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리포트] 나는 모르지만 뇌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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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뇌활용 생활

브레인 92호
2022년 10월 31일 (월)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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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뇌과학

지난 2010년 기아자동차는 새로운 자동차를 출시하면서 모델명을 정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기존의 설문조사 방법이 아닌 시선 추적(Eye Tracking) 및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해 소비자의 뇌를 분석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한국인 100명과 외국인 100명 총 200명을 대상으로 시선 추적과 기능성자기공명영상 장치를 실험에 활용해 소비자들의 뇌를 가장 활발하게 반응시키는 알파벳이 ‘K,T,N,Y,Z’임을 찾아냈다. 특히 실험 참가자들은 세대와 국적에 관계없이 ‘K’에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 ‘7’을 조합한 ‘K7’에 가장 활발한 뇌 반응을 보였다.

기아자동차 ‘K7’ 모델은 출시되자마자 2만여 대가 팔렸고, 이후 K5, K3 출시까지 이어지며 기아자동차의 브랜드 이미지를 성장시키는 데 견인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fMRI, 시선 추적, 양전자단층촬영, 뇌전도, 뇌파 등 뇌과학 기술을 활용하는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그동안 병증을 치료하는 의학 분야에서 다루었던 뇌의 생체신호를 분석해 자기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무의식적 욕구, 습관, 행동 등을 파악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비교적 측정이 간단한 뇌파 분야는 측정 장비가 다양하게 개발되면서 의학뿐 아니라 마케팅, 심리학, 교육 분야까지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다.
 

▲ K7 (사진. 기아자동차)


뇌세포 간 파동을 측정해 알 수 있는 것들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 불리는 약 1천억 개의 뇌세포로 구성된다. 각각의 뇌세포는 수상돌기와 축삭돌기들이 밖으로 뻗어 나와 있고, 이들에 의해 수많은 뇌세포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뇌세포 간의 연결을 시냅스라 하는데, 우리 뇌에는 1백조 개의 시냅스 연결 구조가 있다. 

눈이나 귀, 촉각 등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정보가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되는데, 뇌세포 사이에 전기신호가 오갈 때 전기적 파동이 생긴다. 뇌세포 하나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파동의 세기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지만, 수만 개의 뇌세포가 동시에 전기신호를 주고받으면 미약한 파동들이 합쳐져서 측정 가능한 파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뇌파이다. 

뇌파는 주파수에 따라 델타, 세타, 알파, 베타, 감마파 등 다섯 종류로 구분된다. 보통 알파파는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일수록 진폭이 증가하고, 불안하고 긴장될 때는 베타파가 활성화된다. 알파파는 편안하고 이완된 상태에서 뇌가 자유로운 연상을 하고 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며,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고 논리적으로 사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활성이 억제된다. 

우울증 환자의 뇌파는 좌측 전두엽의 알파파가 활발하게 발생하여 우측 전두엽에 비해 심한 비대칭을 보인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연구팀은 경두개 교류자극술이라는 일종의 전기 뇌 자극 요법을 통해 양측 전두엽의 뇌파 진동을 균등하게 만듦으로써 우울증을 개선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알파파 활동이 높을수록 창의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창의성을 위한 뇌 신경망의 재구성은 주로 휴식 또는 명상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뇌파 측정기기를 이용한 두뇌활용 능력 검사

현재 교육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는 분야는 뉴로피드백neuro feedback이다. 뉴로피드백이란 생체신호를 보면서 스스로 훈련하는 바이오피드백의 일종으로 뇌파를 조절하여 뇌의 이상이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의학적 치료법이다. 뉴로피드백은 자신의 뇌파 상태를 직접 보면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조절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약물 치료와 달리 부작용이나 중독성이 없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 각종 중독, 집중력 관련 증상들을 치료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2005년에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학교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뇌파를 활용하고 있다. 뇌파 측정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력, 집중력, 스트레스, 심리적 안정감 등을 파악하는 두뇌활용 능력을 검사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기에 설문지 방식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뇌파 측정기기는 학교 밖 청소년 돌봄 프로그램, 학교 내 대안교실, 인성교육 프로그램, 진로 탐색 캠프, 두뇌활용 학습 코칭 방과후 수업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IQ는 아이들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측정 지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서 IQ 테스트를 하지 않는다. 런던 사이언스뮤지엄의 로저 하이필드 박사 연구팀은 2012년 전 세계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12가지 지능 테스트를 수행했다. 그 결과 단순히 수리나 언어능력뿐 아니라 각자 독특한 능력을 가진 여러 요소가 모여 인간의 지능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간의 지능을 IQ 테스트만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IQ 지수가 낮게 나온 사람도 다른 방면에서는 얼마든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연구팀은 “인간의 뇌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다”면서 “단순히 IQ 테스트만으로 뇌기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순”이라며 “인간의 지능을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뇌의 특성을 파악하는 브레인 컨설팅 

학부모들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아이의 두뇌 성향을 파악해 학습방법부터 신체, 정서 부문까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컨설팅 받고자 하는 학부모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 아이의 뇌파를 측정해 분석하는 ‘브레인 컨설팅’을 받은 한 학부모는 “예전에는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이제는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아이의 특성에 맞는 분야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의 특성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분석해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의 성향과 관심 분야를 파악하면 그에 따른 교육 컨설팅이 이어진다. 

한편 뇌파 기술이 교육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상담사의 전문성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뇌파가 인체의 생체신호인 만큼 뇌파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솔루션을 제시하는 상담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상담사가 공인된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뇌파 관련 분야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글. 전은애 수석기자 hspma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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