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드라이버와 괭이, 호미, 그리고 가위.
이 네 가지 도구로 뭘 할 수 있을까? 이 도구로 강원도 산골 500평 텃밭에서 60여 종의 작물을 키우는 이가 있다. 경운기도, 그 흔한 비료와 물뿌리개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흙 속의 미생물이 도와주고 햇볕·비·바람과 함께 짓는 농사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힘을 믿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 감사히 취한다.
신간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의 저자 자운이 짓는 농사법이다. 이른바 '4無농법'이라 할 수 있는 태평농법을 책으로 풀어냈다. 456쪽의 책 안에 농사짓는 이야기부터 직접 거둔 재료로 요리한 이야기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4無' 태평농법은 △농약을 쓰지 않는 무(無)농약 △화학 비료도 쓰지 않는 무(無)비료 △퇴비를 쓰지 않는 무시비(無施肥) △인위적으로 땅을 경작하지 않는 무경운(無耕耘)이다.
▲ 언니네 책방 열한 번째 책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자운 저, 한문화)
많은 수확물을 거두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믿고 기다릴 수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성장이 더뎌도 비료나 거름을 주지 않고 땅심을 믿고 기다린다. 가문 날이 이어져도 물을 주는 대신 작물의 자생력을 믿고 버틴다. 파종할 때는 굵은 드라이버로 땅을 살짝만 파서 씨앗을 심음으로써 땅을 최소한만 건드린다.
좀 더 건강하게 먹어보자는 생각에 언니도 집에 작은 텃밭 하나를 꾸렸다. 작은 텃밭 하나일 뿐인데, 이미 온갖 기구들을 사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기농 비료도 한 포대나 사두었고, 뿌려둔 씨앗이 말라 죽을까 아침저녁으로 흙을 만져 물을 주기 일쑤다. 태평농법은커녕, 근심걱정농법이 따로 없다.
'산골농부' 자운 역시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뼛속부터 '도시인'이었던 그녀가 귀농에 이어 취농까지 선택하게 된 것은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었던 과거 덕분이다. 빵을 주식으로 살며 요리에는 젬병이었던 저자는 2001년 큰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아팠다.
삶에 대한 의욕도 바닥나버린 어느 날, 우연히 '태평농법'을 접하면서 삶이 달라졌다. 농사를 통해 변화무쌍한 자연에 놀라고 감동하며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자각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20~30대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씩씩한 50대가 되었다.
《산골농부의 자연밥상》은 자연이 그대로 키워낸 결실처럼 속이 꽉 차있다. 1장에서는 산골농부 자운의 농사와 밥상 이야기를 한다. 2장부터 4장까지는 봄 여름 가을 태평농법으로 작물을 어떻게 심고 키우고 거두는지, 거둔 작물들을 맛있게 먹는 레시피를 소개한다. 5장에서는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해 궁합이 맞는 작물끼리 함께 심는 방법을, 6장에서는 겨우내 땅심을 키우기 위해 월동작물 심기를 이야기한다. 부록으로 딸린 산골농부의 1년 농사달력을 보고 있자면 자연의 1년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다채롭다.
이 책은 태평농법의 실천편이자 자연음식도감 아니던가. 책에는 저자가 직접 키우는 60여 가지 작물 중 46가지를 활용한 레시피(Recipe:요리법) 154개가 펼쳐져 있다. 자운과 같이 직접 재배하여 자연 그대로의 선물을 오롯이 요리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제철 기운을 받고 자라난 작물 본연의 맛과 풍미를 최대한 살려낸 자연밥상을 흉내 내 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글.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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