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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수시로 자선을 베풀고 기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는 것일까? 당신은 자선을 베푸는 타입인가, 그렇지 않은 타입인가? 그 대답은 어쩌면 당신의 유전자에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 본 대학교의 연구진은 어떤 사람이 이타적인지 아닌지를 유전자 경향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2010년 10월 《사회적 인지·정동 신경과학(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에 실린 연구 보고서 ‘이타주의의 유전적 경향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높은 수준의 이타주의 행동과 특정 유전자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실험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마르틴 로이터Martin Reuter 박사와 동료 연구진은 1백 명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일련의 숫자를 외우게 한 뒤 되도록 정확하게 기억을 해내는 ‘기명력 검사(記銘力檢査, retention test)’를 실시하면서, 참가자들에게 그 보답으로 5유로씩 제공했다.
연구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사례금을 나눠주면서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부를 해도 좋고 그냥 가져도 좋으며, 이 모든 것은 비공개로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연구원들은 누가 기부를 하는지 참가자들 몰래 추적할 수 있도록 사전에 장치를 해두었다.
또한, 실험이 진행되기 전에 연구원들은 참가자들의 구강점막세포를 채취했다. 샘플로 채취한 구강점막세포에서 유전자 분석을 위한 DNA를 추출하기 위해서였다. 연구원들의 관심은 사실 특정한 유전자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유전자는 ‘COMT(catechol-O-methyltransferase)’라고 하는데, 카테콜-O-메틸전달효소의 작용을 관할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카테콜-O-메틸전달효소는 카테콜아민catecholamine의 대사 작용에 쓰이는데, 뇌에 특정한 메시지를 활성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효소는 또 도파민 활성화와 교감신경 및 부교감신경의 신경 전달, 혹은 엔돌핀의 작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결과적으로 COMT는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하며, 뇌의 수용기들을 열어 엔돌핀과 오피오이드 수용기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작용은 흔히 진통제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카테콜-O-메틸전달효소가 몸에 강하게 작용할수록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고 더 많은 엔돌핀이 결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용을 더 깊이 파고들어가면 COMT 유전자에는 두 가지 변종이 있는데, COMT-Val과 COMT-Met가 그것이다. 둘 사이에는 단일한 아미노산 하나의 차이밖에 없으며, 두 유전자 모두 전체 인구에서 동일한 비율로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COMT-Val 변이 유전자’는 뇌의 도파민을 네 배나 더 효율적으로 활성화한다.
이 실험을 통해 연구원들은 COMT-Val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COMT-Met 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보다 평균 두 배나 많은 돈을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이 데이터를 통해, 도파민이 사람이나 동물의 사회적 행동 조절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파민은 신경펩티드 바소프레신(Neuropeptide vasopressin) 같은 물질과 더불어 사람들 사이의 결속을 강화하고 긍정적인 감성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다.
로이터 박사는 1백 명의 실험 참가자들의 DNA를 분석한 끝에 각각의 사람들이 COMT 유전자의 두 가지 변이형 중 어떤 유형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이타적인 행동과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는지 밝혀냈다. 물론 이전의 과학자들 역시 이타주의적 성향이 유전된다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유전자가 그런 성향을 결정짓는지는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로이터 박사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밝혀냈다.
과학자들은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에서 어떠한 행동이 비롯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파헤치는 일을 하고 있다. 듀크 대학교 뇌영상분석센터(Brain Imaging and Analysis Center)에서 일하는 신경과학자 스콧 휴텔Scott Huettel과 동료 연구진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최근 연구논문을 통해 이타주의와 뇌후두부(pSTC, posterior superior temporal cortex, 뇌후두부의 측두협 상부피질 혹은 후부상측두구)가 연관되어 있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뇌후두부는 타인의 의도를 헤아리고 행위를 예측하는 의식 작용에 관여한다. 스콧 휴텔 박사에 따르면, 뇌의 이 영역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인 자극을 인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호랑이가 사냥꾼에게 달려들 때 바로 이 부위가 반응한다.
이타주의와 뇌후두부의 관련성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45명의 실험 참가자의 뇌를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촬영 방식으로 찍었다.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실험 참가자들은 각자의 컴퓨터로 게임을 하거나,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게임을 구경했다. 연구원들은 참가자들이 이 과정을 제대로 해내면 각자 원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도록 사례비를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와 더불어 그들이 남을 돕는 일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설문조사도 병행했다.
fMRI 촬영 결과, 참가자들은 직접 컴퓨터 게임을 할 때보다 게임을 구경할 때 뇌후두부가 훨씬 활성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인지하고 그것을 사회적 관계로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이러한 촬영 결과를 실험 참가자들에게 받은 설문조사 내용과 하나하나 대조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뇌후두부의 활성화 정도가 커지면 그 사람이 이타주의적 행동을 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한 사람의 이타주의적 성향을 결정짓는 것은 그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나 사고방식이라는 점도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휴텔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실험을 통해 발견한 사실은, 인간이 타인의 의도와 목적을 인지하는 시스템으로부터 이타주의적인 자질이 비롯된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가 이타적이 되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의 목표를 인지해야 하며,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그리고 주위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인지해야 한다.”
휴텔 박사는 우리 뇌에 이타주의를 빚어내는 복합적인 메커니즘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즉, 이타적인 행동이 대뇌피질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뇌피질은 두뇌에서도 사고나 판단, 자기인식 등 고도로 진화된 인지 작용을 하는 영역이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2006년 미국 국립과학원 학술지에 실린 한 논문에서도 제기되었다. 조던 그래프만 박사와 연구진은 ‘자선 행위와 fMRI와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논문으로 실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구진들은 실험 참가자들을 모아 가벼운 심리 실험을 진행한 후, 그 대가로 128달러를 사례로 주겠다고 제안했다. 사례금은 자신이 가져도 되고 익명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으니 자유롭게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선이 필요한 사람이나 단체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여준 다음, 그들의 뇌에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이 사례금을 남에게 기부할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가질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중뇌(midbrain)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현상은 식욕이나 성욕처럼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만족시킬 때 중뇌가 활성화되는 패턴과 유사했다.
또한 참가자들이 자신이 내린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 다음에는 전전두피질이 밝아졌는데, 전전두피질은 의사 결정이나 높은 수준의 판단을 내릴 때 쓰는 영역이다. 나아가 그래프만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일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자주 자선이나 기부, 또는 봉사를 하는지 스스로를 평가해달라고 했다. 그 결과 자선 활동 참여도가 높은 사람들은 전전두피질의 활성화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하는 이타주의 개념은 일반적인 포유류가 갖고 있는 보상에 대한 신경체계와 사회적 애착, 근본적으로는 우리 유전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글·로렌 밀리오리 Lauren Migliore
번역·구승준 wcandy@empas.com
이 기사는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와 기사 제휴를 통해 본지에 게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