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하고 욕먹는 문제적 인간으로 거듭나기

+ 뇌와 마음

브레인 18호
2011년 05월 26일 (목)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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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뻔하디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삶을 창조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통감해야 한다. 내 인생 대신 살아줄 사람도 없는 바에야, 이제부터는 좀 들이대고 저지르는 문제적 인간으로 살아야겠다.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연초에 나는 오랫동안 실천해왔던 코티지치즈 리스트를 과감히 청산하고 뇌가 기뻐하는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겠다는 취지로 도파민 리스트를 실천해왔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도파민 리스트는 꾸준히 리스트업 되어서 이제 50개가 훌쩍 넘었다. 덕분에 퍽퍽했던 일상에도 조금씩 생기가 돌고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이 리스트를 채우는 일이 차츰 시들해지는 기미다. 새로운 것에는 열광하지만 익숙하고 잘하는 일에는 금세 지루해하는 ‘몹쓸 뇌’ 탓이다.

어떻게 해야 예전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을지 고심하던 차에 인터넷에서 기이한 행보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정치인의 퍼포먼스를 목격했다.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로 시작하는 다소 과장된 가사, 무중력 춤이라 불리는 독특한 안무와 후크송 특유의 중독성까지 곁들인 ‘콜미’는 발표되자마자 음악 전문 사이트 상위권에 랭크되는 등 네티즌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현대인의 세 가지 고질병

직접 가사까지 쓰고 홍익대에서 단독 콘서트도 열 예정이라는 민주공화당 허경영 총재는 “답답한 경제 상황과 절망적인 정치 상황에 지쳐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공연 취지를 밝혔다. 공연 수익금 전액은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란다. 보통의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행보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순간 ‘아!’ 하고 뇌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인간의 뇌에 대해 연구해온 이승헌 총장(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은 현대인이 뇌의 정보 처리 방식에서 비롯된 세 가지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뇌를 적극 활용해 창조력을 발휘하려고 하지 않고 매사에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창조 자폐증’, 부정적인 정보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정보 에이즈’, 습관처럼 타성에 빠져 사는 ‘타성 중독증’이 그것이다. 진위야 어떻든 허접한 랩으로 ‘콜미’를 부르는 그 정치인의 뇌에서는 현대인에게 만연해 있는 세 가지 고질병은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그제야 나의 도파민 리스트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의 리스트는 안 해본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는 데 맞춰져 있긴 했지만, 스스로 리스트 목록을 창조할 수 있다는 데까지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란 인간은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스스로 문제를 만드는 일에는 젬병인 인간, 분위기 맞추는 건 익숙하지만 모임을 주도하는 일에는 서툰 인간, “뭐 먹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아무거나” 혹은 “당신이 먹고 싶은 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고 큰소리치지만 실은 주도적으로 인간관계 맺기를 주저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형 아니던가. 


들이대고 저지르고 문제를 만들고

그동안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패할지 성공할지 모르면서 일을 벌이고 자신이 직접 만든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주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 자체가 못 견디게 스릴 있고 즐거운, 현대에 보기 드문 창조성이 회복된 인간형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 사고에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만든 기상천외한 문제들에 집중할 줄 아는 건강한 뇌를 회복한 인간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을 저질러놓고 세상의 반응을 기다리는 그들의 뇌에서는 뇌의 고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방대한 양의 도파민이 폭포처럼 분출하고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쩐지 분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나의 도파민 리스트는 이제 한 단계 진화의 기로에 놓인 것 같다. 삶이 던져주는 보너스 같은 경험들을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듯 무작정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도모하고 작당하는 쪽으로의 방향 전환.

나이 마흔이면 얼굴의 주름뿐 아니라 일상의 결에도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루하루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뻔하디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삶을 창조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통감해야 한다.

내 인생 대신 살아줄 사람도 없는 바에야, 이제부터는 좀 들이대고 저지르는 문제적 인간으로 살아야겠다. 안 하던 일 하다가 욕 좀 먹으면 어떤가. 그거야말로 인생의 주인으로, 인생의 창조자로 살아가는 인간이 마땅히 지불해야 할 통과의례. 까짓것, 들이대고 저지르다 거절당하고 욕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고 배가 부르다.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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