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적 순간] 춤을 춰! 그리고 살아나

[명상적 순간] 춤을 춰! 그리고 살아나

명상적 순간

브레인 111호
2025년 08월 11일 (월)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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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적 순간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머릿속에서 당신을 지배하는 폭군들

나는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어화하고 수치화한 것,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모든 것은 생명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무리 멋진 이론도, 그 어떤 화려한 증명도 이 순간 당신의 하품보다 진실하지 못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30분째 이어지는, 명상에 대한 당신의 ‘과학적’ 반박을 들으며 하품이 일어나는 참된 순간을 무려 5번째 맞이하고 있다. 30분을 인내했으니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예의는 다했고, 이제 이 자리의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내 행복을 향해 떠나려 한다. 

“선생님, 그런데 왜 명상이 과학적이어야 합니까? 명상이란 생명과 하나 되는 존재학입니다. 과학은 아직 생명의 1퍼센트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과학이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서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자신들이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지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포용력도 없이, 본인들이 모르는 영역에 대해 ‘비과학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매도하는 것은 무척이나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아닐는지요?”

가슴이 시원해졌다. 행복은 찾아왔고 고객은 떠났다.

당신 뇌에는 좁은 시야에 옹졸한 가슴을 지닌 어린 폭군 수백, 수천 명이 앉아 있다. 과학, 의학, 인문학, 철학 같은 것이 그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주요 임무는 당신의 생명을 심판하는 것. 하극상이다. 

그냥 ‘나’로 사람들 앞에 서면 어떤 태도로 있어야 하는지 위축되다가도 누군가 나를 ‘서울대 출신의 공학박사’라고 소개하면 갑자기 당당함과 여유가 온몸에 흘러넘친다. 간판이 주는 가치에 내 생명의 가치가 종속돼 버렸다. 우리는 자기 자체로, 빛나는 생명으로 존재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뭔가 답답하고 허전하고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온전한 생명으로서 자신의 빛을 되찾고 싶어서 당신은 명상원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신은 명상할 때조차 자꾸만 배우려고 한다. 가볍게 뛰어들어서 행하면 되는데, 엉덩이를 깔고 앉아 이해하려 한다. 

벌떡이는 생명의 심장을 앞에 두고도 손을 뻗어 잡지 않는다. 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정보 폭군들의 가스라이팅 속에서 자신을 끝없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열심히 쳐다보고 기록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우리, 생명의 춤을 추자!

생명은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가 발현되는 모습이 춤이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춤인 것이다. 춤을 추자. 생명을 배우려 하지 말고, 생명으로 존재하자.

▲ 의식의 밝기를 나타낸 도표 _출처 :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혁명》


춤이 시작되는 의식 75룩스

에너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점, 즉 춤이 시작되는 지점은 75룩스, 슬픔이다. 눈물로, 한숨으로 에너지가 분출하면서 아주 느리게 가슴이 펴지고 척추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추천 춤 : 울기. 가슴 두드리기. 소리내기.


춤이 표현되는 의식 125룩스 

욕망, 분노, 자존심은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에너지 레벨이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부딪힌다. 더 많이 쥐기 위해 근육을 짜고 조이고, 더 많이 얻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며 팔다리를 크게 움직인다. 땀이 흐르고 숨이 거칠어진다. 

추천 춤 : 팔다리를 쭉쭉 뻗는 스트레칭. 땀 나도록 뛰기. 몸이 굳지 않게 돌리고 짜기


리듬을 탈 수 있는 의식 200룩스

욕망의 투쟁이 끝나면 잠시 멈춰서서 숨을 고를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때야 비로소 내 숨소리, 심장박동, 내가 서 있는 곳, 나와 함께 서 있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된다. 

욕망으로 닫혀 있던 감각이 지금, 여기를 향해 열리면 이때부터 리듬을 탈 수 있게 된다. 내가 고집하던 동작과 박자를 내려놓을 용기를 낸다. 머릿속 폭군들에 반항하는 첫 순간이다. 열린 마음의 공간으로 잃었던 생명의 감각이 돌아오고,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나게 된다. 타인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갖게 되어 그와 함께 리듬을 탈 수 있다. 

추천 춤 : 가볍게 리듬 타기. 동작을 배워서 움직여 보기. 커플 댄스 배우기


춤을 즐길 수 있는 의식 310룩스

틀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해지면 새로운 감각이 열리고 깊어진다. 머릿속 정보에 휘둘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사회적 기준에 맞춰, 좀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던 춤에서 진정 자신을 위한 춤으로 넘어가게 된다. 

잘 추고 못 추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 어떤 형식도 필요 없다. 누군가의 평가도,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춤이 좋다. 살아있음이 참 좋다. 

추천 춤 : 음악 틀어놓고 신나게 추기. 그냥 추기 


모든 것이 춤이 되는 의식 500룩스

이제 모든 것 속에 있는 각기 다른 리듬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춤이 생명력의 발현임을 깨닫는다. 삶을 관통하는 축복의 리듬 속에 항상 존재하므로 더 이상 춤과 일상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걷고 말하고 웃는 그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의 리듬 속에 있으니 일상의 모든 것이 춤이다. 어떠한 마음이나 현상에 집작하지 않고 그냥 존재한다. 리듬으로, 춤으로 존재한다.  

추천 춤 : 감사하며 살기


하나가 되는 의식 600룩스

사실 우리가 춤을 추고 싶은 건 ‘하나’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앙리 마티스가 그린 ‘춤’이라는 작품에서 춤에 대한 인류의 원형을 본다. 화려한 동선이나 구체적인 동작이 아닌, 너와 나를 잇는 끊임없는 역동과 영원한 생명의 순환. 그 안에 함께 존재하는 당신과 나.

추천 춤 : 사랑하기. 공생하기
 

▲ <춤>, 앙리 마티스, 캔버스에 유채, 260×391cm, 1910, 뉴욕 MoMA


하나의 인류로 공생의 춤을 추자

일상의 명상적 순간은 생명으로 회귀하는 순간이다. 스스로 내 생명의 주인이 되는 의식적인 행함이다. 그래서 나는 춤을 추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과 함께 춤을 추고 싶다. 동작으로의 춤, 예술로의 춤을 멈추고 생명의 역동을 되찾아 오고 싶다. 

조금 덜 똑똑해지자. 조금은 멍청해져도 좋겠다. 생명의 춤을 추자. 그렇게 내가 되자. 그렇게 우리가 되자. 그렇게 사랑의 리듬을 타자. 지구 위 하나의 인류로 공생의 춤을 추는 날, 우리의 생명이 우리를 우러러보게 하자.


글_권나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브레인트레이너로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운영하며, 명상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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