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브레인] 첫 장편영화 <차박>으로 칸 필름마켓 간 형인혁 감독

[파워브레인] 첫 장편영화 <차박>으로 칸 필름마켓 간 형인혁 감독

나는 어떻게 영화감독이 됐을까?

▲ 지난 2023년 개봉한 영화 <차박> 포스터
 

‘로맨스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내세운 <차박:살인과 낭만의 밤>(이하 차박)은 형인혁 감독의 첫 장편영화이다.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눈에 띄어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졌다.

<차박>은 평온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한 부부가 결혼기념일을 맞아 떠난 차박 여행에서 순식간에 악몽 같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렸다. 타이거스튜디오와 오픈시네마가 합작해 만들었고, 영화의 가능성을 본 미국 EST 스튜디오가 해외 세일즈 에이전트를 맡았다. 이후 영화는 제8회 포틀랜드호러영화제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고, 제76회 칸 필름마켓에서 초청받아 화제작으로 주목받았다.

파라마운트 린 페로 부사장은 <차박>에 대해 ‘로맨스와 스릴러의 놀라운 연결’이라고 평했다. 지난해 9월 국내 개봉 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에서 2주간 1위를 하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한 편의 화제작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형인혁 감독을 만났다.
 

▲ 형인혁 감독


Q. 첫 장편영화 작품으로 영화인들의 꿈인 칸영화제에 초청받았습니다. 어떠셨습니까?

칸 영화제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제가 있고 필름마켓이 있습니다. <차박>이 초청받은 필름마켓은 좀 더 영화를 상 업적으로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칸에 가고, 필름마켓에서 상영하게 되어 저도 신기합니다. 정말 좋은 경험 이었죠. 
 

Q.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어요. 가족이 함께 모여서 영화도 자주 봤고, 아버지 비디오카메라 가지고 여동생이랑 서로 찍어 주면서 놀았어요. 보자기 뒤집어쓰고 ‘얏!’ 하면 다른 걸로 바뀌는 뭐 그런 장난인데, 그렇게 찍은 걸 가족들이 좋아해 줬어요.

만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아주 좋아했는데, 그 모든 걸 담는 것이 영화였던 거죠. 중학교 때는 교내 영화 동아리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영화를 많이 봤어요. 흥미로운 영화를 볼 때면 나도 저런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Q. 다채로운 이력을 갖고 계시죠. 버클리음대를 졸업하고, 뉴욕필름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하셨어요. 음악을 하다가 영화로 전공을 바꾸게 된 계기와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미국 서부지역인 애리조나주 세도나라는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죠. 무척 외진 곳이기도 해서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 1시간 거리이고, 영화관은 한 2시간은 가야 할 정도였어요. 전갈, 타란튤라, 뱀, 코요테는 도처에서 출몰했고요.

그래서 친구들과 밴드 활동을 하면서 강당에 있는 피아노를 매일 연주하곤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세도나에서 십대를 보내다 보니 음악에 푹 빠졌죠.

운 좋게 버클리음대에 합격해 작곡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영화 음악을 공부했어요. 대학 때는 조금 겉돌았는데, 대학원 가서는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고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Q. 미국 할리우드에서 배우 생활도 하셨는데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뉴욕필름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영화 관련한 일들을 다양하게 했어요. 그러다가 배우 일을 하게 된 건 당시 미국에서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막 일기 시작해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날 친구들과 음악 페스티벌에 가는 길에 ATM기에서 돈을 뽑으려고 잠깐 내렸는데, 갑자기 몸에 문신이 많고 스타일이 독특한 백인이 다가와서 자기 작품에 출연하겠냐고 묻는 거예요. LA에는 워낙 이상한 사람이 많아 반신반의했죠. ‘야샤’라는 이 친구는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뮤직비디오 감독이었어요. 그래서 뮤직비디오에 몇 번 출연하게 됐죠.

이후 에이전트가 생기면서 한동안 배우 일을 열심히 했어요. 제대로 된 연기를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좋은 공부가 됐어요.
 

Q. 할리우드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할리우드에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는데 첫날 방에서 큰 바퀴벌레가 나왔어요. 온수도 잘 안 나오고. 그런데도 그 첫날밤이 무척 설렜어요. 할리우드에는 영화 관련한 일들이 무척 많아서 여러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Q. 자기 머릿속의 그림을 실재화하는 게 영화일 텐데, 감독으로서 영화작업의 어떤 면을 좋아하세요?

작가는 머릿속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영화감독은 그것을 영상으로 풀어내죠. 이 두 가지는 굉장히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한편 영화가 지닌 특별한 점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죠.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연출자로서 구현하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많은 이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조율하는 과정도 즐겁고 매력 있어요.
 

▲ 칸 영화제 필름 마켓에 참가한 형인혁 감독(좌), 주연배우 데이 안(우)
 

Q. 최근 텍스트를 입력하면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인공지능이 큰 화제였죠. 기술이 더 발달해 대본만으로 영화 한 편이 만들어 지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상상을 해봅니다. 인공지능은 기존 정보를 바탕으로 하기에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건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인구의 대다수가 농사를 짓던 때가 아주 오랜 옛날이 아니잖아요. 그때는 언젠가 종일 스마트폰 만지고, 유튜브 보고, 지하철 타고 일하러 가고 그럴 줄은 상상도 못했죠. 조금씩 바뀐 것 같지만 50년 전과 현재의 삶을 비교하면 크게 달라요.  

당시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듯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세계를 상상해보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인공지능이나 다른 무언가가 나와도 인간은 거기에 맞춰서 또 적응하고 활용하며 살 거라고 생각해요.
 

Q. 첫 장편영화가 주목을 크게 받아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30분>이라는 제목의 다음 영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내와 이혼 위기에 놓인 남편이 끝없이 반복되는 30분에 갇혀서 탈출하는 타임 슬립 영화예요. 촬영은 거의 다 마쳤고, 후반 작업 중입니다. 올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려고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 형인혁 감독 작업실


Q.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으세요?

칸화제 필름마켓에 참석했다고 제가 뭔가 이룬 것처럼 생각해 주시는 것이 정말 고맙지만, 사실 존경하는 감독님들이 섰던 자리에 잠시나마 있었던 게 저는 더 자랑스러웠습니다. DGK라는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있어요. 저는 이번에 처음 참석하는데, 거기서 선배 감독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영광스럽습니다. 영화를 더 잘만드는 감독이 돼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들과 동행하고 싶습니다.
 

글_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사진_김경아 기자, 형인혁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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