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경(사진=윤한주 기자)
지난 9일 울산역에서 국보를 찾으러 길을 떠났다. 반구대암각화(285호)와 천전리각석(147호)이다. 고대 한국의 수천 년 역사를 바위그림으로 만날 수 있다니, 타임머신이라도 탄 기분이었다. 공룡의 발자국도 있다니 1억 년 전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전북 고창에서 고인돌 유적으로 단군조선을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너른 들판에 고인돌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고창의 풍경과 달리, 반구대암각화는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급하게 차를 몰고 다녀올 수도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루에 3번씩 울산역에서 버스가 왕래하고, 자연을 벗 삼아 고향을 다녀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방문한다면 실망할지 모르겠다. 암각화는 실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70m 떨어진 거리에서 망원경으로 확인할 뿐. “안 보인다. 너는 보이냐?”라는 시민들의 투덜거림을 들을 수 있다. 문화해설사는 오후 3시가 지나야 그늘이 사라지니 암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보다 반구대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웠다. 반구대는 울산 12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산세와 계곡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으로 마치 거북 한마리가 넙죽 엎드린 형상으로 하고 있어 반구대라고 한다.
햇빛을 받아서 은빛물결을 이루는 하천과 맑은 산소를 내뿜는 푸른 나무들이 소중했다. 어떠한 국보나 보물로도 환원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닐까? 바위그림이 새겨져 있지 않았지, 깎아지른 절벽은 자연이 손수 빚은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물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관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울산 반구대 암각화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대곡천(사진=윤한주 기자)
감상도 잠시, 이러다 버스 시간을 놓칠라? 암각화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외양이 독특하다. 관계자의 말로는 향유고래를 바탕으로 건물을 디자인 했다고 한다. 최대 몸길이 20m, 몸무게가 수십 톤에 이르는 고래이자 심해의 대왕오징어를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고래가 우리나라 근해에 살았다는 것도 놀랍지만, 작살로 사냥했을 고대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국립수산과학원이 파악하는 한반도 연해의 고래류는 대형 고래류 9종, 소형 고래류 26종, 총 35종에 이른다. 때문에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한반도는 고래의 낙원이었다”라며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영일만 일대는 예부터 고래바다, 경해(鯨海)로 불렸다”라고 말했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처럼 동해바다로 고래사냥을 떠나고 싶은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DNA가 아닐까?
박물관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고래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암각화에 새겨진 296 그림 중에서 고래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암각화는 동물이 65.2%이고 인물이 4.7%, 배, 그림 등 도구상이 3.7%를 차지한다. 밝혀지지 않은 그림은 26.3%이다. 193점 동물은 다시 바다짐승과 뭍짐승으로 나뉘는데, 고래는 58점에 이른다.
특히 고래잡이 암각화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창이 고인돌왕국이라면 울산은 고래잡이왕국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포경산업으로는 우리나라가 앞섰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이건청 한양대 명예교수는 “유럽의 근대 포경산업이 크게 번성했던 것은 200년 남짓”이라며 “6000년 전 이 땅의 석기인들이 고래잡이를 만들어 타고 고래잡이에 나섰다는 사실을 암각화가 실증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주목한 것은 암각화의 도형 중에서 고래잡이배가 부구를 사용했다는 데 있다.
▲ 울산 암각화박물관이다. 향유고래를 바탕으로 건물을 디자인했다고 한다(사진=윤한주 기자)
부구는 어떤 물건을 바다 위로 띄워 올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고래잡이배와 고래가 부딪히는 충격을 완화하고 고래를 물 위에 띄우기 위해 커다란 가죽 주머니에 공기를 채워 부구를 만들어 썼음을 보여주는 도형이 암각화에 새겨져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조선술은 물론이고 고래잡이 창과 부구를 만들어 썼다. 이는 상당한 수준의 문명집단이 울산 일원에 살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그러고 보면 반구대암각화는 단순히 볼 수 없을 것 같다. 학자들은 제작연대에 대해 신석기시대냐? 청동기시대냐?라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국가로 보면 단군조선이나 그 이전의 시기일 터. 고대 한민족의 삶이 아로새겨진 암각화에는 샤먼이 등장하고 제단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계속)
글. 사진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 찾아가는 방법
서울에서 울산까지는 KTX로 다녀올 수가 있다. 역에서 암각화박물관까지 348번 버스를 타면 하루에 3번(10시, 13시, 16시/대곡박물관에서 11시, 14시, 17시) 이용할 수가 있다. 암각화박물관에서 반구대까지는 걸어서 다녀올 수가 있다. 암각화박물관 052-229-4797
■ 참고문헌
전호태, 울산반구대암각연구, 한림출판사 2013년
이건청, 6천년 전의 바위그림들이 “어서오시게, 반갑네”외치는 듯, 경상일보 2015년 4월 30일
주강현, 고래가 떼지어 모여있는 암각화는 세계사적으로도 이례적, 경상일보 2015년 8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