드 역을 맡았던 더스틴 호프만은 처음에는 찰리 역을 맡을 계획이었으나, 레슬리 렘키(Leslie Lemke)라는 서번트가 눈 멀고 학습장애에 뇌성마비까지 있었지만 협주곡을 귀로 듣고 피아노로 그대로 쳐내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을 보고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받아 레이몬드 역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불치의 장애를 가지면서도 신의 재능을 엿보이는 듯한 서번트의 연기를 선보여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과 찬사를 동시에 가져오게 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최고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으로 뽑히는 것이 당연시될 정도였다.


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가진 서번트의 경이로움

심각한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에게서 일부 나타나는 이른바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들은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100명가량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아자폐증, 지체장애 등의 중증장애를 안고 있는 동시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서번트’라 부른다. 서번트 중에서도 그 능력이 비범한 이들은 한 번 들은 곡을 완벽히 연주해내고, 백과사전을 달달 외우고, 지금으로부터 수만 년 전후의 날짜를 물어보면 해당 요일을 바로 답변해주는 기가 막힌 수리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일란성 쌍둥이인 조지와 찰스는 탁월한 날짜 계산능력을 가진 서번트로 이들에게 특정한 날짜를 지정해주면 8만 년의 범위 안에서 질문한 날이 무슨 요일인지를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10달러를 주고 6달러짜리 물건을 사면 4달러의 거스름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모른다.


레슬리 렘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났을 무렵 16세의 시각장애 소년 톰은 피아노 연주 투어를 시작했다. 그는 100개도 채 안 되는 어휘를 구사했지만, 5천 곡이 넘는 연주 레퍼토리를 가진 음악의 천재였다. 11세 때, 톰은 백악관의 대통령 앞에서 완벽한 연주를 했으며, 이를 믿지 못했던 많은 음악가들이 다음날 호텔로 불러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완벽하게 새로 작곡한 두 곡을 연주하자, 이내 이를 완벽히 소화했다.

레슬리 렘키는 정규 음악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며 청각장애, 정신지체, 뇌성마비 등 세 가지 장애를 동시에 지녔다. 하지만, 열 살 때 난생처음 TV에서 들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을 그 자리에서 완벽히 연주했다. 그는 아무리 복잡한 곡이라도 100% 똑같이 연주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편곡하기도 한다. 알지도 못하는 그리스어로 부른 노래를 자신의 절대음감을 이용해 피아노 연주곡으로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어로 완벽히 재현해내기도 한다. 레슬리 렘키는 현존하는 서번트 중 최고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모방에 머무를 뿐이라 여겼던 서번트의 능력을 시간이 흐르면서 창조적 단계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신박약과 시각장애가 빈번하게 연관되고 이 두 가지 요소가 특히 음악적 재능과 함께 나타나는 서번트 신드롬의 신비로움은 그것을 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서번트 신드롬에 관한 기존 이론을 재검토하고 직접 25명의 서번트들을 인터뷰했던 제인 두켓 박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서번트 신드롬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서번트는 퍼즐이며, 어쩌면 영원히 풀지 못할 퍼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서번트들의 아주 특별한 뇌 기능은 우리들의 정상적인 뇌 기능, 나아가 인간 잠재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동시에 제시해준다. 과학자들의 도전은 그래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백치천재 서번트가 주는 메시지 ‘칭찬과 사랑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Rain Man"의 모델 Kim Peek

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가진 서번트. 하지만, 이러한 것을 ‘재능’이라고 부르기엔 서번트들이 안고 있는 장애가 적지 않다. 서번트 대부분이 좌뇌 측두엽의 장애를 안고 있으며, 인간 좌·우뇌가 가진 유기적인 협력 체계에 따라 좌뇌의 손상으로 인하여 우뇌의 특정영역의 능력이 발현되었다는 것이 많은 서번트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주된 얘기이다.

서번트로부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신이 내린 재능이라기보다 그들이 불치의 장애를 딛고 그 재능을 꽃피우기까지의 과정이다. 인간으로서 쉽게 범접하지 못할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들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 재능을 보이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인내가 있었음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

실제로 많은 서번트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아랑곳없이 끊임없는 도전과 훈련을 통해 재능을 무한대로 확장시켜왔다.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들은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서번트들은 한 사람이든 수천 명의 관중이든 언제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마치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신성한 의식인 것처럼 그렇게 행동한다. 명예도 재물도 필요치 않으며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또한, 비범한 서번트들의 뒤에는 언제나 무한한 믿음과 사랑을 주는 후원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초기에 약간의 재능을 보이면서부터 이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뇌의 능력을 보이기까지,  서번트와 후원자 간의 절대적 신뢰와 사랑의 관계가 없었다면 서번트의 능력 또한 성장에 한계가 있었을 거라는 것이 많은 연구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보통사람(?)들도 누구나 단점과 장점을 갖고 있다. 아니 모두가 장애를 갖고 있다. 단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가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점을 키우기보다 단점을 부각시키고, 타인의 장점을 부러워하지만 자신의 장점을 인정하질 않는다. 그러나 서번트들은 다르다. 장점을 부각하는 것이 곧 단점을 보완하고 오히려 승화시키는 것임을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서번트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서번트들에 대한 치료 방안은 결론지어졌다. 장애를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느냐, 아니면 재능을 더욱 키우는 쪽이냐에서 결론은 후자이다. 재능을 꽃피우는 것이 장애를 보완하는 지름길임이 지난 오랜 기간의 연구 결과 결론지어졌기 때문이다. 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서번트들이 보여주는 절대적 믿음과 사랑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뇌가 가진 창조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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