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일기를 3년 쓰면서 나타난 변화
39세에 급성 디스크로 앉지도 걷지도 못했다. 15일 동안 말기암 환자들이 맞는 몰핀을 맞으며 견뎌야 했다. 그런 고통이 지난 이후 다시 되찾은 일상의 모든 것이 감사했다. 아침에 눈뜨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고, 식구들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집주변의 비닐하우스나 밭에서 일하는 분들께 시원한 음료를 종종 가져다 드리곤 했는데, 그분들이 우리 집 문 앞에 이런저런 채소들을 놓고 가셨다. 조그마한 나눔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돌아오는 것이 놀랍고 감사했다.
감사가 주는 행복을 만끽하다가 ‘감사일기’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적기로 하고 3년 넘게 꾸준히 썼다. 감사일기의 힘은 대단했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난 후 힘든 생활을 헤쳐 나올 수 있었고, 치매 예방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냈다.
감사일기는 긍정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는 것을 넘어 뇌에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 효과가 있다. 결혼 전에 연애편지 한번 쓰지 않았는데, 지금 나는 두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됐다.
감사는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나이듦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세월과 함께 익어가려면 뇌 건강을 돌봐야 한다. 치매는 삶이 익어가는 흐름을 멈추게 한다.
치매를 예방하는 데 감사가 도움이 될까? 감사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불러오고, 긍정적인 사고와 태도는 뇌를 활성화하므로 서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사고와 태도는 치매가 찾아오 는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결과를 빚는다. 이를테면 우울증은 치매로 가는 통로일 수 있다.
감사는 부정적인 마인드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바 꾸는 열쇠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숩관을 기르 는 것이 중요하다. 감사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연구 한 UC데이비스대학의 로버트 에몬스 교수는 감사와 관련된 논문 79편을 분석해 감사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감사를 하면 스트레스가 빨리 극복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덜 하게 되며 자존감이 높아진다, 타인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감사하는 자세만으로 신체 가 건강해진다, 감사가 우리의 뇌에 변화를 일으킨다.”
감사의 위력을 실감하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 을 표현해 보도록 권했다. 어린이날에는 손자 손녀에게 감사, 어버이날에는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감사, 살고 있는 마을과 이웃에 감사하는 등 마음을 두루 표현하게 하고, 특히 명절에는 자녀들과 그 배우자인 사위·며느리에게 감사카드를 쓰시도록 했다. 자녀와의 갈등, 사위나 며느리와의 갈등이 없어야 어르신의 정서가 안정되어 뇌 건강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워서 못 하시겠다는 어르신께는 카드를 써서 냉장고에 붙여 두시라고 했는데, 명절 후일담이 참으로 훈훈했다. 처음으로 며느리가 자진해서 손을 잡아주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밥상의 반찬이 달라졌다, 오가는 말투가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감사카드 한 장으로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무너진 것이다. 이는 감사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이웃 주민들이 치매 환자를 한마음으로 돌보는 ‘치매안심마을’
전남 순천에 ‘치매안심마을’이 있다. 치매 예방 교육에서 배운 ‘감사 프로그램’을 잘 실천하는 곳이다. 필자가 4년 동안 치매예방 교육 봉사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치매안심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른 지역에 비해 치매 어르신이 현저히 적다.
치매 어르신이 생기면 주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돌본다. 어르신들의 치매는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조기에 발견해 진행을 늦춰야 하기 때문에 이상 징후를 재빨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곳 주민들은 치매 예방 교육을 받은지라 이상 징후를 판단하는 지식과 대응 능력을 갖추고 있다. 치매안심마을 어르신들의 소원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함께해온 이웃과 정답게 지내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를 원한다. 설사 치매에 걸렸다 해도 마찬가지다. 정든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어르신에겐 크나큰
두려움이다. 일단 요양원에 들어간 주민이 다시 돌아온 경우를 보지 못했기 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 주간보호센터에 가는 것도 꺼린다.
이곳은 이웃 주민들이 이타심으로 똘똘 뭉친 공동체이다. OECD 국가 중 노인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우리나라에서 치매안심마을은 어르신들에게 지상 낙원인 셈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비결도 ‘감사’
1958년 스트레스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받은 한스 셀리 교수가 하버드대학에서 마지막 고별 강연을 했다. 강연이 끝나자 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이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셀리 교수가 강당을 빠져나갈 때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지금 스트레스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비결을 딱 한 가지만 가르쳐주십시오. 그러자 그는 한마디로 답했다. “감사(Appreciation)!”
연구에 의하면, 감사는 이타주의적 성향의 증가와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스스로 감사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클수록 자신이 이타적이라는 평가가 증가한다. 실제로 자원봉사자와 국제정원박람회 해설사들과 인터뷰를 해보니 자신의 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눔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이타심이 끊임없이 학습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삶에 활기를 준다고도 했다.
새해를 맞은 지금, 감사일기 쓰기는 신년 계획으로 더없이 적절하고 유용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우선 21일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이후 꾸준히 쓰다 보면 예기치 않은 변화와 성장의 계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글_김숙희 누리치매예방교육센터 센터장.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통합헬스케어연구소 연구원. 《굿바이 치매》 저자