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과 임진각 철조망에서 설치작업을 선보이던 중견작가 이은숙이 이번에는 미술관에 가족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견작가 이은숙은 십여 년간 가족과 남북관계에 천착해왔다. 하나는 작고 다른 한가지는 크다. 가족은 거리로 보자면 나에게 가장 가까운 것이고 국가는 삶의 단위로 보자면 추상적이라 할만큼 먼 관계이다. 그러나 이은숙 작가에게 이 둘은 거의 같은 거리에 있고 크기가 같다.
그녀의 가족은 이산가족이다. 한국전쟁시 월남한 아버지는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이었고 생전에 북에 남겨둔 자녀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작가에게 남과 북이라는 분단국가의 관계는 곧 아픔이 있는 가족사로 이어지는 거시적인 동시에 미시적이고, 역사인 동시에 현재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그는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 앞에 한국 이산가족 5천명의 이름이 적힌 분단의 벽을 세우기도 하고, 베를린의 남북대사관을 실로 잇는 퍼포먼스 등을 통해 분단상태에 있는 국가 그리고 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극복하고자 했다.
▲ 이은숙, 실풀이, 형광실, 블랙라이트, 실패 (각 7x7x12cm) 1000개, 2016
이번 전시에서 그는 다시 가족이라는 주제를 풀어낸다. 가장 작은 단위의 인간관계안에 너무도 다양한 이야기와 희로애락의 감정이 담겨있는 것을 그는 형광실을 풀어내 만든 투명상자에 담았다.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있을 듯 한 올로 풀려있거나 또는 복잡하게 층층이 얽혀 있는 실은 맺거나 풀어야 할 관계의 여러 양태, 그리고 블랙라이트에 반응하는 그 형광빛은 바쁜 일상의 삶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관계맺기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 이은숙, 소통의 의자, 폴리에스터, 형광실, 실크스크린, 블랙라이트, 525x525x340cm, 2014 (부분)
이 전시를 위해 그는 지역 청소년들과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는 누가 무엇이 그들을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작가 이은숙에게 작품은 관계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사이에 두고 만나게 되는 사람 사이의 작은 이야기, 한 올 실같이 사소하고 가는 빛처럼 약해 보이는 그 대화의 시작점에서 관계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집을 짓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펼쳐놓은 곳이 미술관 공간이고 이 안에서 작가는 대화의 실을 잣고 이야기와 관계의 방을 만들어나간다.
▲ 이은숙 개인전 포스터.
‘미술관 경험(Museum Experience)’을 주제화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으로 블루메미술관은 작년 한해 많은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며 미술관의 존재의미를 탐색해왔다. 일상 삶의 여러 경험과 구분되는 또는 연결되는 ‘미술관 경험’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가며 올해 블루메미술관은 ‘관계성’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다. 미술관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새로이 형성되는, 환기되는, 또는 기억되는 여러 형태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전시한다.
■ 전시 개요
제목 : '실과 빛 – 관계의 시작'
전시일정ㅣ 2016년 3월 12일(토) - 6월 19일(일) (월요일 휴관)
참여작가ㅣ 이은숙
작 품ㅣ 신작 설치 5여점.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사진. 블루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