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촬영한 가장 오래된 고종황제 초상 사진이 발견됐다.
한국 근대 서화가이자 사진가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1905년 경운궁(덕수궁)에서 촬영한 황제복식 차림의 고종황제 초상 사진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재단)은 지난 4월 미국 뉴어크박물관(Newark Museum)이 소장한 한국문화재 조사에서 뉴어크박물관이 소장한 고종황제 초상 사진이 1905년 덕수궁에서 김규진이 촬영하여 미국 외교사절에 제공한 사진임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사진가가 촬영한 황실 사진 중 가장 시기가 이른 것으로, 촬영 장소와 시기, 그리고 사진가 이름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어 큰 의미를 갖는다. 사진뿐 아니라 사진이 부착된 앨범과 이 앨범을 보관하는 목제 보관상자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입수 경위도 명확하고 복제본이 아닌 오리지널 프린트로서 매우 가치가 높아 우리나라 근대사 연구와 사진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사진 대지 한 켠에는 붓글씨로 ‘대한황제진광무구년재경운궁(大韓皇帝眞光武九年在慶運宮)’이라는 제목이 있어 광무9년(1905)년 경운궁(덕수궁)에서 촬영한 대한제국 황제의 초상임이 명시되어 있다. 사진 대지 아래에는 ‘김규진조상(金圭鎭照相)’이라는 글씨가 장식문양과 함께 인쇄하여 김규진이 촬영한 사진임을 밝히고 있다.
국외문화재재단은 또 이 사진이 덕수궁 중명전(重明殿) 1층 복도에서 촬영되었다고 밝혔다. 사진 아랫부분을 보면 서양식 타일이 있는 바닥에 카펫을 깐 것을 알 수 있는데 타일 문양을 비교해 보았을 때 현재의 덕수궁 중명전 1층 복도의 타일과 일치한다.
김규진은 그동안의 연구에서 대한제국 황실의 사진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전하지 않았다. 이번 발견으로 김규진이 황실 사진가로 활동하였음이 증명되었고, 1907년에 천연당(天然堂) 사진관을 열기 이전부터 사진가로서 활동하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 뉴어크박물관 소장 '고종황제 초상사진'
이 사진은 미국의 철도 및 선박 재벌 에드워드 해리먼(Edward Henry Harriman, 1884-1909)의 소장품이었는데, 부인이 1934년 뉴어크박물관에 기증했다. 해리먼은 1905년 당시 대통령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의 지시로 증기선 만주호(SS Manchuria)를 타고 아시아 각국을 순방한 미국의 대규모 외교사절의 일원으로서, 1905년 9월 대한제국을 방문해 황실을 예방하였다. 고종 초상사진을 비롯해 그가 갖고 있던 한국문화재들은 당시 황실에서 선물로 받은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초상사진이 미국의 프리어-새클러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고종이 순방단의 또 다른 일원이었던 루즈벨트의 딸 앨리스 루즈벨트(Alice Roosevelt Longworth, 1884-1980)에게 선물하였던 것이다. 당시 고종은 일본의 한국 병탄 의도가 날로 드러나는 가운데, 미국의 도움을 얻고자 순방단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러나 미국 사절단은 한국 방문에 앞선 일본 방문에서 일본과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국 지배를 상호 인정하기로 한 상태였다. 해리먼이 뉴어크박물관에 기증한 한국문화재는 이외에도 갑주(甲冑) 일괄품과 조선 말기 화원화가였던 석연(石然) 양기훈(楊基薰, 1843-1919 이후)의 노안도(蘆雁圖)도 두 폭이 있다. 갑주일괄품은 한말 한국에 왔던 외국인이 많이 수집하던 고급 갑주로서, 잃어버리기 쉬운 투구의 첨대와 술장식까지 거의 모든 구성품이 완전하게 남아있고, 전용 칠기 보관함과 함에 담는 의향(衣香)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두 유물 역시 해리먼이 대한제국 방문했을 당시 고종의 초상사진과 함께 황실에서 선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뉴어크박물관에서 조사한 한국문화재 자료를 모두 정리하여 도록 형태의 보고서로 간행할 예정이다.
글. 정유철 기자 npns@naver.com 사진. 국외문화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