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으로 뇌를 밝혀라

웃음으로 뇌를 밝혀라

Body & Brain

브레인 5호
2010년 12월 09일 (목)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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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라는 행성에는 무리 짓기 좋아하는 영장류에 속하는 동물이 있다. 이들은 떼를 지어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거의 기절할 때까지 함께 헐떡인다. 함께 모이지 못하면 상자를 바라보며 가상의 무리를 짓고 똑같은 내용을 보면서 다 함께 이상한 소리를 낸다.”
- 외계에 대한 탐구로 이름난 천체학자 칼 세이건이 영화관과 텔러비전을 풍자해 인간의 웃음에 대해 한 농담

우리는 왜 웃는가

인간은 대개 일생 동안 50만 번 이상 웃는다고 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자주 웃는 것일까? 그리고 뇌는 어떻게 웃음을 만들어내고 웃음은 뇌에 어떤 영향을 줄까?

1990년대 후반부터 웃음에 대해 연구해온 메릴랜드 대학의 로버트 프로빈Robert Provine에 따르면 웃음은 유머나 개그에 대한 본능적인 신체 반응이 아니다. 오히려 웃음은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밀접하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30배가량 더 웃는다.

대화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의 말은 실제로 웃기는 말이 아닐 때가 많다. 고작 15% 정도만이 농담에 해당한다. 또 두 사람이 이야기할 때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46% 정도 더 웃는다. 사람은 웃기는 말과 상황에도 웃지만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이유, 즉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연결하는 감정적 배경을 만들기 위해 웃는다.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

인간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무리지어 웃어대는 동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은 아니다. 다윈은 많은 종류의 원숭이들이 기쁠 때 특정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낸다고 기록한 적이 있다. 영화 <타잔>에서 보듯 침팬지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실험실의 유인원들은 종일 서로 간질이며 웃는 데 열중한다. 단지 그들은 사람들과 다른 웃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를 뿐이다.

유인원뿐 아니라 실험실의 쥐들도 웃는다. 실험실의 쥐들은 연구자들이 간질이면 손가락을 장난스럽게 물면서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초음파로 재잘거린다. 간질이기를 좋아할수록 더 크게 소리를 낸다. 또 ‘개가 웃을 노릇’이라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개들도 헉헉거리며 웃는다. 이처럼 일부 포유류들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웃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공통적인 것은 웃음의 사회성이다. 흔히 감정의 주관적이고 내적인 면만을 인식하기 때문에 웃음을 즐거움의 표현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웃음은 사회적인 감정의 표현이자 도구다.

간질이기 좋아하는 뇌

부모와 어린 자식 사이에서 웃음을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간질이기다. 부모의 손길을 느낀 아이는 그야말로 환한 표정을 지으며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고 부모는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사람의 경우 간질이기는 청소년이 될 때까지도 계속된다. 침팬지의 경우는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난다.

간질이기와 웃음은 가족과 무리에서 애정 어린 친근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의 경우 태어난 뒤 2~3개월 내에 소리를 내어 웃을 수 있다. 또한 소리 없는 웃음은 생후 며칠도 되지 않아 시작되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웃음은 인간의 뇌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빈을 비롯한 많은 뇌과학자들은 간질이기 흉내에서 인간의 복잡한 웃음과 유머가 발전했다고 본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표정은 유인원을 포함해서 많은 동물들의 경우 위협과 경계의 표정이다. 그러나 인간의 웃는 표정은 반대로 자신과 타인에 대해 위협이 전혀 없다는 것의 표현이다.

침팬지와 아이들은 간질이는 동작만 취해도 웃는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는 상태임을 서로 아는 상황에서 가짜로 위협을 하는 것이고 간질이기 흉내를 내는 것이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언어가 발달하고 웃음소리도 변하면서 더욱 복잡하게 변화한 것이 현재 인류의 웃음이다.

뇌 속의 웃음보

우리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뇌가 웃을 수 있는 회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어떤 기능에는 반드시 해당하는 뇌의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웃음과 관련된 뇌의 부위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차츰 드러나고 있다.

먼저 뇌의 ‘웃음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프리드 박사 연구팀은 16세 소녀의 간질 발작 부위를 찾기 위해 전기자극을 가하던 중 특이한 현상을 접했다. 좌측 전두엽에서 1인치 크기의 부위를 자극하면 어떤 상황이든 웃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웃겨서 웃는 것이 아니라 먼저 웃고 그 이유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이 부위는 운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완운동 영역(supplementary motor area)에 속한다. 프리드 박사에 따르면 웃음의 실행단계인 운동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변연계도 웃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위다. 변연계에 속한 해마와 편도, 시상 사이의 연결은 친근감, 사랑, 애정, 기분의 표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시상하부, 특히 가운데 부분은 크고 조절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웃음은 뇌 곳곳에서 벌어지는 잔치

웃음에는 변연계, 운동 영역 외에도 여러 영역이 함께 작용한다. 자신이 웃는 것을 떠올려보자. 가령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다고 하자. 출연자의 동작, 말장난 같은 것을 눈과 귀로 듣고 해석한다. 웃기는 대목이라면 안면의 근육들이 움직이고 입을 벌려 소리를 낸다. 배를 잡고 웃으면 복근뿐 아니라 횡격막이 크게 움직인다. 눈물까지 난다. 감각신호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시각과 청각피질, 말의 뜻과 소리를 구분해내는 언어 영역, 기억과 관련된 영역들, 몸의 무의식적인 생리작용을 관장하는 뇌간 등이 관여한다.

좌뇌엽의 청각 영역에서는 주로 농담의 말과 구조를 분석하고 우뇌엽에서는 농담을 알아듣는 지적인 분석을 수행한다. 1999년 토론토 대학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우측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는 논리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유머감각이 매우 떨어졌다. 또 농담의 종류와 관계없이 복내측 전전두엽 피질(medial ventral prefrontal cortex)은 항상 활동했고 웃기는 정도가 클수록 활동량은 증가했다. 이 부위에서 농담이 얼마나 웃기는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웃음은 주로 변연계에 집중된 다른 감정들에 비해 많은 영역들의 종합으로 나타난다.

웃음은 뇌를 밝힌다

웃음이 좋다는 것은 오랫동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웃음이 가장 좋은 의사’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웃음은 횡격막과 배, 호흡기, 얼굴, 다리와 등의 근육을 빠짐없이 운동시킨다. 그래서 에어로빅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웃음은 면역력도 높인다. 혈소판을 증가시켜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혈압을 높일 수 있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웃을 때마다 억제된다. 또한 웃을 때는 암과 세균을 처리하는 NK세포, 감마 인터페론, T세포, B세포 등이 증가한다. 호흡기가 청소되고 침샘에서 분비되는 면역단백질의 농도도 높아진다.

웃음이 몸에 좋은 점은 이외에도 많지만 최근 주목받는 것은 바로 뇌와 감정에 대한 효과다. 웃음은 측좌핵(nucleus accumbens)이라고 불리는  뇌의 보상회로 부분을 자극한다. 바로 이 부분이 활성화되고 도파민의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카테콜아민과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소하고 즐거운 감각이 오는 것이다.

우리는 웃을 때마다 보상을 받는다. 즉,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루이빌 대학의 클리포드 컨Clifford Kuhn 박사의 말대로 일부러 웃는 웃음도 자연스러운 웃음과 똑같은 효과를 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역으로 행동에서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이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웃음은 고통을 느끼는 회로들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우울함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반응들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몸과 뇌의 에어로빅인 웃음의 이러한 효과 때문에 ‘웃음요법’은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자 교육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웃음치료사가 생기고 기업에서도 웃음요법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 호에 소개한 김진희 교사를 비롯한 뇌교육 교사들과 경기도 교육청 등 교육현장에서도 학생들의 감정조절과 집중력, 학습능력 향상과 관련해서 웃음수업을 도입하고 있다.

웃으면 세상도 함께 웃는다

두뇌의 웃음 회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러 뉴런이다. 미러 뉴런은 어떤 특정 동작을 할 때뿐만 아니라 동작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때도 함께 활성화되는 뉴런이다. 다른사람의 동작을 쉽게 따라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공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웃음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웃는 것을 보면 저절로 따라 웃는다. 또 지난해 말 발표된 소피 스콧Sophie Scott 등의 연구에 따르면 웃음소리만 들어도 우리의 뇌는 웃을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시각과 청각의 미러 뉴런은 웃음과 긍정적 감정의 전염성을 설명해준다.

물론 웃음이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다. 때로는 살인자의 미소나 다른 이를 놀릴 때의 비웃음처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황상태에서 제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처럼 어두운 면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웃음을 위한 뇌의 회로가 본래와 다른 용도로 반응하는 것일 때가 많다. 건강한 뇌와 몸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많이 웃고 적절할 때 웃는다. 여성들이 유머감각이 있는 남성을 선호하는 통계도 진화생물학과 뇌의 관점에 본다면 가장 우수한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한 당연한 판단인지도 모른다. 웃자, 그러면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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