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연구에 한 획을 그은 사나이 '피니어스 게이지'

브레인 히스토리

철도 건설현장의 작업반장이던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는 1848년 9월 13일 늦은 오후, 미국 버몬트 주 캐번디시 근처에서 사고를 당했다. 6킬로그램짜리 쇠막대가 머리통을 관통한 것이다. 그는 기적같이 목숨을 건졌고 몸도 완전히 회복됐다. 그런데 달라진 점이 있었다. 사고 전에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었던 그가 사고 후 무례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으로 변한 것이다. 피니어스 게이지는 뇌과학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인물로, 인간의 뇌를 설명할 때 그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인간과 동물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그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 피니어스 게이지 ⓒHarvard University


 폭발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운 좋은 사나이

1848년 9월 13일, 미국 버몬트 주의 작은 마을인 캐번디시 근처에서는 선로를 놓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산을 뚫어 철도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일꾼들에게 주어진 도구는 곡괭이와 삽, 드릴이 고작이었다. 철도 건설현장의 관리감독을 맡은 피니어스 게이지는 다부진 몸에 강한 책임감을 가진 스물여섯 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는 작업현장의 일꾼들을 관리하며 화약을 이용해 바위를 부수는 발파 전문가였다.

발파작업은 꽤 위험한 일이었다. 일꾼들이 드릴로 크고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뚫으면 피니어스가 그 구멍에 폭약을 넣어 바위를 폭파시킨다. 당시는 화약을 바위 속에 넣을 때 길고 둥근 ‘다짐막대'를 사용했다.

다짐막대는 길이 1미터에 3센티미터 굵기의 약 6킬로그램 나가는 쇠로 만든 창 모양의 도구이다. 다짐막대에 화약을 넣고 도화선에 불을 붙인 다음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 그동안 피니어스는 폭파 작업을 수 백 번을 했지만, 그날은 달랐다. 피니어스가 들고 있던 다짐막대가 순식간에 바위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바위와 부딪치는 순간 불꽃이 번쩍 튀면서 구멍 밑바닥에 있던 화약에 불이 붙었다.

쾅! 총알이 발사되듯 다짐막대가 솟아올랐고, 막대의 뾰족한 끝이 피니어스의 왼쪽 광대뼈 밑을 관통해 순식간에 머리 앞쪽 부분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다짐막대의 충격으로 뒤로 나가떨어졌다가 혼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놀랍게도 피니어스는 살아 있었다.

일꾼들이 출혈이 멈추지 않는 그를 수레에 실어 마을로 옮기는 동안에도 그는 근무시간 기록부를 언급하며 관리업무를 계속했다. 사람들이 그를 마을 여관에 내려놓고 의사를 부르러 간 사이에도 그는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나 여관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황급히 도착한 의사 할로 박사는 피니어스의 상태를 살폈다. 왼쪽 광대뼈와 아래턱 사이는 4센티미터가량 찢어져 있고, 입천장에도 막대가 뚫고 지나간 구멍이 보였으며, 이마 위쪽 두개골 부분은 뼈가 부서져 뇌가 보였다. 의사는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말랑말랑하지만 머리뼈는 단단하기 때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면 뇌가 머리뼈에 부딪혀 부어오른다. 부풀어 오른 뇌가 머리뼈에 눌리면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면서 산소 부족으로 뇌 손상을 입게 된다. 그런 점에서 피니어스는 운이 좋았다. 다짐막대가 머리뼈를 완전히 뚫고 나가 구멍이 생기면서 뇌가 부풀어 오를 공간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 하버드 의과대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피니어스 게이지의 두개골 ⓒHarvard University


뇌의 출혈은 하루 정도 뒤에 멎었다. 항생제도 진통제도 없던 시대였지만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피니어스는 놀라운 속도로 회복해 사고가 난 지 10주 뒤쯤에는 상처가 거의 다 아물었다. 체력은 많이 약해졌지만 가까운 거리는 걸어갈 수 있었고, 셈도 할 수 있고, 혼자서 밥먹고 옷을 입고, 심지어 노래도 불렀다. 말을 하고 듣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어린아이 같은 정신을 가진 건장한 남성


이듬해 봄 피니어스는 다짐막대를 들고 캐번디시로 돌아왔다. 그는 이제 어디를 가든 다짐막대를 가지고 다녔다. 그의 상태는 왼쪽 눈의 시력이 점점 나빠져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이마와 왼쪽 광대뼈에 작은 흉터가 남아 있을 뿐 그 외의 신체능력은 정상이었다.

그런데 현저하게 예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피니어스는 그답지 않게 제멋대로 행동하며 무례하게 굴었다. 툭하면 사람들 기분을 상하게 하고, 곧잘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회사에서도 잘렸다. 동료들은 “피니어스는 가장 일 잘하고 능력 있는 반장이었지만 사고가 난 뒤에는 사람이 너무 달라져서 일을 맡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니어스를 치료한 할로 박사는 그에 대해 “지적 능력과 표현은 어린아이와 같고 육체는 건장한 남성이었다”라고 표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아이들이나 동물들과는 잘 지냈다는 것이다. 피니어스는 어린 조카들과 놀아줄 때 모험담을 지어내 들려줄 만큼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다.

철도 건설회사에서 더는 일할 수 없게 된 그는 사고 발생 후 4년 뒤 칠레에 가서 역마차 마부로 7년 가량 일하다가 1859년 미국에 사는 여동생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몹시 아팠고 쇠약한 상태였다. 체력을 회복해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나 말다툼을 벌이는 등의 문제로 일터를 계속 옮겨 다녀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무슨 일을 하든 늘 뭔가 마음에 안 들어 했다”고 말했다. 다음해 2월에는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 처음 발작을 일으켰을 때는 후유증 없이 바로 회복했으나 이후 발작이 계속 일어나면서 점차 쇠약해졌다. 1860년 피니어스는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가 평생 가지고 다닌 다짐막대도 그와 함께 땅에 묻혔다.


사고 전 피니어스, 사고 후 피니어스

할로 박사는 피니어스의 사망 소식을 몇 년 뒤에야 전해 들었다. 그는 피니어스의 사례가 뇌과학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일임을 예감하고 피니어스의 어머니를 설득해 시신을 무덤에서 꺼냈다. 그의 두개골을 공개하자 그동안 피니어스의 사례에 대해 믿지 못했던 의사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피니어스의 왼쪽 광대 부분과 이마 위 머리 부분은 피부로 덮여 있었지만 두개골에는 여전히 구멍이 남아 있었다.

뇌 연구자들은 피니어스의 사례를 참고해 인간 뇌의 앞쪽에 있는 ‘전두엽’이 사태를 예측하고 결정하는 판단기능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관장하는 부위임을 알게 되었다. 이 같은 기능을 하는 전두엽이 손상되면 감정이나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겨 거친 말을 하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 미국 버몬트 주 캐번디시에 피니어스를 기리는 기념비를 있다 ⓒwikipedia

피니어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사고 전의 피니어스와 사고 후의 피니어스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머리의 상처 외에는 외적으로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동료들은 달라진 그가 더 이상 피니어스가 아니라고 했다. 성격이 달라지면 그 사람이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후 피니어스 게이지는 초기 뇌 연구의 대표 사례로 유명해졌다. 당시 뇌 연구에서는 두 가지 이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하나는 뇌가 부위별로 각각 다른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뇌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모든 기능을 수행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특정 부위가 손상되더라도 다른 부위에서 그 기능을 대신해 정상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뇌가 부위별로 각각 다른 기능을 담당한다는 이론이다. 어떤 부위가 손상되면 그 부위에 관련된 기능에만 문제가 생길 뿐 다른 기능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이 두 가지 이론 모두 적용된다고 본다.

 

뇌와 행동의 상관성을 밝히는 중요한 출발점

피니어스의 두개골과 다짐막대는 현재 하버드대학교 의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살아있는 뇌를 촬영할 수 있는 CT, MRI 같은 최첨단 장비들이 개발되면서 뇌에 대한 연구는 큰 진전을 이루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피니어스의 두개골을 3차원 영상으로 재현해냈다. 최신 과학기술로 그려낸 피니어스의 두개골을 보면 다진막대가 아주 절묘하게 뇌의 중요 부위를 비켜갔음을 알 수 있다.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말하기 기능)과 베르니케 영역(알아듣는 기능)을 건드리지 않아서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조금만 뒤로 지나갔다면 중요한 혈관이 잘려 곧바로 죽었을 것이다. 또 대뇌피질 위쪽의 운동감각과 체감각을 담당하는 부위도 무사해서 움직이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좌뇌와 우뇌가 마주 보는 한가운데 지점이 막대가 관통되면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능력을 잃었다.
 

▲ 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피니어스의 두개골을 3차원 영상으로 재현해 _사이언스_(1994)에 발표했다 ⓒHarvard University


인간의 살아있는 뇌 연구에는 윤리적인 문제로 많은 제약이 따른다. 피니어스는 우리 두뇌의 앞쪽 부위(전두엽)가 고유한 성격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사고 후 피니어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지만, 이는 뇌와 행동의 상관성을 밝혀내는 뇌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글_전은애 수석기자 hspmaker@gmail.com

참고자료
_Harvard University; Lessons of the brain: the Phineas Gage case (https://youtu.be/yXbAMHzYGJ0)

_<쇠막대가 머리를 뚫고 간 사나이> 존 플라이슈만 John Fleischman, 논장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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