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어플에 넣을 이모티콘 캐릭터를 디자인하면서 재미있어서 2주 정도 밤을 거의 새우다 시피 했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디자인 팀장인 멘토께서 지적을 해도 그게 기분 좋은 거예요. 제가 한 뼘 더 성장한 거니까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대전학습관 김정연(19) 양.
▲ 지난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꿈진로 토크콘서트에서 김정연 양은 1년간의 도전기를 발표했다.
가능성 있는 꿈을 구체적으로, 일관되게 꾸라는 어른들
공교육에서도 2009년 입학사정관제도(현행 학생부종합전형)가 시행하면서 진로탐색이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나 교사나 학부모는 ‘성적에 맞게 가능성 있는 꿈을 찾아 구체적으로, 일관되게 꾸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한번 정한 꿈은 바뀌면 안된다. 진로희망사항이 바뀌는 학생들은 입학사정관의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적성을 파악하고 진로를 찾는 게 아니라 ‘대입을 위한 직업’찾기가 되고 있다.
최근 청소년들이 꿈과 끼를 찾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올해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된다. 그러나 시행을 앞두고 ‘자유학기제는 선행학습 할 좋은 기회’라며 불안한 부모의 심리를 부추기는 상술에 유명 학원가가 붐빈다. 부모 욕심에 공부와 관련된 캠프나 과정을 밟게 하는 등 수박겉핥기식의 진로체험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진지하게 자신이 원하는 꿈과 삶의 방향을 찾아 1년을 투자한 아이들이 있다.
꿈이 많아도 꿈이 없어도 문제,
그러나 우리는 직접, 다양하고 깊이 있게 체험하고 찾아간다
▲ 김정연 양이 디자인해 출시한 스마트폰 어플용 캐릭터.
김정연 양은 인문계 학교 다닐 때 제품디자이너, 간호사, 가수나 성우처럼 목소리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직업 등 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그러나 막상 공부 말고 꿈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나 기회가 없어 확실하게 진로를 선택하기 어려웠다. 지난 해 자유학년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정연 양은 꿈꾸던 일들을 직접, 그리고 모두 다 경험했다.
벤자민학교 학생들이 만든 공연기획팀 ‘아련새길’에서 총디자인팀장을 맡아 로고, 공연포스터, 공연현수막을 제작했다. 인터넷콘텐츠 제작회사에서 디자인 팀장 멘토를 만나 어플 이모티콘 캐릭터를 제작해 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아련새길 팀 공연때 보컬로서 무대에서 공연했고,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라디오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라디오 DJ도 해보았다.
▲ 김정연 양이 디자인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공연기획팀 '아련새길'의 로고들.
이 과정에서 김 양은 산업디자이너라는 자신의 적성을 찾았다. “소질이 있는 줄은 알았는데 흥미는 그다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어플 캐릭터가 출시되어 나오니 뛸 듯이 기뻤죠. 다른 체험을 할 때 재미있지만 책임감이나 끝나고 난 후 뿌듯함이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디자인을 할 때는 ‘책임지고 해내야지, 더 잘해야지’ 하며 실력을 키우고 싶은 마음과 완성된 후 뿌듯함이 정말 컸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아간다
김정연 양은 디자인에 대해 더 알아가기 위해 미술관도 다니고 강연, 전시도 참여하는 중이다. 어떤 종류의 디자인에 더 끌리고 관심 있는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라고. “전시 중에는 헨릭빕스코브 전시와 지브리 입체건축전이 기억에 남는데요. 디자인에 대해 그동안 한정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지난 11월에는 뽀로로 캐릭터디자이너의 강연을 갔다가 그 분도 제품디자인에서 캐릭터 디자인으로 바뀌셨더군요. 지금 딱 한 방향으로 정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했어요.”
▲ 김정연 양이 디자인한 공연 포스터(왼쪽)와 개천절 행사 포스터(오른쪽).
정연 양은 올해 졸업 후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좋은 직장 잘 잡으려고 스펙을 쌓기 위해 가는 대학이 아니다. 그동안 자격증 따는 수준까지만 배우고 독학으로 해왔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정연 양은 “1년간 경험이 없었으면 디자인 방면으로 나가도 어른이 돼서 힘들 때마다 확신이 없어 후회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처음에 1년을 허비하는 건 아닌가 고민했는데 그 생각이 싹 사라졌죠. 제 꿈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 꿈을 향해 전력을 다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라고 했다. 지금 김정연 양은 뮤지컬 배우에도 관심을 두고, 11월부터 극단에 들어가 연극도 배운다. 누군가 “너 그쪽 길로 가려고?”라고 물어보면 단호하게 ‘취미’라고 답한다.
우리의 꿈을 어른들의 눈으로 재단하지 말았으면
벤자민학교 경기남부학습관 이재승(18) 군은 일반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고 로봇만들기와 영상제작에 관심을 가졌다. 재승 군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할 만큰 좋아할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재승 군은 인터넷TV 멘토를 만나 영상편집을 3개월 간 본격적으로 배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학습관 친구들과 토크콘서트를 직접 기획하면서 가슴 뛰게 좋아하는 일을 발견했다. 자신이 사람을 만나고 공연기획을 하면서 행복했다. 예전 학교에서 스스로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해 친구들이 밀어줘도 잘 나서지 않던 재승이가 이제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리더십도 발휘하고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알게 되었다.
▲ 꿈진로 토크콘서트와 페스티벌을 공동 기획한 친구들과 함께 한 이재승 군(오른쪽 두번째).
충북학습관 박선진(18) 양은 일반고를 다닐 때 꿈이나 목표가 없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시키니까 공부했죠. 제가 절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남들에 맞춰 사는 삶 같아서 행복하지 않았어요.” 선진 양은 벤자민학교 1기생 선배들이 행복해 보였다고. 입학 후 전국으로 많은 여행을 다니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평소 범죄 심리 쪽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후 그 방향으로 체험을 해 나갔다. 과학수사체험캠프를 다녀오고 경찰청 인권아카데미 강연을 받았다. 국제범죄에도 관심이 있어 공부했다. 최근에는 범죄심리학 전문 검찰청 수사관 멘토를 만나 경찰의 역할을 잘 알게 되었다. 이제 박 양은 “앞으로 국제적인 범죄를 담당하는 홍익경찰이 되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한다.
직업이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고 삶의 방향을 세우는 아이들
자신의 꿈을 찾아 1년간 수많은 경험과 도전을 해본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진로체험은 진학과 취업을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고 한다. 벤자민학교 김나옥 교장은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방향, 이를테면 삶의 철학을 스스로 세우는 것이죠. 1년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알고 정말 사랑하고, 그만큼 남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자신을 그리는 법을 배우죠.”라고 했다.
이제 100세 시대, 120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이다. 살아가면서 평생직업이 아니라 2~3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래학자들은 5년 후 현재 직업의 50%가 없어진다고 진단한다. 지금 어른들이 안정된 직장이라고 하는 것들이 무의미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른의 시각으로 청소년들의 꿈과 끼를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청소년 시절 자신이 생각한 꿈이 맞는지 혹은 또 다른 꿈이 가슴을 뛰게 할지 깊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주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더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글/ 강현주 기자 heonjuk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