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내적역량이 21세기 핵심역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지속돼온 산업화시대에 ‘인성’은 국가에서 추진하는 인적 자원 계발의 첫 번째 목표는 되지 못했다. ‘지덕체智德體’로 대표되는 지력 사회에서 인성은 대안교육의 상징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세기 인류 과학이 밝혀낸 마음 기제의 총사령탑인 뇌의 기전을 바탕으로 한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 집중과 몰입, 정서와 창의성 상호관계 등은 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된 정보화사회로의 진입과 인공지능(AI) 시대의 출현은 과거 착하고 도덕적인 것을 의미했던 인성을 인간 고유 역량 계발 차원에서 바라보게 한다.
BTS를 탄생시킨 방시혁 대표가 가장 중시한 선발 요인은 인성
“한류는 BTS 전과 후로 나누어질 것이다.” 지구촌에 감성 충격과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BTS를 탄생시킨 방시혁 대표. 그는 초기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뽑을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이 ‘재능’이 아닌 ‘인성’이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BTS의 성공 요인을 분석한 《BTS Insight, 잘함과 진심》에서 인재의 세 가지 요소로 꼽은 신체physical, 기량competency, 인성personality 중에서 방시혁 대표는 인성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도덕성만이 아니라 열정, 끈기, 성실성, 협동심 같은 면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선발하지 않는 원칙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 인성적 요소 | 출처=《BTS Insight, 잘함과 진심》
신체적 매력은 호감을 갖게 하고 기량적 요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지속성 차원으로 확대하면 인성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내재적 요소가 결국 잠재성 계발로 이어지고, 밖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BTS와 아미들이 함께 보여주고 있는 선한 영향력의 파급은 인성을 중시한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뇌과학이 불러온 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
21세기 들어 인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 마음 기제의 총사령탑이라는 뇌가 자리한다. 20세기 지식과 기술이 대표적인 인간의 역량이었다면, 21세기는 ‘태도’가 주목받는다. 태도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외부로 나타나는 것으로, 내재된 인간의 역량을 의미하는 요소이다. 인간은 과연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오늘날 현대 교육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지덕체’의 맨 앞에 놓인 ‘지智’. 서구 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산업혁명 이후 공교육 시스템이 체계화된 지 2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의 건물에서 동일한 교과를 일정 시간 체계적으로 배우는 지식 기반 사회 속에서 교육은 국가 발전의 핵심 원동력이었고, 그 중심에 ‘지력地力’이 자리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로 대표되는 그리스 철학은 20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위력이 여전하며, 서양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된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역시 현대인들의 사상과 교육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진화론의 등장으로 신과 인간을 바라보는 인식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생물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등 인류 과학의 발달은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기초한 신체, 감정, 인지 사고 체계에 대한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건강의 핵심 키워드가 심장에서 뇌로 옮겨오고, 인간 의식의 기전을 밝히려는 뇌과학이 인류 과학의 정점으로 주목받는 때이다. ‘마음과 몸은 기능적으로 독립돼 있다’라는 예전의 명제는 인류 과학의 발달로 옛 문장이 돼버렸다. 인간의 역량 변화에 있어 상징처럼 변해 버린 지력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내적 요소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20세기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성장 기제가 다른 동물과 확연히 다름을 보여주었다.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닐 만큼 성장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 단계별로 점차 성장한다. 열심히 스스로 기어야 비로소 설 수 있고, 서야 걸을 수 있으며, 걸어야 뛰어다닐 수 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거나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걸음마는 두뇌 운동 영역을 발달시키고, 소리를 내어 책을 읽으며 말을 배우는 동안에는 언어 영역이 계발된다.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작거리는 동작들은 뇌 속의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손의 다양한 감각을 발달시킨다. 뇌 바깥으로부터의 자극이 해당 두뇌 영역과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신경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신체, 정서, 인지 발달의 단계이다, 아기의 뇌가 자신의 몸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신체적 발달이 먼저이고, 다음이 자신의 몸 바깥의 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정서적 발달 단계이다. 이 시기에는 생명체와의 다양한 교류 폭과 깊이가 정서 기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지막이 뇌의 가장 바깥쪽에 해당하는 인지 학습의 발달이다.
성인의 뇌가 되면 뇌의 통합적 균형 상태가 인지적 사고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 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직무 스트레스, 집중 지속도, 업무 몰입도 등도 결국 개인의 뇌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의 문제이다. 즉, 좋은 뇌 상태의 형성이 핵심이라는 얘기이다.
오늘날 과학의 발달이 ‘인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대한 모든 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할지라도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은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
인간의 두뇌 능력은 하나의 지수로 평가되지 않는다
20세기의 과학은 산업혁명 이후 200년간 지속돼온 지덕체智德體 교육을 체덕지體德智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20세기 지식 사회의 상징은 IQ였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IQ 검사를 하고 친구들과 서로의 IQ를 놓고 많은 얘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또래 사이의 비밀 보장 규칙은 지켜지지 않아 IQ가 높게 나온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반대로 낮은 친구들은 창피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이전처럼 전국 단위의 IQ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변화의 핵심은 간단하다. 지난 1세기 동안 인간의 두뇌 능력을 설명하는 단일 개념으로 적용해온 IQ 하나로는 인간의 무한하고도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IQ 측정 100년의 역사를 저물게 한 대표적인 주인공은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이다. 다중지능 이론을 편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의 능력을 언어 지능, 논리-수학 지능, 시각-공간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성찰 지능, 자연 탐구 지능의 여덟 가지로 분류했다. 이후 아홉 번째 지능으로 인간 의식의 방향성을 상징하는 실존 지능을 추가했다.
이 밖에 경영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부각된 EQ(감성 지능;Emotional quotient), 직관, 혁신, 상상, 영감의 네 가지 영역에서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제시한 CQ(창조 지능;Creative Quotient) 등 인간의 두뇌 능력을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IQ 세대를 거친 부모들은 여전히 공부를 잘하면 ‘머리’가 좋다고 말하고 체육,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돋보이면 ‘재능’이 있다고 표현한다. 뇌를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 고착되면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 첫 세대와의 소통에 장애가 생길 것이다.
‘인성영재’를 표방한 고교의 미래 교육 실험
하버드대학을 뛰어넘는 경쟁률, 캠퍼스 없는 미래형 대학으로 주목받는 미네르바스쿨. 하버드, MIT, 스탠포드 등 유수의 대학에서 이뤄지는 강의, 토론, 평가까지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누릴 수 있는 무크MOOC 등 지구촌 교육 패러다임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에도 이 흐름의 제일 앞줄에 선 학교가 있다. 학교 건물, 교과목 수업과 교사, 시험, 성적표가 없는 5무無 학교로 잘 알려진 벤자민인성영재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이 학교의 혁신적인 교육 모델은 2014년 설립 첫해 27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수백 명 규모의 전국 단위 학교로 운영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일본에도 학교를 설립했다.
1년간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하는 ‘벤자민프로젝트’가 이 학교의 핵심 교육과정이다. 주체성과 자기 주도적 역량을 키우는 벤자민프로젝트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멘토를 선정하는 것부터 기획과 실행을 학생 스스로 주도한다. 한 달에 한 번씩, 1박 2일 워크숍 외에는 사이버대학 수준의 LMS(학사 관리 시스템)를 통해 7개 과목, 100시간 온라인 교육과 화상 토론을 매주 진행한다.
학생들이 물구나무서서 걷기를 할 수 있도록 ‘벤자민 12단’이라는 신체 단련 프로그램을 필수화 한 점도 특별하다. 벤자민학교 학생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은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유된다. 누적 조회 수가 30만 뷰에 달하는 인기 채널이다.
인재의 핵심 요소는 자기 주도성
‘인공지능과 공존 혹은 경쟁할 인류 첫 세대’를 예고한 시대적 변화는 결국 마음 기제의 총사령탑인 뇌에 주목하게 하고, 나아가 인간 고유 역량 계발에 대한 질문과 답을 요구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미래 교육 혁신 모델인 ‘OECD Learning Framework 2030’에서도 불확실한 미래 사회에서 20세기 교육의 틀은 더 이상 학생들이 미래에 직면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학습자의 능동적 참여와 자기 주도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세계적인 석학과 CEO들의 위기감도 적잖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계와는 다른,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발 하라리 교수는 “문제는 아무도 정서 지능이나 정신적 회복 탄력성, 학습 능력과 같은 역량을 대규모로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인공지능과 공존할 인류 첫 세대’라는 지구촌 미래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역량을 이끌어내야 하는가. 지금 인류 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 혹은 방법’으로서 ‘교육Education’이라는 기제에 대해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유전자 편집기술 크리스퍼CRISPR를 통해 세계 최초로 에이즈 면역력을 가진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하며 생명윤리 논쟁을 불러일으켰듯, 인공지능 시대의 출현이 인간 고유 역량에 대한 시대적 관심을 집중시킬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 대비되는 자연 지능이란 무엇일까. 국제사회에서 아직 공통적으로 정리한 바는 없지만, 유엔공보국(UN-DPI) 비영리 국제단체인 국제뇌교육협회가 유엔글로벌콤팩트에 제출한 《지속 가능성 보고서》 슬로건으로 ‘인간의 내적 역량 계발을 통한 휴머니티 회복’을 제시하면서 자연 지능을 이렇게 표현했다.
“원하는 변화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인간의 다양한 능력 중에서 성공적 수행과 성과에 이르게 하는 내재적 특성으로 그러한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 태도, 가치관, 자아의식 등 개인의 행동적, 심리적 요인을 망라한다. ‘나는 누구인가’로 대표되는 내면 탐색을 비롯해 정신적 회복탄력성, 인내와 용기, 자기 주도성과 사명감, 영감과 통찰 등이 인간 내적 역량에 포함된다.”
[Box]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발간 《인성교육연구》, 국내 첫 인성 전문 학술지 등재
한국은 인성교육에 있어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나라이다. TIMMS, PISA 등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가 하면,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 또한 가장 높다.
대한민국은 2014년 12월,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명문화한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킨 나라가 됐다. 지난해에는 인성교육 전문 학술지가 한국연구재단 등재 후보지로 선정됐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부설 인성교육연구원에서 2016년부터 발간해온 학술지 《인성교육연구》가 그것이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은 세계 최초로 뇌교육을 학문화하고 세계화하는 글로벌 비전을 갖고 설립한 전문 대학원이다.
인성교육진흥법 제정 후에 발간한 《인성교육연구》는 우리나라 유일의 인성교육 전문 학술지로서 인성교육 철학, 인성교육 정책 등 관련 이론뿐만 아니라 초·중·고교, 대학, 군대, 기업체, 관공서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추진하고 있는 인성교육 방법과 사례를 연구해 인성교육 현장 개선 방안을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특히 기존의 도덕교육이나 윤리교육에서 지향하는 덕목 중심의 인성교육보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인성 역량을 기르고, 뇌과학 기반의 체험형 인성교육을 지향한다. 연 2회 발간.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부설 인성교육연구원 홈페이지
글_ 장래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융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