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과 초록색 피망, 뽀얗게 잘 익은 감자…. 갖가지 재료를 통통 써는 손놀림이 바쁘다. 더운 날씨에도, 가스레인지의 뜨거운 불에도 표정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침내 완성된 요리에 현곤 군의 표정이 환해진다. 꿈을 요리하는 19세 주방장,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1기 김현곤 군을 지난 8월 7일 대구에서 만났다.
▲ 벤자민학교 1기 김현곤 군이 직접 만든 한식 요리 (김현곤 제공)
교육부에서 19일 국내 초·중·고 학생들의 인성 수준을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학생들의 성실성과 자기조절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현곤 군도 1년 전에는 공부를 왜 하는지 몰라서 선생님이 시키는대로만 했고, 무기력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예전에는 원하는 것도 없었고, 공부도 시작할 때만 열심히 하다가 끝에 흐지부지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벤자민학교 다니면서 좋아하는 요리도 실컷 하고, 원하는 것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하다 보니, 끝까지 해보려는 끈기와 자신감이 생겼어요. 또 시키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차츰 발전하는 게 느껴져요."
'요리'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18살 즈음이었다. 어머니께서 어떠냐고 물어보시는데 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우연히 에드워드 권의 <7개의 별을 요리하다>라는 책을 읽고 빠져들었다. "책에 재수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찾은 재능에 몰입했고, 두바이에 있는 7성급 호텔 버즈알아랍의 수석 총주방장이 된 과정이 실려있었어요. 그분의 성격, 생각과 노력을 닮고 싶었죠. 특히 '노력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절이 확 와 닿았었어요."
하지만 학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밤 11시, 수업과 시험에 쫓기다 보면 요리는 물론 주방에도 서기조차 힘든 일과였다. 그러던 중 스스로 일정을 짜고, 사회경험을 하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벤자민학교 설립 소식을 들었다. 다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지원했고 1기 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이미 '요리'라는 꿈을 품은 현곤 군의 방향은 분명했다. 꿈의 방향을 잡고, 가까이 가면서 눈빛이 살아났다. "그동안 공부에 쫓기느라 하지 못했던 요리 관련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어요. 주요 과정인 프로젝트는 한식과 양식 조리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정했고, 직업체험도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로 했었거든요."
▲ 김현곤 군은 현재 요리학원에서 한식을 배우고 있다.
주방에 선 그의 눈빛은 더욱 진지하다. "다른것 보다 제가 만든 요리의 결과물을 볼 때 즐거워요. 특히 좋아하는 요리는 '포테이토또띠아피자'인데요. 일단 간단하면서도 동생들이 자꾸 해달라고 할 만큼 맛있어요. 그리고 감자가 나트륨을 분해하는 성질이 있어서 건강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 "처음에는 요리가 덜 달다거나 짜거나 해서 맛보고 버리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어머니 요리를 먹었을 때와는 달리, 뭔가 몇 % 부족한 맛이었거든요." 현곤 군은 꾸준히 했고 차츰 맛있는 요리가 늘어나면서 나눠주어 함께 먹거나 스스로 먹는 기쁨이 커졌다. 비빔밥, 잡채 등 식탁에 자주 올라가는 요리부터 화양적, 어선과 같은 궁중음식도 만들어 보았다.
7월 중 한식 자격증에 처음 도전했는데, 결과는 아쉽게도 불합격이었다. "실기 시험을 칠 때 손도 떨리고 긴장되더라고요. 그래도 제시간에 냈는데, 결과는 조금 안타까웠어요. 그래도 학원에서 배우는 요리 수업 필기도 꼼꼼하게 하고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도전할 거예요."
사회 및 직업 탐방을 위한 아르바이트로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 정직원으로도 약 3개월간 일했다. 채소를 다듬어 샐러드도 만들고, 직접 스테이크를 굽거나 치킨을 튀기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6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등 바쁘긴 했지만, 익숙해 지면서 요리에 감도 많이 생겼고 칭찬도 곧잘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용돈으로 벤자민학교 워크숍에 갈 차비도 스스로 마련하고, 요리 박람회에 갈 비용도 사용했다.
김현곤 군에게 한식을 가르치고 있는 대구 동구 율하동의 음식나라조리학원 강사는 "현곤 군이 요리에 소질이 있어요. 전에 해본 건 줄 알았는데 처음 배우는 거라고 하길래 놀랐어요. 굉장히 열심히 하기도 하고요, 일찍 꿈을 가지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라고 말했다.
벤자민학교의 멘토링 제도로 호텔 주방장님을 멘토로 만났던 것 또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호텔 CEO인 멘토님의 소개로 가까운 대구의 인터불고 호텔에서 총주방장인 이오희 과장님을 뵈었다. "총주방장님을 처음 뵐 때, 위대하신 분이고 어렵게만 생각했었데, 친절하게 조언해주셨어요. '인생에서 10대 ~ 30대는 시작하는 시기이니까 지금부터 탄탄히 준비해서 많이 성장하라'고 말씀 주신 게 힘이 됐어요. 일식, 한식, 양식, 이벤트 주방까지 다 둘러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고요. 저도 호텔 총주방장이 되고 싶기도 하고 아니면 제 이름을 걸고 큰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생겼어요." 보는 세상만큼 꿈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 좌) 대구의 인터불고 호텔에서 총주방장인 이오희 과장님과의 만남. 우) 지난 8월 6일채보상공원에서 국민인성회복을 위한 전국달리기 행사에 참여한 벤자민학교 학생들 (김현곤 제공)
벤자민학교에서의 시간은 곧 '김현곤의 재발견'이었다. 체육 활동으로 스쿼시를 하고 있는데, 뜻밖에 민첩성과 신체 활동성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주 동안 배워야 하는 기본기 과정을 하루 만에 익혀 바로 게임을 했다. 어머니도 "현곤이가 이렇게 몸을 잘 쓸 줄 미처 몰랐어요."라며 놀랄 정도였다. 또한, 영어 공부를 위해 주 1회 캐나다에 있는 학생과 화상 회화를 하고 있고 매일 영어단어를 10~15개씩 외운다. 바빠서 하지 못했던 뇌교육 수업을 받으며 두뇌계발도 하고 있다.
요리와 공부 외에도 같은 지역에 있는 벤자민학교 동생들 김상훈, 전도승 군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우리말이나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달리기대회에 참여하는 등 의미 있는 활동이다. 얼마 전에는 대구대학교 앞에서 해오름달(1월), 시샘달(2월) 과 같이 12달의 순우리말 이름도 알리고, '얼굴 = 얼이 드나드는 굴', '어르신 = 얼이 신과 같이 큰 사람' 등 말의 숨은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동북공정 등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알렸다. "사람들에게 한글의 의미를 알리는 것도 뿌듯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설명하는 절 보면서도 놀라웠어요. 벤자민학교에서 워낙 발표를 많이 해서 적응도 된 것도 있고, 사회경험을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19살로 1기 학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현곤 군. 그는 내년에 다시 3학년에 복학할 생각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 학년 나이 차이도 있으니 더 열심히 할 거 같아요. 올해는 요리 자격증 열심히 따고, 내년에는 입시 공부만 하게 될 것 같아요. 이전보다 꿈도 명확해졌으니까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요리로 유명한 대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요리를 할 때 저보다는 이걸 먹을 사람이 생각나요. 제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미래의 주방장 김현곤 군. 19세 소년의 손에서는 맛있는 '꿈'이 정성껏 만들어지고 있다.
글. 조해리 기자 hsave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