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숨겨진 능력이 눈뜨는 순간 - 영화 <원티드>

몰입, 숨겨진 능력이 눈뜨는 순간 - 영화 <원티드>

영화, 뇌로 다시 보기

브레인 15호
2010년 12월 21일 (화)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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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한 영화 <원티드>에서는 초능력자들의 놀라운 감각 경험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극도로 긴장하거나 흥분하면 드러나는 초능력

영화 <원티드>는 최근 들어 유행하는, 만화가 원작인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가 전제하는 세계관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겉보기에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능력은 평소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이유로 극도로 긴장하거나 흥분해서 혈액 속에 아드레날린 함량이 늘어나고 맥박수가 분당 2백 회 이상으로 빨라지면 숨겨진 능력이 눈을 뜨죠. 그것은 초시간 경험입니다. 사물의 움직임을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보는 것처럼 천천히, 그리면서도 뚜렷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빨라지는 것은 시각만이 아닙니다. 몸의 움직임도 그에 걸맞게 빨라지죠. 얼마나 빠른지 심지어 권총으로 파리의 날개만 정확히 맞추고, 총알에 스냅을 넣어 휘어지며 날아가게 만듭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웨슬리(제임스 맥어보이) 역시 그런 인간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단지 극도로 흥분하면 자신이 환각을 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스(안젤리나 졸리)를 만나고 그와 같은 초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비밀 결사 단체인 일루미나티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능력을 자각해 초능력 킬러로 다시 태어납니다.

물론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정의로운 조직인 줄 알았던 일루미나티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었으니, 이를 깨달은 웨슬리에게는 위험이 닥치죠. 물론 이 영화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조직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자들의 놀라운 감각 경험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영 시간 내내 관객들은 그들의 초현실적인 경험 세계를 즐겁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경험하는 초능력, 몰입
물론 이 영화의 설정은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습니다. 맥박수가 2백 회를 넘으면 심장에 무리가 갈 뿐, 몸이 더 빨리 움직이거나 눈이 더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경험은 초능력자가 아닌 우리들에게도 그리 낯선 것은 아닙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가끔은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예를 들어, 이런 순간들입니다. 며칠간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던 어떤 문제의 해결책이 어느 순간 떠오릅니다. 그동안 그 문제에 걸려서 진척시키지 못했던 다른 일들이 갑자기 아주 쉬운 일이 됩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옵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죠.

생명을 위협하는 아주 위험한 순간에 처했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그 순간순간을 일종의 슬로모션처럼 기억한다거나, 교통사고를 겪은 사람이 상대방 자동차와 충돌하던 순간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몰입flow’이라고 하는 현상입니다. 몰입은 보통 ‘어떤 활동에 완전히 몰두할 때 일어나는 최적의 심리적 현상’이라고 정의됩니다.


극도의 효율성을 발휘하는 무아의 경지
몰입하는 동안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도 잊고 자기 자신도 잊어버립니다. ‘무아의 경지’라고 부르는 현상이 바로 몰입이죠. 오랫동안 몰입 현상을 연구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몰입한 상태에서 활동할 때는 몇 분 동안에 몇 시간이 흐른 것 같고, 어떤 때에는 몇 초가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몰입 상태에 들어가면 우리는 극도의 효율성을 발휘합니다.

평소에는 몇 시간이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을 몰입하면 10분 만에 해치우기도 하고, 평소에는 1시간 이상 계속하지 못하던 일도 몇 시간씩이나 계속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몰입 상태에서는 평소에는 생각해내지 못하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냅니다. 게다가 몰입의 경험이 축적될수록 자신감과 행복감이 커집니다.

이렇게 좋은 몰입이지만 우리가 몰입에 빠지는 일은 애석하게도 매우 드뭅니다. 이렇게 좋은 현상이 그렇게 드물게 찾아오니 많은 연구가들이 몰입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몰입은 활동의 결과로 얻는 보상이 아니라 그 활동 자체에 집중할 때 더 잘 일어납니다. 그리고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적당한 난이도의 활동을 할 때, 또 자신이 하는 일에 적절한 피드백이 주어질 때 더 잘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뇌가 생각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그런데 이 몰입이 좌뇌와 우뇌의 활동에 달려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시간의 지리학》을 쓴 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에 따르면 좌뇌 방식으로 생각할 때는 논리와 정해진 시간에 기초해서 분류하고 셈하고 단계적으로 계획을 짜나갑니다. 따라서 좌뇌에게는 시간이 매우 중요하고 시간의 흐름이 곧 생각의 흐름이 됩니다.

하지만 우뇌 방식은 이와 다릅니다. 우뇌로 생각할 때 우리는 직관에 따르고 주관적인 감정에 빠지며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고 무엇보다도 시간의 흐름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뇌가 생각의 주도권을 갖는 우뇌적 사고를 할 때 몰입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떤 활동의 목표보다는 그 활동 자체에 주목하고, 나와 상대방을 구분하기보다는 우리가 함께하는 상황 자체를 보며, 과거나 미래보다는 지금 현재 내가 하는 경험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죠.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는 것은 근대사회의 발상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제시간에 오는 버스나 지하철, 제시간에 시작하는 회의와 작업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지금이 몇 시냐보다는 지금 내 코를 간질이는 냄새와 내 동공을 헤치고 들어오는 빛의 색채에 마음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원티드>의 웨슬리처럼 초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르죠. 모두 몰입의 문제니까요.


글·장근영 jjanga@nypie.re.kr
《팝콘심리학》 《너, 싸이코지?》 《영화 속 심리학》을 쓰고,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을 번역한 칼럼니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블로그 ‘싸이코짱가의 쪽방’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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