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문용린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국내 대표 교육석학에게 듣는다]

브레인 1호
2010년 12월 29일 (수) 17:33
조회수15083
인쇄 링크복사 작게 크게
복사되었습니다.

40대에 교육부장관을 역임하고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30년간 학자의 길을 걸어온 교육계의 석학. IQ 위주의 지능발달에만 초점을 맞추던 교육풍토를 비판하고, 저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며 국내 최초로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교육의 가장 큰 주체는 바로 부모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부모들이 올바른 철학을 가져야 한다며 최근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를 펴낸 문용린 교수에게 《브레인》창간을 기념하여 인터뷰를 청했다.

IQ는 흘러간 얘기, 두뇌의 재능은 너무나 다양해







문용린 교수는 국내에 ‘다중지능이론’이란 개념을 처음 소개해 IQ 하나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던 교육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재능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금세 우리나라 부모들의 잘못된 IQ 맹신부터 지적한다.

“IQ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흘러간 얘기인데 그걸 갖고 판단하는 건 우스운 거지요. 두뇌의 다양한 능력을 어떻게 하나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IQ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절실하게 전해올 만큼 그의 목소리 톤이 오른다.

실제로 20세기 후반 들어 선진국에서는 IQ에 대한 회의론이 일었고, 1970년대에는 IQ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 이미 IQ는 한물간 얘기가 된 지 오래다.

“누군가의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숫자를 잘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눈으로 본 걸 잘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로 들은 걸 잘 기억해요. 언어능력도 마찬가지이구요. ‘다중지능이론’을 처음 내놓은 하버드대 가드너 교수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능력의 극히 일부밖에 표현 못하는 IQ에 맞서 인간의 능력을 신체운동 지능, 인간친화 지능, 자기성찰 지능,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자연친화 지능, 공간 지능 등 여덟 가지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정말 좋아하는지 찾아야

단순하지 않은 뇌의 역량에 비해 부모들의 바람은 단순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대한민국에 어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지 않을까. 부모의 입장에서야 의사도 만들고 싶고 판사, 검사도 만들고 싶을 테지만, 정작 내 아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고 그는 지적한다.

“대학에 온 학생들 중 상당수가 사실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라요.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한두 가지 정말로 몰입하는 게 있어요. 가슴이 짜릿하고 내 모든 것을 걸고 싶은 그런 것.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그러한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외국의 경우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을 가는 비율이 우리나라처럼 그리 높지 않아요. 대학 진학을 선택할 때도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죠. 정말로 뜻이 있는 학생들이 가기 때문에, 대학에 가면 공부를 아주 열심히들 합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어느 정도 정해놓고 가니까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다.


대나무 교육론, 기다릴 줄 아는 지혜







“‘모소’라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이 대나무는 뿌리가 먼저 땅속으로 멀리 뻗어나가고, 그렇게 계속 뿌리만 키우다가 5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죽순이 올라옵니다. 5년은 대나무에게 준비를 하는 시간인 셈이지요.” 풍성한 대숲을 이루기 위해 대나무의 뿌리는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땅속에서 힘을 기른다고 한다. 마침내 때가 되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하늘로 치솟아 올라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빽빽하고 울창한 대숲을 이룬다.

“부모들도 대나무처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의 재능이 과연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고, 우리 아이가 무엇을 제일 좋아하는지 인내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해요.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아이는 그것을 위해 저절로 노력하고 도전해나갑니다. 자발적인 동기만큼 큰 성취를 가져오는 것은 없지요.”

내 아이가 가진 가장 큰 재능과 평생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아주는 것, 그는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사교육은 활용의 대상일 뿐

그러나 경쟁적인 교육현실에 맞닥뜨리면 어느 부모든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사교육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돼버린 우리나라 사교육 현실에 대한 교육석학의 의견이 궁금했다. 이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학원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교육의 중심이 사교육으로 옮겨가는 것을 저는 반대합니다. 사교육을 활용해야지 거기에 빠져서 본질을 잃어버리면 이것도 저것도 되질 않습니다.” 덧붙여 그는 사교육에 대해 다른 면도 보고 있다고 말한다.

“부모님들은 각종 학원비에 허리가 휠 지경이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 있어 다양한 경험을 시킬 수 있는 우수한 인프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교육이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게 발달한 나라입니다. 외국은 사교육비가 상당히 비싸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이른바 교육상품이 다양하지요. 완전히 고객중심형으로 되어 있는 셈이에요. 무게중심을 어디에다 두는지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활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학원교육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교육 자체를 부정적으로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학원교육을 반대하는 이유는 사교육 자체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교육에 부모가 교육을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

“사교육은 활용의 대상이지 교육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원은 교육의 장이 아니라 정확히 얘기하면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는 곳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교육의 본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기술만을 배우는 셈이지요.”

서울대학교에서 30년간을 재직하며 누구보다 많은 학생들을 접한 그는 실제로 학원교육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도 주체적으로 공부하질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했다. 공부하는 기술은 배웠을지언정 스스로 이루어가는 주체성이 떨어지고 공부에 대한 진지함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중심 잡기 위해선 부모의 철학이 필요하다







‘샤워실의 바보’라는 말이 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려면 손잡이를 더운물 쪽으로 약간만 돌려놓고 조금 기다려야 하는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한 바보는 더운물 쪽으로 손잡이를 더 깊게 돌린다. 그러면 이내 뜨거운 물이 나오고, 뜨거운 물에 화들짝 놀란 바보는 다시 찬물 쪽으로 손잡이를 돌린다. 그러다가 결국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고 샤워를 못하고 만다는 얘기이다.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국가의 교육정책을 빗대어 말한 유명한 얘기이다. 문용린 교수는 이 얘기를 예로 들면서 우리 부모들의 교육방식을 잘 보여주는 거라며 철학있는 부모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내 아이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예요. 얼굴도 다르고 가정환경도, 재능도 다 다르지요. 남하고 똑같이 살 순 없다는 겁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엄마는 적어도 내 아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이 세상을 행복하게, 의미 있게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이와 더불어 고민해야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어디가 좋고 뭐가 좋다더라, 하는 식으로 자녀교육의 레이더를 주변에만 맞추지 말라는 얘기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다니던 성당에서 ‘돈보스코’란 세례명을 얻었다는 문용린 교수는 중학생이 되어 돈보스코가 페스탈로치와 같은 위대한 교육자라는 사실을 알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학부모들의 강연 요청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그에게서 평생을 교육의 발전과 함께 해온 석학의 깊이가 절로 배어난다.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를 떴지만 “부모가 가져야 할 철학은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데서 출발합니다”라는 학자의 외침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지나친 사교육비에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왜곡된 교육환경에 대해 소리 높여 외치지만, 정작 그 시선이 외부로만 향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사진.김명순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 뉴스

설명글
인기기사는 최근 7일간 조회수, 댓글수, 호응이 높은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