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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2월 세계 굴지의 컴퓨터 회사인 IBM의 ‘딥 블루Deep Blue’와 당대 최고의 체스 제왕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의 인간 대 컴퓨터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딥 블루Deep Blue 시리즈는 몇 번의 패배와 성능 개선 후 1997년 5월 세기의 체스 경기에서 결국 승리하였다.
딥 블루는 고전적인 컴퓨터 과학의 방법론을 조합하여 초당 2억 개의 위치를 일일이 계산하는 단순한 논리로 승리를 따냈다. 일견 무식해 보이는 접근에도 불구하고 딥 블루는 체스와 같은 지능 게임에서 인간을 처음으로 이긴 컴퓨터로서 그 위상을 높였고 지능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흔들어 지능의 본질에 대한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그러나 자연과 사회의 실세계의 문제는 더욱 복잡해서 딥 블루처럼 몇 가지 단순한 논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선형적 지능’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세상은 복잡하고 모호한 모습으로 다가오며 우리의 뇌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학습하고 적응하여야 한다.
또 때때로 전혀 다른 방향에서 창의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컴퓨터가 인간의 뇌를 따라잡으려면 뇌의 다양한 단계 간의 상호작용에 기초하여 선형적 지능을 뛰어넘어 뇌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하는 지능의 도약이 필요하다.
뉴런에서 뇌의 모형으로
컴퓨터가 뇌처럼 사고하기 위해서는 먼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세히 알아야만 한다. 현재는 다양한 뉴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모형화가 이루어진 상태다. 세포막을 넘나드는 이온들의 통로에 기초하여 뇌의 신호 생성을 시뮬레이션하는 앨런 호킨 Alan Hodgkin 과 앤드류 헉슬리Andrew Huxley의 모델, 이론적으로 뉴런을 전선과 같은 케이블의 조합으로 표현하고자 한 윌프레드 랄Wilfred Rall의 연구 이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온 통로들의 수많은 조합으로 신경계의 전기적 다양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뉴런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에서의 신호전달 과정, 가소성과 학습 그리고 이온통로의 밀도와 분포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 높아져갔다. 호킨, 헉슬리, 랄과 같은 유형의 뉴런들을 이용하면 실제 뇌와 같이 신호의 피드백이나 상호 억제 기능을 가진 미세 회로들을 모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자들의 모임인 분자는 그 구성 요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이는 것처럼 뉴런들의 모임인 뇌의 경우에도 보고 듣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고급 인지 및 사고 활동에 있어 새로운 도약이 이루어진다. 다양한 뉴런의 세부 모형화에 큰 진전이 이루어졌지만, 다음 단계로 뇌에서의 뉴런들의 분포와 시냅스에 의한 연결 네트워크가 상세하게 모형화되어야만 뇌의 진짜 신비를 엿볼 수 있다.
 블루 브레인에 사용되는 블루진 슈퍼 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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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진 컴퓨터로 만드는 뇌, 블루 브레인
10만 년의 인류문명 역사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인 컴퓨터를 이용해 뇌의 기본 단위인 뉴런, 뇌의 영역, 궁극적으로는 뇌 전체를 모방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2005년 7월 1일 스위스 로잔공대의 뇌정신연구소와 IBM이 공동으로 출범시킨 ‘블루 브레인Blue Brain’이라는 프로젝트였다. 슈퍼컴퓨터의 엄청난 계산력을 바탕으로 포유류의 뇌를 생물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고 생물학적 지능의 발현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다.
이 프로젝트에 쓰일 컴퓨터는 현재 세계 최고의 슈퍼 컴퓨터로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 위치한 블루진 L타입Blue Gene/L이다. IBM이 제작한 이 컴퓨터는 기가giga와 테라tera를 넘어 1억의 1천만 배인 페타peta 플롭스flops(초당 수행할 수 있는 부동소수점 연산의 횟수로 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는 단위 중 하나)라는 놀라운 연산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딥 블루의 11.38기가 플롭스에 비한다면 엄청난 성능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우주 뇌를 탐험하는 여행의 첫발
현재 블루 브레인은 생물학적으로 정확한 뉴런들을 만들어내고 1만여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뇌 미세기둥 구조인 피질원주cortical column를 시뮬레이션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인간의 경우는 6만여 개, 쥐의 경우 1만여 개의 뉴런들이 모여 이루어진 피질원주는 폭 0.5mm, 높이 2mm로 대뇌피질의 기본 단위가 된다. 작년 말 3차원상의 시뮬레이션에서 1만여 개의 뉴런들을 자동적으로 3천여만 개의 시냅스들로 연결시킨 연구 결과는 뇌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100만 배 더 증가하게 되면 블루 브레인은 인간의 두뇌 전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파워를 갖게 될 것이다. 과연 블루 브레인이 끝없이 진화하여 언젠가 인간의 두뇌를 닮은 컴퓨터가 태어날 것인가? 가까운 시일 안에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로봇이 출현하고 치매를 비롯한 뇌질환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작은 우주’ 뇌의 무한한 신비를 탐구하는 긴 여정에서 과학자들과 우리가 함께 풀어내야 할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