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셀럽 인터뷰>에서는 오천 원 권과 오만 원 권의 영정을 그린 국내 유일의 생존 화폐 영정작가 일랑 이종상 화백과의 만남,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화업(畵業) 인생은 일랑(一浪-첫 번째 파도, 큰 물결)이라는 아호만큼 독보적이다.
세계 최초 독도DOKDO 화가
독도를 화폭에 담아낸 세계 최초 작가로도 유명한 일랑은 한 때 전국 각지를 돌며 한반도의 진경(眞景)을 담아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독도도 그의 진경 작업 중 하나였다. 1977년 독도수비대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미지의 섬에 일랑은 해양경찰청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독도와 가까워질수록 세 개의 실루엣이 단색조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신비로움을 담아낸 ‘독도의 기Ⅱ’는 수많은 일랑의 독도 작품 중 대표작이 되었다.
▲ 독도(獨島)-기(氣)II, 1982, 일랑 이종상作
그는 우리 문화의 자생성과 독립성을 이야기하며 문화예술 활동이 시대를 넘어 어떠한 가치와 힘을 발휘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래서 일랑이 가는 세계 무대의 전시작품에서 독도 그림은 한국Korea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항상 빠지지 않는다.
▲ 일본에서 열린 스카프 전에서 독도 그림이 디자인 된 스카프가 완판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정작업의 대가, 그에 얽힌 에피소드
일랑은 율곡 이이, 신사임당 영정 뿐 아니라 광개토대왕, 우륵, 원효, 김홍도, 장보고 등을 제작한 국내 최고 표준영정의 대가이다. 그는 영정(影幀)은 한 사람의 인품과 업적, 혼을 액자 속에 모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영정을 그리기 위해서 작가는 그리는 대상의 혼과 접신하여 일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랑은 원효대사 영정을 그리기 위해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시절, 철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야기 뿐 아니라, 우륵 영정을 그리기 위해 몇 달 며칠 동안 가야금 산조를 집안에 틀어놓고 살다보니 서양음악을 공부하던 첫째 딸이 전공을 가야금으로 바꾸게 된 이야기도 전한다. 장보고 영정을 작업할 때에는 깊은 물속에 잠긴 듯 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고, 윤선도 영정작업을 할 때에는 국내 최초로 선친의 유골을 바탕으로 정확한 고증을 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 미술계의 거장, 일랑 이종상화백의 두 번째 인터뷰는 유튜브 <브레인셀럽> 에서 10월 14일 오전 11시에 방송된다.
글. 안지영 브레인셀럽PD/ brainceleb202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