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상을 기억하고 알아보는 '사회적 기억'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집단 생활에 필수적이다.
자폐증이나 조현병과 같은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기억에 장애가 나타나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기억의 형성과 저장에 대한 연구는 과학적, 임상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기억이 장기적으로 저장되는 뇌 회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과학과 이용석 교수 연구팀은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도윤 박사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뇌 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에서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연결되는 회로가 사회적 기억의 장기 저장 장소임을 규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전두엽은 친숙한 개별 개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친숙함’이라는 일반화된 정보도 함께 저장한다는 것을 새롭게 밝혔다.
▲ 전전두엽에서 측좌핵으로 연결되는 회로가 사회적 기억의 장기 저장 장소임을 규명하였다.[사진=서울대학교]
기존 연구들을 통해 사회적 기억의 형성 단계에는 해마 영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본 연구에서는 전전두엽이 해마로부터 사회적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아 이를 장기기억으로 저장함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사회적 기억이 해마-전전두엽-측좌핵 회로를 통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며, 전전두엽에 저장되는 정보가 특정 개체에 대한 기억을 넘어서 친숙함이라는 일반적인 속성임을 제시하였다.
이는 사회적 대상에 대한 정보가 뇌의 서로 다른 영역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처리되며, 영역에 따라 다른 종류의 정보로 변환·저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본 연구 결과는 사회적 인지 장애를 동반하는 정신질환에서 해당 경로가 잠재적 치료 타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회로 수준에서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학문적 기반을 제공한다.
사회적 대상에 대한 기억은 처음 형성될 때는 특정 장소나 환경과 함께 저장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일반화된 형태로 변한다. 이를 설명하는 오래된 사례가 심리학자 George Mandler가 제시했던 “버스에서 만난 정육점 사장님 현상(Butcher-on-the-bus phenomenon)”이다.
우리 동네 정육점 사장을 가게에서 만났을 때는 쉽게 알아보지만, 버스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은데? 낯이 익다’는 느낌은 들어도 곧바로 그 사람이 정육점 사장임을 떠올리기 어려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는 기억이 처음에는 “A상가 정육점 주인”처럼 구체적 맥락과 연결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익숙한 사람”이라는 일반화된 형태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용석 교수 연구팀은 기초과학연구원 이도윤 박사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사회적 기억이 저장되고, 친숙함으로 일반화되는 과정에 전전두엽–측좌핵 회로가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이때 해마로부터의 신호 입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생쥐에서 다양한 신경회로 조절기술과, 초소형 형광현미경을 이용한 실시간 뇌 활동 기록 기술 등을 활용해 이를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 뇌측전전두엽 하부피질에서 측좌핵으로 이어지는 회로가 사회적 기억이 장기적으로 저장되는 핵심 경로임을 규명했다.
특히 이 회로는 개별 인물에 대한 정보가 시간이 지나며 ‘친숙함’이라는 일반화된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사회적 기억이 단순히 해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해마 신호를 바탕으로 전전두엽–측좌핵 회로에서 장기적이고 일반화된 형태로 공고화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이는 자폐증, 조현병 등 사회적 인지 장애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뿐 아니라, 해당 회로를 기반으로 한 치료 전략 개발에도 중요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는 이용석 교수의 총괄, 이도윤 교수의 공동지도 아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가은 박사 주도로 수행되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 중견연구 지원사업과 뇌과학선도융합기술개발사업 등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2025년 9월 30일 게재되었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