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

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

정신질환은 마음의 병 아닌 뇌의 문제

뇌2003년8월호
2013년 01월 15일 (화)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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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는 ‘입’보다 ‘귀’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고 한다. 환자가 마음 속 깊이 묻어둔 고민이나 생각을 털어놓을 때,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 신경정신과 전문의 권준수 교수는 열린 귀로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질 뿐 아니라, 뇌영상학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이 마음의 병이 아닌 뇌의 문제임을 밝혀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국내 신경정신과 의사 중 뇌영상학을 통한 연구 분야에 있어 단연 선두 주자이다. 올해 서울대에서 40~50대 이하 교수 가운데 외국 우수 저널에 꾸준히 논문을 게재한 학자들에게 주어지는 ‘젊은연구자상’을 받았는가 하면, 세계적으로도 성과를 인정받아 올 5월에는 미국에서 발간되는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 후 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03-2004년 판)’에 등재되기도 했다.








뇌 : 힘겨운 상황을 고백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왜 우리 뇌는 서로 동조하는 현상이 있잖습니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시나요?
권 : 스트레스라기보다는 자책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환자가 자살하는 경우죠. 최근 한 환자도 퇴원했다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감과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했습니다. 내가 좀더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동안 하게 됩니다.
뇌 : 누구나 자살 충동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런 심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권 : 상황이 힘들면 누구나 좌절감을 느끼면서 우울한 상태가 되죠. 자신이 처한 현실은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이고, 그러다 보면 주변 사람과 환경에 대한 분노심이 일게 마련입니다. 이때 분노심이 외부로 폭발하면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나고, 내부로 향하면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누구나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

뇌 : 만약 위하수라거나 간염에 걸렸다면 당장 병원을 찾을 텐데 정신질환인 경우에는 병원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 현실인 것 같습니다.
권 : ‘병은 소문을 내야 낫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정신과 환자들입니다. 아직까지 환자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병이 있다는 것을 숨기려 하죠. 정신분열증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1만 명 씩 발병합니다. 정신병적 우울증은 3~6%이고, 신경병적 우울증 등 의학적 기분장애만 해도 남자 10%, 여자 20%나 됩니다. 강박증, 히스테리 같은 각종 신경증과 편집증을 합하면 누구나 평생 한 번은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있을 정도입니다. 정신과는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을 가두어 두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찾아가 위로 받고, 뇌에 병이 든 사람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죠.

뇌 : 정신병에 대한 의식이 바뀌는 것이 시급하군요. 그런데 뇌의 병이라 함은?
권 : 최근 뇌영상학의 발달로 정신질환이 마음의 병이 아닌 뇌의 신경전달물질 이상으로 생기는 뇌의 병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결국 정신과 물질은 같은 것의 다른 현상인, 동전의 앞뒷면과 같거든요. 마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알고 보면 뇌의 물질변화에 기인한 것이란 거죠. 인지 기능과 추상적 사고를 하는 부분인 전두엽과 언어, 기억력 등에 영향을 미치는 측두엽 부위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병입니다.

뇌 : 정신질환과 관련한 뇌영상학 연구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권 : 1996년부터 2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정신분열증을 연수했어요. 그 당시 신경정신과에서도 뇌영상학을 통한 연구가 시작되었거든요. 그 때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뒤로 국내에 들어와서 핵의학, 재활, 인지, 심리, 방사선, 심지어 한방까지 연계해 공동 연구를 하는 뇌기능학회를 만들어 연구를 지속하고 있죠. 신경과학, 심리학, 정신과학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신과 쪽에서 그런 시도를 한 게 처음인 셈이죠.

뇌 : 월간 ‘뇌’와 함께 ‘정신병은 뇌의 병’을 알리는 캠페인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권 : 하하. 좋죠.


정신분열증과 관련한 세계 최초의 연구 이뤄

뇌 : 정신질환 가운데서도 정신분열증과 강박증이 전문이시죠?
권 : 정신질환은 크게 신경증과 정신분열증으로 나뉩니다. 신경증은 남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데도 스스로 괴로워하기 때문에 ‘신발 속의 돌(Stone in the Shoe)’로 불립니다. 자기 자신만 괴롭다는 의미이죠. 그에 반해 정신분열증은 인격장애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점에서 ‘마늘 애호가(Lover of Garlic)’로 불립니다. 자신은 마늘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곤혹스러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말수가 갑자기 줄거나, 방에만 처박혀 있다든지, 또는 밤에 잠을 안 자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등 평소와 행동이 바뀌면 일단 의심해 볼 수 있어요. 환청, 망상 등 양성 증상과 남을 만나기 싫어하고 말이 없어지며 감정이 메마르는 음성 증세가 있습니다. 양성 증세 환자는 ‘정보기관이 나를 감시한다’, ‘우주인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등 횡설수설하기도 하는데 일반인의 생각과 달리 음성 증세보다는 치료가 쉽죠.

뇌 : 정신분열을 보이는 환자의 뇌와 일반 뇌에 어떤 물리적 차이가 있나요?
권 : fMRI(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에서 뇌의 구조 이상이 관찰되고,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도 정상인보다 많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 뇌에서 생각, 감정, 지각, 행동 등을 조절해 주는 신경전달 물질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거죠.

뇌 : 정신분열증의 원인과 관련하여 세계 최초로 밝힌 연구가 있으시죠?
권 : 99년 말, 정신분열증 환자와 일반인의 뇌파를 측정해서 뇌 신경회로의 고장으로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분열증이 온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했죠. 그 무렵, 뇌의 편평측두엽에 문제가 있으면 정신분열증 환자에게서 언어 이상이 생긴다는 것도 밝혀냈고요.

(두 연구 결과는 모두 세계 최고 권위의 정신과 학술지 <일반정신의학지>에 게재됐다. 미국 UCLA의 마이클 그린 교수는 권 교수의 논문에 대해 “그의 연구는 인지신경과학이 정신병리학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뇌 : 앞의 연구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듣고 싶습니다.
권 : 정신분열증 환자 15명과 일반인 15명에게 20, 30, 40Hz의 소리를 들려준 뒤, 뇌파분석기로 뇌파를 측정했습니다. 연구 결과, 다른 주파수에선 환자와 일반인의 뇌파가 같았지만, 40Hz에서는 일반인은 정상적 뇌파를 보인데 비해 환자는 뇌파의 진폭이 작게 나타났습니다. 40Hz는 여러 가지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데 관여하는 주파수라고 전제, 이 결과 신경회로의 고장으로 감각 정보를 통합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분열증이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죠.

뇌 : 일반적으로 정신과 치료에 쓰이는 약물은 부작용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상황은 어떻습니까?
권 : 옛날에는 약을 먹으면 몸이 뻣뻣해지고 침이 흐른다든가 눈이 풀리는 등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처방되는 올라자핀, 리스페리돈, 세로킬 등의 치료제는 부작용이 거의 없습니다. 또 이 치료제는 뇌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빠르게 교정시켜 주기 때문에 환청이나 망상과 같은 급성 증상에 빠른 효과를 보입니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받으면 뇌의 손상을 그만큼 막을 수도 있고요.

뇌 : 국내 처음으로 강박증 클리닉을 개설하셨다죠?
권 : 강박증은 신경증인 불안장애의 일종인데, 생각하려 하지 않는데도 어떤 생각이 떠올라 불안하고 이 불안을 없애기 위해 특정행동을 되풀이합니다. 수시로 손을 씻거나 샤워하는 것, 문을 잠그고도 안심이 안 돼 수시로 점검하는 것, 정리정돈 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 등이 대표적 증세죠. 인터넷 중독, 알코올 중독, 쇼핑 중독, 건강 염려증 등도 강박증의 일종입니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 증세를 공유하면 강박적 사회, 개인에게 증세가 심할 경우 강박증 환자로 규명할 수 있어요.

뇌 : 강박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권 : 원래부터 재미있는 증상이라고 생각해 왔고요, 하하, 저에게도 조금은 강박적 증상이 있어 흥미를 가지고 있었죠. 1980년대까지도 강박증은 초자아(양심에 반응하는 의식)가 자아(쾌락 원칙에 지배되는 본능 에너지)를 지나치게 통제하기 때문에 생기는 질환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서서 강박증 또한 뇌 신경전달 시스템의 이상 때문에 생기는 뇌질환임이 밝혀진 것이죠. 양전자단층촬영(PET) 결과 뇌에서 눈알 바로 위에 있는 눈구멍 이마엽(안와전두엽)이 과잉 활성화되는 병으로 밝혀졌어요.

뇌 : 강박증도 약물 치료를 하나요?
권 : 참 치료하기 힘든 증상이었는데 1989년경 약이 개발되었어요. 약을 먹으면 환자의 70~80%가 증세가 완화되거나 완치되죠. 이와 함께 환자가 스스로 강박적 생각이 나도 손을 안 씻거나 문 잠금장치를 확인하지 않는 등 행동을 참는 ‘인지 행동적 접근’을 함께 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강박증 환자를 한 그룹은 약물치료, 또 한 그룹은 인지행동치료를 했는데 두 그룹 다 똑같이 좋아졌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죠. 강박증은 심리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을 연결해서 연구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분야입니다.

뇌 : 임상과 강의 외에 여러 관련학회 활동과 논문 발표, 저술 활동 등을 활발히 하고 계시고, 새로운 시도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권 : 일을 많이 벌려 놓았죠. 국내에는 신경정신과 쪽으로는 뇌영상학을 활용한 연구가 초기 단계여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신경과학, 심리학, 정신과학 같은 인접학문과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판을 다양하게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연구들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논문 발표를 꾸준히 해야 하고요. 또 어느 분야나 ‘홍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정신병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홍보, 병원 홍보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같은 증세를 가진 환자들의 자조모임 결성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권준수 교수. 그가 신경정신과 분야에서 지금껏 이루어 낸 혁혁한 성과의 핵심은 바로 ‘휴먼 스터디’다. 프로이드식의 심리분석과 동물행동실험 단계를 넘어서서 직접 환자의 뇌를 연구한 것.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를 일이나, 정신작용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지난한 길을 그가 앞장서 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의 연구와 활동이 주목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글│곽문주 joojoo@powerbrain.co.kr  사진│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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