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대학교 미디어 디자인학부 지상현 교수

한성대학교 미디어 디자인학부 지상현 교수

시각뇌 연구 통해 아름다움 이해하는 감성과학자

뇌2004년1월호
2013년 01월 09일 (수)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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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빨간색을 보면 덥다고 느끼고, 파란색을 보면 춥다고 느낄까? 광고에서 보면 안정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자동차는 앞부분이 오른쪽을 향해 있고, 역동적이고 스피디한 느낌을 주고 싶은 레저용 자동차의 경우 왼쪽을 향해 있을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인간의 감성을 단순히 정신 물리학적인 심리 분석이 아닌, 뇌의 시지각에 기반하여 연구하고 있는 이 분야의 개척가가 있다. 바로 한성대학교 미디어 디자인학부 지상현(44) 교수.


지상현 교수는 지난 2003년 8월 국내 심리학회 학술대회에서 ‘그림의 아름다움과 뇌’에 대한 내용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그는 본래 예술가이나 예술가로서의 창작욕만큼이나 아름다움의 근본 원리에 대한 탐구심 또한 왕성했다. 그리하여 창작 활동과 더불어 자연스레 심리학과 뇌신경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갖고, 아름다움의 원리를 신경생리학적으로 밝혀내는 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01년 미국에서는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에서 신경미학회가 창립될 만큼 뇌 연구를 통한 예술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그가 이 분야의 유일한 연구자다. 

경계 넘나드는 연구 궤적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추리력과 상상력이 뛰어났던 그는 철학자가 꿈이었다. 그러나 “제발, 밥 굶기 좋은 철학과만은 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만류로 인해, 철학과 대신 홍익대학교 시각 디자인과에 진학한다.

“창작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갖지 않는 미의 원리에 대한 질문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대학원은 미학과를 진학할 결심을 했죠.”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당시 유일한 미학 전문서적 판매 서점이자 미학도들의 아지트 ‘글벗’에서 죽치고 살았단다. 그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 있다면 ‘미학은 내가 공부할 분야가 아니구나’였다.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 지적인 논의를 풍요롭게 이끌어 내는 미학은 그가 창작 과정에서 가졌던 구체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계속 공부한다.    

졸업 후 어느 대기업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늘 지적 허기를 느꼈다. 생활 속에 파묻혀 대학교 때부터 천착했던 문제를 잊어버리고 지내긴 했지만, 근본적인 탐구욕은 가슴 깊은 곳에 똬리 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광고 작업을 하면서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연세대에서 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는다. 그즈음 안양대 디자인과 교수직 제의가 들어와 직장도 옮겼다.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하고는 담당 교수님을 찾아뵙기 위해 학교를 찾았죠. 인문관 앞에 도착했는데 어찌나 심장이 세차게 뛰던지요. 신이 나서 교수 연구실이 있는 6층까지 멈추지 않고 뛰어 올라갔습니다.”

지금도 존경하며 자문을 구하는 그의 은사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심리학 분야의 권위자 연세대 정찬섭 교수가 바로 그의 은사이다. 

“당시 심리학계에서는 연구실에 갇힌 심리학이 아닌 사회에 기여하는 심리학을 해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습니다. 은사님께서는 디자인에 심리학을 접목하려는 제 의도를 이해하고 받아주셨죠.”

안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외에는 대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연구 활동에 집중했다. 연구 기간 8년 동안 주말에 쉰 적이 두 번 정도. 국내에 예술 심리학을 전문으로 전공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미술에서 실험 주제를 이끌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게다가 논문을 쓰려고 해도 국내에는 예술 심리학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독서 목록을 만들기 위해 후배가 공부하는 미국의 MIT를 찾아갔죠. 후배 열람증으로 도서관에서 예술 심리학 관련한 책을 빌렸어요. 절판되어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는 책들은 서울로 가져와 복사 제본한 뒤 다시 돌려보냈죠.”

뇌에 대한 관심 불러일으킨 쾌감중추영역

그는 심리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에서도 지각실험 심리학을 전공했다. 대뇌 시각 피질에서부터 감각적인 정보처리 단계를 지각실험 심리라고 하는데, 디자인의 경우 지각 가운데 시지각 심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셈이다.

당시만 해도 심리학계의 연구 방식은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는 정신 물리학적인 접근 방식이었고, 그 또한 물리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미술 심리를 분석했다. 그런데 1995년 그의 연구 방식에 전환을 가져 온 발견이 있었으니 바로 뇌의 쾌감중추영역.

“뇌의 쾌감중추영역은 1954년 올드와 밀너라는 두 생리 심리학자가 망상체가 자극-반응 학습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쥐 실험을 하던 중 발견하게 된 부위입니다. 쾌감 영역과 각성과 관련된 뇌 부위가 매우 가까이 있는데 이 점에서 예술 작품이 가져다주는 각성 효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쾌감 영역의 활성화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대뇌 피질에서 망상체 중심으로 흥분을 전달하는 섬유가 있는 데 그런 신경 섬유가 전달하는 각성은 기억된 내용이나 지적 분석의 영향을 받죠. 그래서 그림의 미적 기호, 미적 정보의 각성 효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쾌감중추영역의 발견은 인간의 감성을 신경생리학적으로 연구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었으며, 이후 그림의 기법을 뇌의 연구와 연결시키게 되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사물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보다 사물을 직선화한 그림을 더 멋지다고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직선을 선호한다는 것은 특정 방향을 선호하는 신경세포들이 대뇌 시각피질에 존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죠. 예를 들어 수직 방향에만 반응하는 신경세포는 다른 방향의 직선을 만나면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인 ‘엄마와 아기’를 보면 사물의 색이 윤곽선을 벗어나도 어색하지 않은데, 거장이 과감한 기법을 쓸 수 있었던 이유도 인간의 시각정보처리 구조 때문이라 한다. 즉 인간은 모양, 색, 움직임에 각각 반응하는 세 가지 정보처리 채널을 가진다. 모양 정보처리 채널은 밝기 정보에 민감하고 색 정보처리 채널은 밝기 정보를 처리하지 않는다. 모양 정보처리 채널이 색 정보처리 채널보다 해상도가 높은 것이다. 







모든 뇌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절대미가 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드는 한 가지 의문, 모든 사람들의 뇌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객관적인 절대미가 과연 존재하는가?

“주관적 미와 객관적 미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몇 만 년 전쯤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길을 걷다 다른 종족을 발견하게 되면 먼저 몸을 숨기겠죠. 그 다음에 상대방을 관찰할 겁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 강한 사람인지 약한 사람인지, 나를 공격할 수 있을 만큼 활동적인 상태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죠. 이 세 가지 유형의 판단은 현대 생활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인류의 이런 경험이 누적되어 우리에게 주형화되고, 결과적으로 특정한 모습을 보면 자동으로 호볼호 등의 판단을 하는 것이 미적 인식일 수 있죠. 우리가 인물이나 그림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성들은 그 세 가지 유형의 판단에서 분화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 세 가지 유형 가운데 타인의 호전성 혹은 나에 대한 적대성 등과 같은 판단은 호불호와 직결되는 판단이라 개인차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이죠. 반면 상대방이 얼마나 강한가 혹은 얼마나 활동적인가 등의 판단은 상황에 따라 호불호에 직결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상대방이 해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강하거나 활동적인 것이 나와 별 관계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호적인 사람이라면 강한 편이 더 좋을 수도 있겠죠. 판단의 결과에 뒤이은 호불호의 느낌이 주관적이거나 상대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아름다움의 주관적 미와 객관적 미를 콘 모양의 3차원의 원통으로 표현한다. 원통의 수직 축은 객관적 미를, 수평의 원은 주관적 미를 나타내는 것. 원통의 위로 올라갈수록 누구나 동일하게 아름답게 느낀다는 뜻이고 주관적 미의 판단은 사람에 따라 수평의 원 안에서 좋아하는 위치가 다르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르누아르를 아름답다고 할 때는 르누아르의 부드러움에 대한 주관적 선호와 대가의 뛰어난 솜씨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섞여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 실용적인 프로젝트로 연결되어야

“최근 들어 심리학 연구 방법론이 정신 물리학에서 뇌 영상 촬영 기술의 발달로 인해 신경생리학으로 옮겨가고 있고, 이것은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또 예술 심리학 쪽에서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기술 통합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실용적인 제품 개발과도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 사람들이 궁극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공통적인 목표는 자동으로 미술을 창작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일이다. 이런 자동 창작 로봇을 만들 날이 먼 훗날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질 많은 하위 개발 시스템의 유용성의 가치는 매우 높다. 현재 1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용화 프로그램은 서체를 자동으로 디자인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

“국내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아직 저밖에 없습니다. 당장은 연구못지 않게 저변을 확대하고 후학을 키워내는 일도 중요한 과제죠.”

그는 올해부터는 담배를 끊을 작정이다. 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체력 관리가 이유. 지난 한 해 5편의 논문과 백 여 점의 작품 활동을 동시에 할 정도로 생산력이 높은 그인 만큼 2004년의 행보도 기대 되는 바이다.

“집중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 같은 막연한 기대 때문에 작업을 할 때 담배를 피우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뇌에 각인시켜야 겠어요.”

글│곽문주
joojoo@powerbrain.co.kr  사진│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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