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두뇌 관리 노하우
[1편] 당신의 두뇌를 관리하라- [1] Young Brain VS. Old Brain
[2편] 중년 뇌의 재발견, 과소평가 받아온 '중년의 뇌'
[3편] 지친 뇌를 회복하는 두뇌 관리 노하우, 뇌파진동
[4편] 두뇌 관리 노하우-4편. 뇌파진동 배워보기
그동안 뇌과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성과는 뇌의 가소성에 관한 연구였다. 뇌세포는 절대 새로 생기지 않으며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기만 한다는 기존의 생각과 달리 ‘뇌는 쓰면 쓸수록 계발된다’는 가소성의 원리는 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두뇌 계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뉴욕타임스>의 건강 전문 기자 바버라 스트로치가 쓴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겨냥한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과 달리, 40세~65세에 이르는 중년의 뇌가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뇌라고 말한다.
과소평가 받아온 중년의 뇌
언뜻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주장이다. 했던 말을 또 하는 아버지, 휴대폰을 잃어버려 온 집 안을 뒤지다가 결국 냉장고 안에서 찾은 어머니,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생님, 새로운 운영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 상사 등, 우리가 아는 중년의 뇌는 대체로 정보 처리 속도가 느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뿐만 아니라 집중력도 약하고 건망증이 심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뇌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버라 스트로치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중년의 뇌가 그동안 과소평가 받아왔다고 일갈한다.
그는 중년의 뇌가 정보 처리 속도나 세부 사항을 기억하는 정확도, 주의력 등에서 20대의 뇌보다 다소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종합적인 사고 능력 차원에서는 뇌의 전성기에 해당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중년의 뇌는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연결해서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년의 뇌가 가진 경쟁력은 따로 있다. 중년의 뇌는 판단력, 종합 능력, 직관력, 통찰력, 어휘력 등에서 우수하다. 중·고등학교 때는 제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던 개념이 나이가 들어서 저절로 이해되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중년의 뇌는 이처럼 젊은 뇌보다 요점을 더 잘 이해하고 논의의 핵심을 예리하게 간파한다. 큰 그림을 파악하는 데 능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하다. 그 방면에서는 20대의 뇌가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여성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가 실시한 연구 결과는 인간의 뇌가 나이들수록 인지능력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 시애틀 세로 연구소는 1956년부터 40년간 7년마다 6,000명을 대상으로 뇌 인지능력을 검사해왔다. 그 결과 40세~65세, 즉 중년의 뇌가 ‘언어 기억’, ‘공간 정향’, ‘귀납적 추리’에서 최고의 수행 능력을 보였다. 보통 머리가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는 20대의 뇌는 ‘반응 속도’와 ‘계산 능력’ 두 부분에서만 중년의 뇌를 앞질렀을 뿐이다.
기억력은 떨어져도 문제 해결 능력은 오히려 커져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롭고 현명해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의 변화라고만 생각했지 중년의 뇌 전반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바버라는 뇌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등을 아우르는 다방면의 연구 결과를 통해 ‘중년의 뇌가 인간의 생애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증명하고 있다.
중년 뇌의 탁월함은 일단 감정 조절 면에서 드러난다. 일찍이 공자가 논어에서 ‘이순耳順’이나 ‘종심從心’이라는 말로 나이가 들면서 유순해지는 인격을 표현한 것처럼 중년의 뇌는 감정 조절에 노련하다. 최근의 연구 결과는 그러한 변화가 단순히 개인적인 인성과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 대학 달립 제스트 박사는 에딘버러 국제회의에서 “나이가 들수록 뇌에서 도파민의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을 덜 하게 된다”라고 발표했다. 우리가 보통 ‘지혜wisdom’라고 일컫는 것이 사실은 호르몬의 작용이라는 말이다.
중년의 뇌는 또 젊은 뇌보다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몇 해 전에 뉴욕을 출발한 여객기가 엔진 속으로 날아드는 거위 떼를 피하려고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일이 있는데, 당시 승객 150명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조종사와 승무원, 구조를 도운 예인선의 선장까지 모두 경험 많고 노련한 중년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실제로 중년의 뇌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위기 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일리노이 대학 신경과학자 아트 크레이머는 40세~69세의 항공 교통 관제사와 항공기 조종사 118명을 대상으로 응급 상황에 대처하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다. 나이 든 조종사들은 처음 시뮬레이션 장치를 다루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핵심 조종 기술과 문제 해결 능력 면에서는 젊은 조종사들보다 더 뛰어났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통념도 사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뉴욕 마운트시나이 의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것은 단기 기억력일 뿐이라고 한다. 연구팀이 붉은털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기억력 테스트 결과, 원숭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단기 기억력은 떨어지지만 중요한 정보는 더 오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중년에 뇌의 일부 능력이 감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것과 달리 뇌의 손실은 그렇게 맹렬하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뇌의 기능이 한순간에 현저하게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뇌세포는 꽤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80대~90대까지도 온전한 기능을 유지한다.
좌·우뇌를 모두 사용해야 수행 능력이 증가
그렇다면 몇 가지 치명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뇌가 생애 최고의 뇌로 활약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이유는 미엘린myelin 층에서 찾을 수 있다. 미엘린은 신경세포를 둘러싼 백색의 지방 물질로,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누출되거나 흩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절연체 역할을 한다. 이 미엘린이 전선의 절연물처럼 신호들을 빨리 이동시키고 누출을 방지하는데, UCLA 신경과학자 조지 바트조키스가 19세~76세 남성 70명의 뇌를 영상 촬영해보니 뇌에 미엘린의 양이 가장 많은 나이대가 바로 50대였다.
또 다른 근거는 중년의 뇌가 젊은 뇌보다 긍정적이라는 데 있다. 편도는 우리 뇌에서 부정적인 위기나 공포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위다.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뇌는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정보에 초점을 맞출 줄 안다. 게다가 뇌는 나이가 들수록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도 더 나아지기 때문에 사태를 침착하게, 보다 낙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낙관성이 뇌 상태를 한층 긍정적이고 쾌활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덩달아 위기 관리 능력도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들면 젊을 때와는 달리 좌·우뇌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수행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견해도 있다. 토론토 대학 신경과학자 셰릴 그레이디가 언어 테스트를 해본 결과 젊은 사람들은 주로 한 번에 뇌의 한쪽만을 사용하는 데 비해, 나이 든 사람들은 양쪽 뇌를 모두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중년층에서는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양측 편재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좌·우뇌를 동시에 쓰게 되면 더 좋은 아이디어를 짜낼 수 있게 되고, 안 될 일도 되게 하는 놀라운 두뇌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중년의 뇌가 제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얼마나 뇌를 잘 썼느냐가 중년의 뇌를 결정한다. 마찬가지로 중년이라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노년의 뇌기능 또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의 평균 수명은 약 47세였지만 현재는 약 78세까지 연장되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65세 이상의 인구가 5세 미만의 인구를 역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년 핵심 인구도 720만 명에 이른다. 이제 그 어느 시대보다 중년의 뇌를 잘 이해하고 계발해야 할 때다. 새롭게 재편될 인류의 중심에 중년의 뇌가 있다.
글. 전채연 기자 ccyy7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